창작동화; make a rainbow
유난히 무지개가 자주 뜨던 어느 마을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아주 어릴 적부터 친한 친구 사이였던 두 소녀가 살았어요. 두 소녀는 서로에게 유일한 친구였고, 가장 깊고 많은 부분을 공유하는 존재였죠.
그런데 참으로 기묘하게도 그중 한 소녀는 매일같이 다른 사람을 열렬히 사랑하고야 마는 소녀였으며, 공교롭게도 다른 소녀 쪽은 매일같이 다른 사람에게 열열한 사랑을 받게 되고야 마는 소녀였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매일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야 마는 소녀>와 <매일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야 마는 소녀>였던 것이죠. 이 소녀들에게 단 하루라도 예외란 없었으며 그 일들은 소녀들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알게 된 어렴풋한 어느 시점에서부터 정말이지 매일같이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기이한 운명에 빠져버린 두 소녀. 비가 그친 이른 아침, 그날도 역시 무지개가 선명한 마을 뒷 산을 바라보며 그들이 좋아하던 크고 널찍한 바위 위에 앉아 늘 비슷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죠. 그날도 물론 마찬가지였습니다.
<매일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야 마는 소녀>는 마치 스멀한 아지랑이와도 같은 긴 한숨을 내쉬면서,
“아무리 오늘 또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들 뒷 날이 되면 그에게 아무런 감정도 남아있지가 않아! 이다지도 쉽게 사랑에 깊이 빠지는 주제에, 다음 날이면 바로 식어버리고 말다니. 그러고선 또 뒷 날 누군가를 다시 사랑하게 되다니! 이건 틀림없이 마녀의 물약 같은 걸 모르고 먹었던 걸 거야. 아니면 어떠한 더러운 저주에 걸린 거든지..” 하며 급기야는 눈물을 떨구었습니다.
그러자 <매일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야 마는 소녀>가 그런 그녀의 등을 다독이며, 그러나 그녀 못지않은 짙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죠.
“ 늘 말하지만 내가 어떤 꼴을 하고 있든지 말이야. 무슨 더럽고 추악한 행동을 하든,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퍼붓든 그런 것 따윈 아무런 효과도 없다고! 어쨌거나 매일같이 꼭 한 사람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 이제 무언가 나에게 말하려고 머뭇거리는 사람의 입모양만 봐도 정말 지긋지긋하고 진절머리가 나! 정말이지 저주가 아닐까? 너와 나, 무엇 때문에 이런 깊고도 알 수 없는 넝쿨 속에 빠져버린 걸까? ”
이렇듯 소녀들은 서로에게 닥친 이 크나큰 삶의 문제들에 대한 해결방법을 찾기 위해, 이른 아침마다 무지개가 보이는 그곳에 앉아 아주 심각하게 문제해결에 대한 고민을 해왔죠. 혹은 슬퍼하면서 울거나요. 그런데도 그녀들에게는 정말이지 뾰족한 수 란 없었습니다.
그러기를 한참이 지나던 어느 날이었죠. 갑자기, <매일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야 마는 소녀>가 그녀의 감색 원피스 자락을 경쾌하게 탁! 하고 치면서 벌떡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는 그녀들의 눈앞에 걸쳐진 무지개를 가리키며 크게 외쳤습니다.
"우리! 우리만 있는 곳으로 오늘 그냥 떠나버리는 게 어떨까? 아무래도 저기 저, 무지개 뒤편으로 가보면 어때? 거기라면 우리 외에 아무도 살지 않을지도 몰라."
<매일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야 마는 소녀>는 크게 기뻐하며 동의했고, 두 소녀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간단한 짐과 식량 따위를 챙겨서 늘 멀리서만 보던 무지개의 뒤편을 향해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긴 여정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소녀들은 밤이 오는 줄도 새벽이 오는 줄도 모른 채, 각자의 저주라고 생각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만 있다면 어떤 일이든 해내고야 말겠다는 절실한 마음을 안고 걷고 또 걸었습니다.
정말이지 소녀들은 잠시 식사를 하거나 피로한 서로의 발을 잠시 두드려주거나 하는 불가피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잃어버린 것처럼 그저 <무지개의 뒤편>이라는 종착점을 향해 열심히 걷고 걷고 또 걸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소녀들이 그다지도 쉼 없이 걸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그저 똑같은 풍경의 숲길만이 계속해서 펼쳐질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지만, 필사적이고 간절한 마음으로 계속 나아갔죠.
돌아가기엔 너무 늦었고, 아직도 무지개는 그녀들의 눈앞에 잡힐 듯 가까이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너무나 불행하게도,
소녀들이 살던 마을에서는 질리도록 선명했던 7가지의 빛의 형태가 점점 옅어져 가더니, 급기야는 <무지개> 그 자체가 아주 확연하게 그녀들의 눈앞에서 사라지고야 만 것이었습니다!
확연히 목적지를 잃었음을 깨달은 순간이었죠. 소녀들은 큰 허무함과 허탈감에 사로잡혀 서로를 끌어안은 채 엉엉 울며 슬퍼했습니다. 숲 속 가득 울음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고, 그만큼 숲의 정적 또한 무겁고도 엄중하게 그녀들을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 넋이 나간 지 한참 후,
순간 <매일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야 마는 소녀>가, 말하자면 풀잎에서 막 떨어질 것 같은, 순간적인 형체를 얼려놓은 듯한 영롱한 이슬의 눈빛으로 <매일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야 마는 소녀>의 양 어깨를 세차게 쥐어 흔들면서 말했습니다!
"이봐, 우리 그러고 보니 무지개 뒤편을 찾아 걸어온, 아마도 무려 족히 이틀이 넘는 이 시간 동안만큼은 사랑을 받지도, 사랑을 하지도 않았잖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