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딱따구리 Aug 25. 2024

Scene 3. 달의 삼중주

long story short (하)- 단편소설


 그때에 주로 그 그리고 그녀와 -사실은 볼 것도 별로 없고 셀러가 크게 달라지지도 않는- 프리마켓의 여러 가지 조잡스러운 물품들을 구경하고, 늘 가는 펍 겸 레스토랑에서 늦은 점심을 먹곤 했다. 그곳은 그 나라의 전통 음식 같은 것들과 퓨전 음식을 파는 작은 레스토랑이었다. 작지만 활기찬 곳이었다. 솔직히 크게 맛이 있는 집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보통 처음에 가서 나쁘지 않은 곳이라면 불문으로 쭉 가는 습성이 있었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고정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의 얼굴을 익힌 웨이트리스가 손을 흔들어 주곤 했다. 우리는 늘 오이스터, 스튜, 전통 빵을 주문했다. 그는 맥주 한 잔을 시키고, 그녀는 또 크림이 잔뜩 올라간 크렌베리 주스를 주문했다. 나는 그냥 탭 워터를 주문했었는데 그때마다 그는 늘,

[수돗물 좀 마시지 마.]라고 했다.

[그렇지만 집에서는 늘 수돗물 마시잖아.] 사에가 비웃듯 말했다.

[무전취식 하니까 음료 정도는 탭 워터로 마실게. 속죄하는 의미로.] 하자,

[무전취식이 뭐야?] 하고 그녀가 물었었다. 그 정도 수준의 단어구사능력을 가지고 있던 그녀였다.


레스토랑을 나와서 우리는 손을 맞잡고 우리가 사는 곳에는 팔지 않는 것들을 파는 대형 마트에 갔다. 거의 마지막 코스이다. 그곳에서 사에가 마실 음료 믹스나 크림 스프레이, 비스킷 등을 조금 구입하고, (더 사달라고 조르는 그녀를 달래는데 늘 20분가량을 소비했다.) 이왕 온 김에 이것저것 식료품들도 샀다.  훈제 굴, 그가 좋아하지만 잘 팔지 않는 맥주, 재스민 라이스, 레토르트 식품 등이다. 돌아갈 때를 생각해서 그다지 무겁지 않은 것들로 사서 사이좋게 나누어 들고 가곤 했다.


 다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그는 늘 음악을 듣곤 했고 사에는 머리를 끊임없이 떨어트리며 잠에 곯아떨어졌으며 나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거나 달리는 창 밖의 풍경들을 바라보곤 했다. 그 창밖의 풍경이란 비가 올 때도 있었고, 바람이 미친 듯이 불 때도 있었으며, 마치 전혀 그런 나라 따위가 아니라는 듯 뻔하니 아름답고 맑을 때도 있었다. 그곳은 정말이지 그런 곳이었다. 종잡을 수가 없는. 그래서 티끌 같은 우리의 알 수 없는 미래의 일 따위는 아무런 것도 아니게 느껴졌던 것이다. 자연에서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아니면 일종의 동질감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미래의 일이란 어떤 것들을 채문한 들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음을, 그때의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녀와 손을 맞잡고 내렸다. 그가 앞장서 걷는다. 숲 속이고, 어딘가의 초입이다. 동그래진 눈으로 그녀가 나를 본다. 어디로 가냐는 듯한 표정이다. 나도 모른다는 듯한 얼굴을 그녀에게 보여준다. 그녀가 포기한 듯, 모자를 쓴 얼굴을 길게 늘어뜨리고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맞잡았던 손을 스르르 푼다. 그냥 걷고 싶은가 보다. 원래가 제멋대로인 성격이다. 자고 일어나서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쩐지 살짝 짜증이 난다. 마냥 귀엽지만, 그럴 때도 있다. 이토록 인간이란 이기적이다. 어쨌거나 주체의 감정이 우선이다. 사에에게 짜증이 나는 건지, 그에게서 인지, 이 모든 상황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모르는 일이란 세상에 너무나 많다. 그렇기 때문에 심상찮은 일도 아니다. 다만 나도 그녀의 손 따위를 지금은 잡고 싶지가 않다. 잠이 덜 깬 머리가 멍하다. 귀 언저리에서 약간의 쇳소리가 들려오는 것 도 같다.


그가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우리를 바라본다. 하나는 고개를 축 떨어트리고 터벅터벅하고 있고, 나머지 하나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걷는다. 낙오자는 없다. 그저 천천히 걸을 뿐이다. 이런들 저런들 상관없다.


숙명 같은 것이 우리를 이끌고 있다는 것을 어차피 알고 있었다. 먼저 가 봤자 정해진 결말을 조금 더 일찍 볼뿐이다. 혼자 가 봤자 그녀를 또 그를 기다려야 한다. 그곳에서 또 다른 그는 이미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는 것 따위는 딱 질색이다. 얼굴이 파랗게 질려버릴 정도로 싫다. 그래서 나는 가서 기다리는 일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살아가는 것은 그다지 나쁘지 않은 일이다. 가서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뭐 이런 걸 생각하는 것조차 정말이지 의미가 없다. 멍청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나는 정확히 그런 얼굴을 하고 그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의 표정에서 나의 표정을 본다. 마치 거울처럼 반영된다. 그것이 싫다. 편하면서도, 싫은 것이다. 아니, 편할 때도 있지만 싫다. 이를테면  그를 사랑하는 것은 맞지만, 또 절대 그런 것이 아니기도 하다. 말장난이 아니라 정말로 그러한 마음이다. 그가 없이 살기 힘들 것 같기도 한데, 하루아침에라도 잊어버릴 수 있을 것만 같다. 나의 표정을 본 그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진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다시 고개를 돌리고 앞을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그렇다, 분명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발견하지 못했다는 듯이 그렇게 행동했다. 그에겐 왠지 모르게 늘 미안함을 느끼게 된다. 미안한 일은 아닌데, 어째선지 잘 모르겠다.


사에의 낯빛이 푸르고 짙다. 어째서 인간에게는 이런 시간이 필요할까. 그리고 이 작고 어리고 연약한 아기새는, 어떻게 이러한 시간이 필요함을 알고 우리에게 이러한 시간을 허락한 것일까. 그녀는 우리를 확신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러하다면 , 그녀에게 그것은 어떤 의미란 말인가.


우리는 그렇게 일직선의 모양을 한 채 걸었다. 그-사에-나. 그렇게 묵묵히, 30분가량을 말없이 걸었다. 걸어가는 동안 새들이 노래했으며, 작은 풀잎이 어깨에 떨어져 낙하하기도 했다. 예쁜 곳이다. 산책하기 괜찮다. 인적 또한 무척 드물다. 아까, 그곳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아니 정반대의 분위기다. 이곳도 내가 모르는 곳이다. 그는 내가 모르는 곳을 많이 안다. 그리고 그에게 미지의 내 공간이란 없다. 나는 보여줄 수 있는 패를 모두 보여주었다. 가진 게 없어서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에게도 그가 모르는 시간과 과거는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기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렇지가 않다.


그는 그렇게 사라졌다. 이 거대함 속에서 그것은 아무 일도 아닌 게 되었다. 비로소 그가 왜 이곳에 온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생각해본다. 나는 그를 사랑했을까. 말 같지도 않은 질문이 나를 오히려 감정적 중립에 이르게 한다. 자잘스러운 마음의 편린들이 얽히고설켜 그저 아무런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나쁘지 않다. 오랜 습관을 통한 자가 안정에 이르게 되는 사고의 방식인 듯하다. 사실 잘 모르겠다. 이것이 나쁜 지도 좋은 지도. 그런 것인지 아닌 것인지도. 그렇게 또다시 감정적 중립이 된다. 아니 중립을, 만든다. 감정을 숨기는 것 정도는 오랜 시간에 걸쳐 훈련해 왔다. 그래서 이런 것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어떠한 일이 생겨도 울지 않을 자신이 있는 것이 바로 지금의 나다. 울지 않고 울면 된다. 그것은 의외로 어려운 훈련이 아니었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를 잃었던 그때의 나는 정말이지 운다는 것에 집중하여 최선을 다해서 울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실제로 그렇게 믿는다. 그 시간이 있어왔기에, 더 이상 울지 않고도 울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를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울어도 울어도 울 일은 넘친다며, 엄마는 나에게 울만큼 울었기 때문에 눈물이 나지 않는다는 말은 그저 로맨티시스트 같은 시시껄렁한 사람들이나 지어내는 이를테면 시 같은 것이라 말했었다. 시가 어때서. 아무튼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든 어떠하든, 나는 실제로 그렇게 믿는다. 아니, 믿고 있다. 어차피 믿어버리면 그만이다.  그녀가 어떻게 지껄이든.. 나는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이다.


 정말이지 나는 그때 울 수 있을 만큼 크게 울었다. 온몸의 수분이 바싹 메말라 버릴 정도로 울었다. 실제로 며칠을 그렇게 울기만 하다 보니, 눈알의 실핏줄이 죄다 터져 눈에서 피가 났다. 눈이 시려 낮에 눈을 뜰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실제로 그렇게 밤낮 울어버리면 눈이 시려서 도무지 눈을 뜰 수가 없다. 그리고 눈물이 연한 피 색이다. 페일 블러드. 그때에  '피눈물'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단어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피눈물도 존재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단어로 만들어진 것을 보면 말이다. 하물며, 피 섞인 더러운 액체 따위에도 이름이 있는데, 나는 무엇일까. 생각, 그래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나를 견딜 수 없게 했다.  이다지도 비참하고 벌레 같을 수가 없었다. 벌레는 잡아 죽여야 해. 마음속의 벌레가 요동치며 말했다. 그래, 벌레 따위는 죽어도 죽어도 다시 생겨나니까 계속해서 잡아 족쳐야 해.


내친김에 나의 상상은 나를 조금씩 그어 본다. 이럴 생각까진 아니었는데 몸의 빗방울이 정말로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제법 났다. 눈에서 나는 피와는 비할 바 없이 선명했다. 문을 벌컥 열고 그녀가 들어왔다. 그녀는 큰 눈에, 큰 물을 가득 담고 돌연 괴성을 질렀다. 그러더니 갑자기 거친 발뿌리로 나의 팔과 머리를 무차별하게 걷어 차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에서 또 다른 것들이 후드득 떨어지는 것이 나의 시야를 통해 흐릿하게나마 걸쳐졌다. 그것은 피보다도 더 수 차례, 더 무겁게 떨어졌다.


그런 그녀의 눈은 충혈되어 있긴 했지만 역시 나의 그것보단 괜찮아 보였다. 역시 이기적인 년. 사이코패스에 히키코모리와는 상종하고 싶지 않다. 성가시게도 그녀는 계속해서 나를 밀치고 밟고 때렸다. 그러면서 울었다. 그렇게  무자비한 린치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누군가에게 맞아보기는 난생처음이었다. 처음에는 몸을 웅크린 상태로 그녀의 발길질을 받아내다가 코피가 터진 이후부터는, 그냥 대자로 누워 그녀가 밟든 차든 주먹질을 하든 그저 내버려 두었다. 중학교 때인가 처음 본 누아르 영화에서처럼, 정말 바닥에 떨어진 피와 나의 움직임들이 만들어낸 짓이김의 화폭이 마치 찢긴 난처럼 난잡하게 피어났다. 처음엔 아팠다가, 나중에는 잘 모르게 되었다.


그녀가 지쳐 나가떨어졌을 때, 그래서 우리가 나란히 누워 거친 숨을 몰아쉬었을 때, 그때는 다시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목이 베인 통증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그저 온몸이 미친 듯이 아플 뿐이었다. 그 감각은 살아있음의 조열하고 비참함을 더 크게 느끼게 했다. 그의 목도 괜찮아졌을까. 많이 아프진 않을까. 조금 나누고 싶었을 뿐인데, 육체적 고통은 그의 고통을 덜 수 없게 한다. 그저 저질스러울 정도로 살아있음을 더욱더 각성시킬 뿐이었다.


우리의 힐러, 사에.

그녀는 피투성이가 된 나를 등지고, 비틀거리며 주방으로 가 작은 얼음주머니를 만들어 나의 눈에 대어주었다. 또다시 견딜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나의 밑바닥에서부터 머리꼭대기까지를 강하게 내리치기 시작했다. 세상에 없는 짐승처럼 형언할 수 없는 소리가 바로 나의 목에서 울러 퍼졌다. 그녀는 묵묵히 차가운 얼음주머니를 나의 뺨에 대어주었다.


그때의 그녀의 눈. 그것은 그 베일 듯이 차가운 뺨의 그것보다 더욱더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더 이상 소리를 지를 수 없게 되어버렸을 때, 나는 울기도 그쳤고 소리내기도 그쳤다. 그러고는 입과 눈을 닫아버렸다. 다음 날, 나는 그녀에게서 도망쳐버렸다. 물론, 아무런 메시지도 남기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결국 제자리이다.


그와 그녀에게서 도망칠 수 란 없다. 우리는 여전히 수년간 떨어져 있었지만, 그녀도 나도 그것으로 결코 불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각자의 정화를 거쳐 만날 날을 서로가 이미 알고 있었다.


나의 소중한 아기새. 강인하며 재생하는 나의 그녀. 나의 불사신. 전능하기에 한없이 나약했던 나의 그.


우리는 말하자면 같다.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은 어렵다. 그를 사랑했지만, 함께 있지 않는 편이 영원하다.


지금의 나로선 그저, 운명이 그들을 또다시 나의 앞에 데려다 놓을 것이라는 멍청한 운명론자가 되어버리겠다. 덕분에 나는 울지 않고 울 수 있는 법을 배웠다. 고맙고 퍽 편리한 일이라는 것을 느낀다.



안녕, 안녕히.





이전 04화 Scene4. 무지개 소녀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