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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반지를 다시 꺼내든 이혼남

다시 코이누르를 찾은 소진

by 소진

소진이 코이누르를 찾은 건 거의 10년 만이다.

어떤 연유로 그곳을 찾게 됐는지 아직도 명확한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인사불성이 된 김유신을 기녀 천관녀의 집으로 데리고 갔던 말(馬)처럼…. 소진의 의지와 상관없이 누군가가 소진을 그곳으로 데려간 것도 아니었다.


이유도 모른 채 소진은 안락사를 소견을 받아 든 반려견을 살리려 동물병원을 수소문하는 사람처럼 그곳으로 향했다.

‘인제 와서 반지를 살리는 게 무슨 소용인가’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소진에게 지금 장롱 속 금반지는 무조건적인 생명체다. 이혼 후 처음으로 무엇인가 행동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 대상이다.


‘착한 사마리아인이 지나치다 CPR 상황에 직면한 노인을 지나쳐선 안 되는 것처럼. 사람이든 동물이든 반지든 일단 살리고 봐야 한다.’


소진은 마음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알 수 없는 논리 구조에 또 다른 논리를 더하며 소진은 지금 행동에 대한 명분을 만들어나갔다. 누구에게도 쉽게 동의를 구하기 어려운 명분이었다.


공방 문지방을 넘어서는 소진을 송 대표는 한눈에 알아봤다. 서비스 마인드로 소진을 알아본 척한 게 아니라 진짜로 기억했다고 소진은 확신했다.

소진은 처음 봐도 자신을 오래 아는 척하는 정치인들과 대면한 적이 한두 번 있다.

“유소진입니다”라고 인사하면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면서도 손을 덥석 잡으면서 “그래. 그래. 내 알제”라 했던 중진 의원의 에티튜드는 노골적이면서도 기계적이었다.

송 대표는 소진이 글을 쓰는 일을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고, 회사 이름도 곧 소환했다.

소진은 그녀가 아이들과 양평의 전원주택에 산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결혼반지 말고도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는 기억도 서로 일치했다.


‘예물은 하나의 스토리다.’ 어쩌면 송 대표의 경영 철학과 소진의 드라마틱한 재방문이 맥을 같이 한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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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은 잘 계시죠? 이제 아이들이 많이 컸겠어요.”


근황을 묻는 대표의 가벼운 질문에 소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구구절절 이혼 사실을 알리며 전처를 잊지 못하는 실연남처럼 보일 수는 없었다.


아무리 별의별 일이 다 있다는 웨딩 업계라지만, 이혼 후 찾아와 결혼반지를 만지작거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소진은 혼자 결혼반지를 들고 이곳까지 온 이유를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 이유를 소진 본인도 잘 알지 못했다.

“제 볼살 보시면 아시겠죠? 뱃살만큼 손가락이 굵어져서…. 반지를 약간 늘릴 수 있을까요? 그러면 금을 추가로 써야겠죠?”


소진은 송 대표의 추가 질문을 막으려는 듯 역질문으로 대화의 물꼬를 텄다. 노련한 송 대표도 소진의 방향키의 흐름에 속도를 맞췄다.

손가락은 정확히 1.9mm 굵어져 있었다. 15호에서 17호(둘레 약 60mm)로 반지를 다시 세공하려면 금이 추가로 들었다.


송 대표는 다시 찾아준 마음과 인연을 생각해 금값만 받겠다고 했다. 호의를 진심으로 포장하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었다.

호의에 얼어붙었던 마음이 조금은 녹아내려서였을까. 이혼 사실을 알릴까도 생각했다.

송 대표는 이런 미묘한 상황을 이해해 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마음인지 알아요”라며 위로를 건넸을 수도 있다.

60억 지구인 중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지금의 상황을 송 대표만은 알아주기를 조금은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완벽한 연기로 주문을 마치고 공방 문을 나서자 여우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소진은 우두커니 서서 그 비를 맞았다. 줄곧 소진의 몸을 긴장시켰던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조금은 누그러지고 있었다. 할머니가 타주던 믹스 커피 한잔을 두 손으로 감싸면 느껴졌던 온기가 지금 바로 소진의 심장 옆에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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