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 보수적 민주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더위와 습기가 조금은 가신 청량감이 공기 안에서 미세하게 느껴졌다.
소진은 그 여느 때처럼 네이비색 정장을 입고 입사 최종면접 때 산 고동색 백을 옆으로 멨다.
그리곤 새로 가공한 반지를 출근 준비의 마무리 의식을 하듯 손가락에 얹었다.
새 반지와 손가락의 완벽에 가까운 물리적 결합은 묘한 심리적 안정감을 줬다.
이제는 책임질 가족도 먹여 살려야 할 반려자도 없지만, 이상할 만큼 새로운 감흥들이 밀려왔다.
이혼 후 줄곧 소진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던 알 수 없는 짐들을 이제는 털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일어나고 있었다.
네 번째 손가락의 반지가 흡사 모든 힘과 에너지의 세계를 지배하는 <반지의 제왕>의 ‘절대 반지’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무엇이 이토록 새로운 안정감을 주는 것인지. 소진은 꽤 오랫동안 생각했다.
독재 정권하에서도 안정감을 느끼는 소시민처럼. 구체제의 관습으로 회귀했을 때의 퇴행적 안정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까도 의심해 봤다.
온 세상을 타오르게 했던 혁명의 열기도 시간이 지나면서 완전한 집권세력 교체보다는 기존 체제 속 국소 개혁에 그치는 ‘보수적 민주화’로 귀결되듯 말이다.
나이 마흔에 감행했던 ‘이혼’이라는 대형 프로젝트도 혁명적 새 삶으로 나아가는 사다리가 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반대로 저 반지는 껍데기로서는 구체제의 모습일지 모르지만, 과거 관습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액세서리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이혼으로 의미를 이미 잃어버린 부속물에 불과하지 않은가.
새로 가공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획득한 새 시대의 산물이라 여겨도 되지 않을까.
너무 많은 의미를 담는 버릇 때문에 삶이 더 복잡해졌을 수도 있을까. 소진은 쉽게 정의 내리지 못했다.
어릴 적 아버지가 끼던 무지막지한 에메랄드 반지가 떠오르기도 했다.
졸부들이나 낄법한 두꺼운 금반지를 아버지는 자주 끼고 다니셨다.
브라질인가 남미 여행 중 샀다는 빨간색 보석이 보석 반지 사탕처럼 박힌 유치한 문양의 반지였다.
그 반지를 낀 아버지의 모습이 때론 부끄러웠다. 지식인이라면 별로 끼지 않을 것 같은 화려하고 촌티 날리는 디자인이었다.
비교적 우아한 스타일의 어머니도 그 반지에 대해서만큼은 별다른 논평 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화려한 색, 뻔쩍 뻔적해야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이가 별로일 때도,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신 날에도 아버지는 그 금반지를 놓지 않으셨다.
평소에는 마뜩잖았던 그 금반지가 그날만큼은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반지가 주는 안정감의 이유를 정의할 필요는 없었다. 이유가 무엇이건 소진은 지금 아주 오랜만에 안정감이란 감흥에 취해있고, ‘취할 수 있는 것들을 일단 취하자’라는 마음뿐이었다.
오르막길 일변도였던 이혼 후 몇 개월을 겨우 지나 겨우 평지를 만났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지난 오르막길의 경사가 너무 가팔랐기에, 지금 서 있는 곳이 평지가 아닌 미세한 오르막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건 지금 중요치 않았다.
그저 다시 오르막길이 한동안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소진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가야 할지. 이 정도 단편으로 마무리 해야할지 사실 고민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애정을 가지고 읽어주신 분께 댓글이나 메시지 주시면 함께 소통해봤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