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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멀끔 Jul 28. 2024

40대 중년남 오징어 탈출 공략집 4 : 헬스장(2)

헬스장 1년, 내게 남은 것 허와 실

지난 편들에서 말했듯이,


나는 이 정체불명의 드러운 만성 오징어 같은 기분을 탈출하기로 굳은 결심 했는데,


심오한 멘탈수양이나 불굴 의지의 인간 승리 같은 것은 때려치우고 우선은 상대적으로 뇌를 비우고 단순무식하게 몸만 움직이면 될 것 같은


- 그중에서도 정말 이것저것 생각 안 하고 그냥 팔다리만 빡세게 움직이면 될 것 같은 -


헬스를 그 첫 발자국으로 선택했다.


'이것은 한 사람의 작은 첫 발자국이자 인류의 거대한 첫 도약이다.'


달에 첫 발자국을 내디딘 암스트롱의 말처럼,

지금 헬스장을 내디딘 나의 이 작은 첫걸음이 내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는 거대한 도약의 발판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렇게

쭈뼛쭈뼛 두근대는 마음으로 첫 헬스장 문을 열어재끼고 PT 상담을 받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났다.


시간은 우리가 무얼 하든 안 하든 아랑곳 않고 참 빨리도 간다.


나름 짧다면 짧은 시간이고 길다면 긴 시간인데, 이 시점에서 내가 느낀 내게 남은 것을 리뷰해 본다.


우선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보자면,
헬스는 멘탈 부양에 도움이 된다.


우리가 끝없이 심드렁한 우울에 젖어 한 없이 늪으로 늪으로 스며들어 갈 때 헬스는 그 터프한 힘줄 빡선 팔뚝으로 우리의 멱살을 어떻게든 우겨부여 잡고 우리의 턱을 뭍가까지 끌어 패대기 쳐준다.


다만,

상남자답게 딱 거기까지만 해준다.


물론 운동을 마치고 한껏 펌핑된 몸을 샤워 직전에 혼자 더듬으면서 뿌듯해하는 잠시 동안의 쇼타임, 그것이 주는 달달함이 있기도 하다.


아마도 궁극적으로 시간이 이 헬스 루틴의 꽃이요 하이라이트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그 맛으로 하는 것이다.


다만, 본질적으로 헬스는 혼자 하는 고독한 운동이다. 다른 운동들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대부분 다른 운동들은 설령 혼자 하더라도 내가 왔다리 갔다리 하거나 그 안에서 생생하게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헬스는 운동기구를 잡는 순간, 1/3 평도 안 되는 자기만의 독방으로 들어가 고독하게 무게와 홀로 싸우는 운동이다.


무슨 우연찮은 로맨스를 바란다거나 친목을 바란다면 솔직히 거의 그럴 일은 없다고 보면 된다.

내가 헬스장 1년 다니면서 모르는 회원끼리 말 한마디라도 나누는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저 이거 머신 아직 안 끝났는데요' 말고.



이마저도 정말 어쩌다가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대부분 아 내가 너무 민폐 끼친 건 아닌가 하고 횡급히 끝내고 다른 머신으로 가버린다.


그렇다.

헬스는 분명 깊은 수렁 속에 더 이상 잠식 되지 않도록 확실하게 브레이크를 걸어 숨을 쉴 수 있도록 끄집어는 내주지만 그 이상의 간지러운 플러팅을 받기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궁극적으로 외롭고 정적인 일종의 자기 수양의 운동이기 때문이다.

굳이 정의하자면 기분의 최저 수준 그 아래까지 내려가버리는 것은 확실하게 잡아주지만 그렇다고 헬스 자체가 인생을 행복하게 바꾸어 주지는 않는다.  


 오케이. 그건 그냥 받아들이자.


그럼 1년 동안 하면 몸이 많이 좋아질까?


이것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이게 어떻게 보면 제일 헬스에서 현타 오는 점인데, 근육은 한번 쌓아두면 적당히 유지되면서 있는 게 아니라 아주 조금만 방심하거나 나태해지면 순식간에 다시 퓩퓩 빠져버린다.


반면 근육 2kg 정도 찌우는 대는 정말 엄청난 끈기와 오기가 필요한데 빠지는 건 그냥 한주 잠깐 생각 없이 식사 대충 하고 운동 쉬고 맥주 한잔 하면, 아주 호쾌하게 설사 빠지듯 빠지는 근육을 인바디 수치를 통해 망연자실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 같은 40대 나이 때는 몸이 필사적으로 근육은 안 만들라고 뻐팅기고, 지방은 틈만 나면 호시탐탐 만들어 축적시키려고 하는 아주 청개구리 같은 생체 마인드가 있어서 젊은 사람들보다 관리를 더 가혹하게 해야 비슷한 수준의 성과를 낼 수가 있다.   


그 와중에 계속해서 근육을 더더 불리려면 똑같은 무게를 벽돌 쌓듯이 매일매일 축적 시킨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더더 무게를 끊임없이 올려줘야 다음 벌크의 스텝으로 이동할 수가 있다..


보통 다른 운동들이 한번 고수가 되어 일정 수준까지 오르면 고인물로서 좀 수월해지는 반면, 헬스는 끊임없이 더 높은 고지를 향해 스스로 만족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더 무거운 무게로 올리며, 초보자와 똑같은 부담의 새로운 도전에 덤벼들어야 한다.


그럼 이쯤에서 다시..


회사원이 1년 동안 해서 몸이 많이 좋아질 수 있을까?


이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1년 동안 정말 매일 같이 꾸준히 한다면 확실히 좋아지긴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특히 40대 이상이 드라마틱한 근육 성장을 1년 내에 하기는 하루종일 일주일 내내 안정적으로 헬스장에 몇 시간씩 뚜드려 박고 음식도 충분히 섭취하지 않는 이상 어렵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생각보다 근육은 찌우기는 더럽게 어려운데 빠지는 건 순식간이다.


오히려 나는 이 시점에 헬스를 통해 외형적으로 얻은 것이라면 현실적으로 보건대, 무지막지한 근육보다는 어떤 체형적인 쿨한 느낌의 변화라고 말하고 싶다.


헬스를 하고 나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말에 의하면 예전에 나는 뭔가 좀 볼품없는 뽐새였는데 지금은 어딘가 몸이 좀 시원해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1년 동안이라면 이게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한여름에 반팔 티를 입고 그냥 서있는 것도 어딘가 좀 어색하고 쭈굴 한 기분이 들었다면 지금은 딱히 어깨를 벌리지 않으려 해도 그냥 스스로가 몸이나 관절 등에서 시원하게 뻗은 탄력의 느낌이 든다.


헬스가 인생을 바꿔주지는 않는다.

어쩌면 외로움과 고독에는 외려 미미한 영향을 주거나 심지어 마이너스가 될지도 모른다.


다만, 헬스는 내가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기저 자신감 레벨, 나의 미니멈 기분 레벨 수준을 최저 임금 제한처럼 더 이상 내려가지 않도록 굳건히 보장해 주는 효과가 있다.  


그 밑바닥이 최소한 저 암흑 속 지하 몇 층까지는 떨어지지 않도록,

 

헬스는 일종의 마지노 방어선 같은 굳은 지지 기반이 되어 줄 수 있다.


어쨌든 헬스는 지금 나에게는 언제든 내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즐길 수 있는 좋은 취미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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