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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오모스 Oct 23. 2024

프롤로그 # 5. 이런 글도 쓴다.

글을 쓰기 싫은 날이 있다. 

컴퓨터 앞에 앉아도 글이 전혀 나올 것 같지 않은 그런 날. 머릿속은 텅 비어 있고, 아무리 키보드를 두드려도 내 마음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럴 때면, ‘나는 도대체 왜 글을 쓰겠다고 했을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글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나 자신조차 어이없어진다. 


그런 날, 나는 결국 글을 쓴다. 모든 기대를 내려놓은 상태에서. 문장을 멋지게 만들고 싶은 욕심도, 명확한 주제를 설정해야 한다는 부담도 모두 내려놓고 무작정 써 내려간다. 이때 내가 쓰는 글은 진정한 의미에서 ‘글쓰기’라기보다는,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타이핑하는 것에 가깝다. 




- 7월 24일. 글이 안 써지는 날. -

노트북을 켜고 카페에 앉아 글을 쓰려고 한다. 생각나는 대로 손가락을 움직여 글을 적어 내려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독자를 위한 글, 타인이 공감할 만한 글을 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특히, 글을 논리적으로 짜임새 있게 구성하는 것이 나에게는 큰 도전이다. 이때 나는 깨닫는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나를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종종 일상 속의 소소한 깨달음을 글로 적는다. 특히 감정이 복잡할 때는 그 감정들을 풀어내듯이 글을 쓰는 일이 많다. 가령, 몇 달 전 좌절감을 느꼈던 어느 날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 기분을 해소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이며 감정을 쏟아냈고, A4 한 장이 금세 채워졌다. 그날 쓴 글은 마치 내 감정의 축소판이었다. 그때의 슬픔과 좌절감, 절망감을 글로 남기면서 마음이한결 가벼워졌다. 


이러한 경험에서 나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나를 방해한다는 사실과,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플로우’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플로우 이론은 몰입 상태에 빠질 때, 창작의 즐거움이 극대화된다고 설명한다. 글쓰기가 힘든 날에도 꾸준히 글을 쓰는 이유는 바로 이 몰입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고통스럽고 힘들 수 있지만,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글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시간 감각마저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결국, 글이 안 서지는 날에는 자신이 쓸 수 있는 글부터 쓰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이 글을 쓰는 모습은 나를 더욱 기쁘고 행복하게 만들며, 계속 글을 쓸 수 있겠다는 믿음과 확신을 준다.  


또한,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의 부족함을 직면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아들러의 자기 수용 이론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다뤄진다. 아들러는 자기 수용과 용기를 강조하며,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진정한 성장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 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것은 완벽하지 않은 나 자신을 인정하고, 그 상태에서도 꾸준히 나아가려는 용기의 실천이다.    


가끔은 과거의 나에게 고맙다. 나는 종종 그때 써둔 글을 다시 읽으며 당시의 나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그 순간의 감정들을 기록해 둔 덕분에, 지금의 나는 그 감정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때의 나의 고통과 싸움 덕분에 현재의 나는 조금 더 나아진 상태로 존재할 수 있었다. 이처럼 글은 단지 그 순간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결국, 글이 써지지 않는 날도 나는 글을 쓴다. 

그날을 견디고, 감정을 표현하고, 나 자신과 대면하기 위해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나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란 사실에 위로를 받는다. 다른 작가들도, 글이 써지지 않는 날을 견디며 결국 글을 쓰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이겨낸다. 그들의 글은 나에게도 큰 힘이 되었고, 나 역시 그날의 감정을 글로 남기면서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다. 


이런 글도 쓴다. 

잘 쓰기 위한 글이 아니라, 

그저 글을 꾸준히 쓰기 위해 

마중물 역할을 하는 글을 쓴다. 

또 글 쓰는 것이 두려운 나를 위한 글을 쓴다. 

이런 소소한 글들이 오히려 

가장 진솔한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 

글이 안 써지는 날에도 글을 쓰는 이유는 


결국, 계속 글을 쓰고 싶은 나를 위한 글이고, 

나 자신을 더욱 잘 알게 만들어 주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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