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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ikim Oct 04. 2024

세상을 향해 말을 걸고 싶어.

엄마~최고~

"짤깍짤깍짤깍" 

달이 밝은 날에 순이는 늦은 밤까지 베틀과 함께 베를 짜고 있습니다.

날실과 씨실을 엮어 가며 고운 명주베를 짭니다.


"안 자나?"

"오늘도 달이 밝아 베를 짜야해요."

"어제도 밤늦게까지 베를 짜더니만..."

"어제는 명주베를 짰네요. 오늘은 무명베 짭니다."

"퍼뜩하고 자자. 피곤타."

영이가 걱정이 되었는지 윤석은 영이를 채근해 봅니다.


"짤깍짤깍짤깍" 

"오늘 밤에도 또 베틀이랑 시간을 보내나?"

"오늘은 모시베랑 삼베를 짭니다. 먼저 자요."

순이는 오늘도 배틀과 씨름을 합니다.


"앗 따거. 또 피가 나네"

졸던 순이가 피식 웃습니다.

오늘밤에는 온통 집안이 조용합니다.

오늘은 순이가 베를 짜지 않습니다.

건너방 어두운 불빛아래에서 조용히 무언가를 하고 있네요.

윤석은 순이를 기다리다가 건너방으로 건너왔습니다. 그러고는 잠시 순이를 지켜보더니 금세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방으로 돌아갑니다.

하루 이틀 삼일 그렇게 삼일이 지났습니다. 순이는 밤마다 작은 건너방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네요.

밤새 일을 하다가 새벽녘에야 잠이 드는 순이입니다.


"춘식아~ 마음에 드나? 우리 춘식이 부잣집 도련님 같네."

"우와~"

"이것도 입어 보렴"

"이 것도 내 거야?

"그럼. 우리 춘식이 거지^^"

"엄마 최고"

새 옷을 입은 춘식을 보며 윤석은 그제야 알았다는 듯 살짝 손뼉을 칩니다.

"아~~"

며칠 동안 순이가 밤마다 배틀을 돌렸던 이유를 이제야 눈치챈 윤석입니다.

"우와~울 춘식이 멋지다. 엄마 최고네~"

순이를 향해 윤석은 엄지 손가락으로 최고를 표시해 보입니다.

"춘식이 좋나?"

아버지의 질문에 춘식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울 춘식이 엄마한테 고맙습니다 해야지"

춘식은 부끄러운지 쭈뼛쭈뼛하다가 이내 "고맙습니다." 하고 꾸벅 인사를 합니다.

순이는 그저 흐뭇하게 웃습니다.

윤석도 따라 웃습니다.


맞습니다. 오늘은 춘식의 생일날입니다.

순이는 미역국과 생선구이와 나물들과 고기반찬을 차린 밥상을 들고 들어 옵니다.

"춘식 아부지 식사 하셔요~

춘식아~ 밥 먹자."

"우와~~ 오늘은 엄마가 우리 춘식이 좋아하는 반찬 많이 했네?!!"

윤석이 반기며 감탄을 합니다.

춘식은 생선을 보더니 입이 귀에 걸립니다. 

순이는 오늘 춘식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긴 시간 동안 공을 들였습니다.

며칠 동안 실을 잣고 또 베틀을 돌려 베를 짜고 또 옷감을 재단하고 바느질을 해서 춘식의 옷들을 지어 아이에게 선물한 순이입니다. 그리고 낮엔 산에 가서 산나물을 가지가지 잔뜩 캐 왔어요. 80전을 주고 소고기 사 왔고 물에 가서 물고기를 잡아 왔습니다. 이 모든 노력들은 동생을 본 후 외로워하던 춘식을 달래주기 위한 춘식을 향한 영이의 사랑의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순이는 재주가 많은 사람입니다. 

그녀는 성격이 차분하고 세심하고 온화한 사람입니다.

그녀는 사랑스러운 아내이고 지혜로운 어머니이며 총명하고 효심 깊은 딸입니다.

그녀는 실을 잣고 베를 짜는 일에 소질이 뛰어나서 나이 어린 순이였지만 그녀의 길쌈 솜씨는 단연 으뜸으로 온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지요

뿐만 아니었어요. 순이는 식물들을 아주 잘 알아서 산에서 산나물들을 캐 오는데도 으뜸이었어요^^

그래서 우리의 춘식이는 힘든 시절에도 잘 먹고 잘 입고 순조로운 삶을 배우며 자라고 있습니다.


순이의 극진한 사랑의 표현 덕에 춘식이는 마음이 많이 누그러졌습니다. 

살짝쿵 별이의 옆에 다가가 앉는 춘식입니다. 그러고는 꼼지락꼼지락 누워서 혼자 놀고 있는 별이를 물끄러미 들여다봅니다. 춘식은 작은 아가가 움직이는 것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자꾸자꾸 쳐다봅니다. 그러더니 손을 내밀어 살짝 별이의 손을 찔러봅니다. 그런데 쭈욱 뻗은 춘식의 손가락을 별이가 꼬옥 잡았네요. 깜짝 놀란 춘식이는 아가의 따뜻한 손이 좋았는지 살짝 흔들어 봅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순이가 말합니다. 

"별아~오빠야 오빠~ 별이를 많이 사랑하고 지켜줄 네 오빠란다."

"까르르~에헤~"별이는 오빠가 좋은지 까르르까르르 웃습니다.


"춘식아~ 별이야~"

술을 한 잔 한고 들어오는 윤식은 연신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집으로 들어옵니다.

오늘은 꽤 많은 주문이 들어와서 윤석은 기분이 좋습니다.

양손에는 춘식이 좋아하는 엿을 쥐고 들어 왔네요^^

"춘식아~ 엿 먹자."

별이 옆에서 사르르 잠이 들고 있던 춘식은 엿이란 말에 눈이 번쩍 뜨입니다.

"우와~ 아부지다~"

춘식은 맨 발로 아버지를 반깁니다. 그러고는 아버지 손에 있는 엿들을 얼른 받아 듭니다.

"춘식이 잘 놀았나? 엿이 반가운 기가 아부지가 반가운 기가"

"둘 다요."

"맞나? 울 춘식인 엿이 더 좋은 거 아이가?"

"아냐 아냐. 난 아부지가 더 좋아. 그 담에 아부지가 만든 아부지의 엿이 좋아."

두 부자는 알콩달콩 대화를 합니다.

윤석과 춘식의 말소리에 별이도 잠에서 깨고 맙니다.

순이는 별이를 포대기로 들쳐업고 윤석을 맞이합니다.

"오셨어요? 오늘은 우리 춘식이가 별이랑 놀았어요. 오빠가 놀아 주니 별이 보는 게 수월했네요^^"

윤석의 작은 주사 덕에 온 식구가 일어나 도란도란 대화를 나눕니다.

윤석은 두 손에 엿을 꼭 쥐고 있는 춘식을 안아 듭니다.

그러고는 가족들과 함께 달을 보며 소소한 하루의 이야깃거리들을 오손도손 풀어냅니다.


"달은 밝고 바람 찬데 생각느니 임 뿐이라.

에헤 에여 베 짜는 아가씨 사랑 노래 베틀이 수심지누나.

춘풍도리 화계야에 꽃만 퓌어도 임의 생각.

에헤 에여 베짜는 아가씨 사랑 노래 베틀이 수심지누나.

들창 밖에 나리는 비는 가신 님에 눈물인가.

에헤 에여 베짜는 아가씨 사랑 노래 베틀이 수심지누나.

야우문령 단장성에 비만 오셔도 임의 생각.

에헤 에여 베짜는 아가씨 사랑 노래 베틀이 수심지누나."

이 노래는 배틀가로 베를 짤 때 부르는 노래입니다. 경기소리로 통속화 된 민요인데 1938년에 녹음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이 노래의 제목은 '쪽도리 눈물'입니다.

여인들이 베짤 때 부르는 노래인데 매사에 조용하여 베를 짤 때도 말없이 베만 짜는 영이를 위해 윤석은 자주 이 노래를 영이에게 불러 줍니다.

어느새 귀에 익었는지 언젠가부터 베를 짤 때는 이 곡을 흥얼거리기도 하는 영이입니다.


"얼른 해야 해. 시간이 얼마 없어. 실 좀 갈아 줄래?"

" 응. 언니~ 얼른 갈아 끼울게."

순이와 영이는 무척이나 분주합니다.

오늘은 주문이 많아 쉴 틈 없이 일을 하는 순이와 영이입니다.

둘은 호흡이 아주 잘 맞는 자매이고 친구이고 작업 파트너입니다.

두 사람은 오늘같이 바쁜 날이면 손도 입도 덩달아 바빠져서 이들의 작업방인 건너방에 활기가 가득 차 넘칩니다. 순이는 7남매 중 맞이입니다. 영이는 순이 바로 밑에 동생으로 둘은 연년생입니다. 그녀들은 온종일 형제지간의 이야기와 춘식이와 별이 이야기 그리고 친구들 이야기로 화기애애하네요. 


"도리도리도리"

"까르르르"

"짝짜꿍~짝짜꿍~"

"아~아~아~아~"

소리를 내며 별이가 춘식을 따라 합니다.

"죔죔~죔죔~"

춘식은 주먹을 폈다 쥐었다 폈다 쥐었다를 하며 별이랑 놉니다.

외할머니와 별이가 함께 노는 모습을 눈여겨 담아 둔 춘식은 그대로 따라 해 봅니다.

"우앵~~~"

잘 놀던 별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립니다.

당황한 춘식이 할머니를 부릅니다.

"할무이~ 할무이~"

잠시 아이들의 간식을 준비하던 현수가 급하게 방으로 들어옵니다.

그러고는 이내 방안이 조용해집니다.

"이제 되었네. 울 별이 개운하지? 우리 이제 감 먹을까?!!. 

춘식아~ 춘식이도 이리 온나~ 별이랑 쪼매만 놀고 있거라. 할머니가 감 가져올게.

방 밖으로 나온 현수는 손을 씻은 후 미리 씻어 놓은 감을 가지고 들어 옵니다. 

그러고는 감을 반으로 갈라 한쪽을 춘식에게 건넙니다.

그리고 나머지 한쪽은 수저로 떠서 별이의 입에 넣어 줍니다.

춘식과 별이는 단 감과 할머니의 사랑을 함께 먹습니다.

순이가 바쁜 날에는 아이들은 온통 현수의 차지가 됩니다.

춘식과 별이는 현수의 집에서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귀하게 자란 현수는 아이들의 좋은 친구였고 선생님이었습니다.

현수는 짬짬이 춘식에게 여러 이야기들을 해 주었습니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습니다.

"할무이~ 헌진이 왔습니다. 어디 게셔요?!!"

"여 있다. 울 현진이 왔나?!!"

"예, 저 왔어요. 어~ 울 춘식이도 있었네."

"형아~ 왔나?!!"

"아구 별이도 있네. 반갑다. 동생들아~~"

춘식이 보다 4살이 많은 친척형 헌진이는 늘 의젓합니다.

종종 현수의 집에서 만나면 춘식이와 이런저런 놀이를 해 주는 좋은 형입니다.


"다 됐나?"

"응. 이게 마지막이다."

"울 영이가 수고 많네. 덕분에 빨리 끝났어"

"내 뭐 한 것 있다고 언니가 열심히 한 거지..."

"어구 벌써 밥때가 다 되었네."

"벌써 해가 지려나 봐. 언니 내가 마무리할게. 언니 니는 얼른 밥 지어."

"알았어. 그럼 수고해."

순이는 부엌으로 들어가서 밥을 짓습니다.

오늘도 갖가지 나물들을 열심히 무칩니다.

오늘은 순이가 바빠서 물가에 나가질 못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순이네 저녁 식사 차림은 산채 비빔밥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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