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른다는 말 뒤에 숨기 바빴던 나에게
휴직을 하겠노라 회사에 통보하기 전에 ‘이게 맞나’라는 불안감의 파도가 나를 덮친 적이 있다. 이제 내 인생의 온전한 책임을 내가 져야 하는데, 주변 사람들과는 다른 선택을 하려니 여간 불안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거쳐 온 사고의 과정을 털어놓고, 그를 통해 내린 결론이 ‘충동’이 아닌 ‘결정’이라 말해 줄 제 3자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렇게 무턱대고 심리 상담을 예약하고 그 날을 기점으로 총 4번의 상담을 진행했다.
첫 상담 때 기억에 남는 말은 단 한 마디 밖에 없다.
“이미 선택은 하셨고, 필요한 건 용기인 듯 하네요.”
음, 역시. 나에게 필요한 건 용기였어!
그 길로 부서장님과 면담을 했더랬지.
나란 인간은 어찌나 듣고 싶은 것만 듣는지. 나에게 필요한 건 사실 상담이 아니라 그냥 저 대답이었던 것 같다. 한 마디로 상담이라 포장된 ‘*답정너’를 하고 온 것이다.
그렇게 휴직이 확정된 이후로는 조금 후련해진 상태에서 상담다운 상담을 진행한 것 같다. 기질 검사도 해보고, 이런저런 질문과 대답을 주고 받고.
상담을 하면서 문득 깨달은 게 있다. 내가 '모르겠다'는 말을 참 많이 하더라는 것. 기억에 관한 것이든, 생각에 관한 것이든, 무슨 질문만 하면 습관처럼 모른다고 답한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아는데 내 깊은 곳을 보여주기 싫어서 모른다고 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모른다고 하는 건지, 기억이 안나서 모른다고 하는 건지. 나조차도 알 수 없는 지경이 되더라.
그 뒤로는 일상에서도 ‘모르겠다’는 표현을 자제하려 하고 있다. 내 외면하는 습관이 거기에서부터 나오는 것 같아서.
언젠가부터 스스로 되새기는 문장 중 하나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외면하지 않고, 직면하는 삶을 살고 싶다.
임경선 작가님의 『태도에 관하여』에서 ‘벚꽃 편지’라는 시가 나온다.
나는 어쩐지 갈수록 ‘흔들리는’ 사람들이 좋아집니다.-로 시작하는 시다. 그 시에서는 조금 더 다치더라도 순수하고, 약해지는 것의 아름다움을 말한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흔들리는 사람이라고.
그 시를 읽고 내가 말해왔던 ‘단단함’이 이 시에 나오는 흔들림과 유사한 의미를 가진다는 생각을 했다.
도망치지 않고, 직면해서 부딪히는 삶.
상처받더라도 최선을 다해 마주하고 진심을 다하는.
그런 방향의 강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내가 정의하는 단단함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삶을 살아보려 한다.
모르겠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정너 :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말만 하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