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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우마드 Aug 26. 2024

사람은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을 싫어할까?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는지 배우다.

오스트리아의 의사 겸 심리치료사 아들러는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라고 얘기했다. 맞는 말이다. 지금 당신의 고민이 무엇이든 그 고민의 본질은 '관계'에서 나올 것이다. 사랑, 우정, 직장 같은 조직 생활은 말할 필요도 없다. 돈 또한 마찬가지, 당신이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아마 '먹고 사는' 문제로 돈 걱정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 대한민국 사람들의 돈에 대한 고민은 '얼만큼 버냐'가 아닌, '쟤보다 내가 얼만큼 더 버냐'이다. 즉, 내가 아는 그 누군가 보다 어떻게 하면 내가 더 잘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고민도 결국 '관계'에서 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 우리의 고민이 왜 모두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지에 대한 얘기는 그만 줄이고 이 글의 핵심인 사람은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을 싫어하는지, 그래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마음'을 얻으려면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 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말해보려고 한다. 자, 시작해보자.




왕따를 당해버렸다.

중학교 2학년 나는 왕따를 당해버렸다. 원래부터 왕따는 아니였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고 하는 게 좀 더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나는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고 하고 싶은 말은 반드시 하는 아이였다. 붙임성도 좋았고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도 나는 곧잘 했다. 하고 싶은 건 했고 하기 싫은 건 안 했다. 쉽게 얘기하면 외향적이면서 당돌한 아이였다. 근데 그런 내가 왜 왕따를 당했을까?


그 당돌함이 문제였다. 나는 흔히 '일진'이라 불리는 무리이든 어떤 무리이든 내가 좋아하고 재밌으면 별로 따지지 않고 두루 잘 지내였다. 어떻게 보면 나는 친구가 제일 많은 사람 중에 하나였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 학교에선 체육대회를 했었는데 소위 일진 또는 몰려다니는 무리 중 한명이 나에게 체육대회가 끝나고 같이 밥을 먹자고 하였다. 나는 알겠다고 했고 각자 집에 간 뒤 6시에 어느 아파트 놀이터에 모이기로 하였다. 그런데 집에 가니 부모님께서 치킨을 시켜뒀었다. 물론 부모님이 나를 위해 치킨을 시켜두었지만 친구들끼리 한 약속이 먼저였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키러 약속 장소인 놀이터에 가야하는 게 맞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어린 마음에 눈 앞에 둔 치킨이 너무 먹고 싶었고 약속의 중요성을 잘 알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부모님이 치킨을 시켜주어서 저녁 약속엔 참석하지 못할 것 같다.' 라고 얘기하였다. 그런데 나와 통화를 하는 친구가 나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때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건가?'라는 어리석은 생각이 그때 당시엔 들었었다. 아무튼 그래서 나도 그 당시에는 같이 화를 내었다. 나의 주장은 이러했다. '내가 말 없이 안 나간 것도 아니고 부모님이 치킨을 시켜주셨고 나도 이게 더 먹고 싶다. 내가 꼭 가야하는 건 아니지 않냐 왜 화를 내는 건지 모르겠다.' 라면서 말이다. (지금은 저렇게 행동 절대 안 한다. 오히려 모든 약속에 10분 전에 나가는 게 몸에 베었다.)


너무 오래되어 기억은 못했지만 어린 마음에 조금은 당돌하게 얘기했을지 모르겠다. 내가 저렇게 얘기하니 그 친구들은 화를내며 전화를 급하게 끊어버렸다. 나는 그때 당시에는 도대체 왜 저러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철없는 아이처럼 맛있게 치킨을 먹고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다음날 등교를 했다. 문을 열고 반에 들어가니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말로 설명할 순 없지만 분위기가 바뀌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알 수 있었다. 이 위화감이 좋지 못한 위화감이라는 것을. 아니나 다를까 그 친구들이 나에게 복수를 위해서 반 친구들에게 나와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사전작업을 해놓은 것이다. '일진의 권력' 따위 같은 걸로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저께까지 스스럼없이 웃으며 대화를 잘 했던 친구들이 하루 아침에 나에게 등 돌리는 기분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친구들에게 말을 걸 때마다 나의 감정은 변했다. 처음엔 '어라?'였고 다음엔 '설마'였고 그 다음엔 '의심'이였고 마지막엔 '확신'이 들었다. 확신이 들었을 때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 그 감정은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 것 같다. 뭐든지 그때의 상황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나도 감정이란 것은 잘 잊혀지지 않는 것 같다. 감정은 소스통 같아서 아무리 짜내고 비워내려 해도 완벽히 비워내지지는 않는다.


나는 나와 약속을 잡았던 그 친구들이 나를 싫어하고 해코지 하는 것 자체는 아무래도 괜찮았다.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여도 크게 마음이 쓰이진 않았다. 내가 그때 당신 힘들었던 건 그 친구들로 인해 다른 친구들과 멀어지는 것이였다. 그것도 '전부'랑 말이다. '내가 싸운 건 저들인데 왜 내가 다른 친구들과 멀어져야하는가?

'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었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진짜 힘든 건 무엇인 줄 아는가? '쟤는 말을 걸어주면 받아줄까?'라는 희망으로 말을 걸면, 말을 걸 때마다 무너지는 희망. 그것이 그 과정 속에서 나의 가장 힘든 점이였다. 오히려 친구들이 많았기에 더 문제였다. 최근까지 나랑 웃으며 지낸 친구들, 내가 희망을 기대할 수 있는 친구들이 많은 것이 오히려 문제였다는 의미이다. 오히려 처음부터 전교생이 나에게 찾아와서 '너 싫어'라고 대놓고 말해줬다면 마음이 더 편했을 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애초에 기대를 안 했거나 전학을 갔거나 뭐든지 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점은 무엇인 줄 아는가? 나는 처음에는 내가 희망을 걸었던 친구들이 나와 저녁 약속을 잡았던 친구들(이하 "그 무리"라 칭하겠다.)의 '눈치'를 보고 나를 그렇게 대한다고 생각했다. 즉, 실제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그 무리들의 눈치가 보여 어쩔 수 없이 나에게 그렇게 모질게 대했던 거라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난 여기서 앞으로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지금의 난 이 사건이 내 인생 전반에 있었음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바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사람)을 좋아한다

라는 사실이다. 반대로 말하면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사람)을 싫어한다. 처음엔 눈치가 보여 나에게 그렇게 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아마 그게 맞았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참 재밌는 일이 벌여졌다. 그중 몇명은 나를 실제로 싫어하는 것이였다. 나랑 말 한번 안 섞어본 친구도, 나와 사이가 좋았던 친구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는 친구도, 싫어할 이유 조차 없는 친구도 시간이 지날 수록 나를 실제로 싫어하게 되는 것이였다. 예를 들어 나는 어떤 특정 친구에게 좋은 말만 했을 지라도 시간이 지나니까 나에 대한 이미지는 그 무리들이 만들어놓은 이미지가 되어버렸고 그 친구와 나의 관계와 상관 없이, 그에게도 나는 나쁜놈이 되어버린 것이였다. 참 재밌었다.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도 나를 싫어할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 날 싫어한다니. 참 아이러니였다.


인간의 뇌는 참 게으르다. 좋아할 게 없어서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싫어할 게 없어서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싫어한다. 진실이 어떻고 각자의 입장은 어땠는지 알아야 하는 건 너무 귀찮은 것이다. 그게 옳은 줄은 무의식적으로 알긴 하지만 그냥 싫어해버리는 게 마음이 편하고 몸도 편하다. 그렇게 싫어하게되는 거다. 왜 연예인들의 기사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을 보면 그렇지 않은가. 자극적이고 쉽게 오해할 수 있게 만든 제목과 내용들을 보고 진실은 고려하지 않으며 그 사람을 판단한다. 더욱 재밌는 건 기사를 보고 애매모호한 자기의 판단을 바로 서게 하기 위해서 댓글들을 확인하고 과반수 이상으로 치우쳐진 댓글의 반응을 기준으로 삼아 자기의 생각의 기준으로 세운다. 참 재밌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자기의 생각대로 판단하지 못하면 노예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사람은 이분법을 좋아한다. 애매모호한 것을 매우 싫어한다. 연예인 기사를 보고 판단을 할 때면 좋은놈 아니면 나쁜놈 두 가지로 분류해서 판단하곤 한다. '이런 점은 나쁘지만 그래도 이런 점은 괜찮은 것 같은데.' 같은 어른스러운 판단을 하는 사람은 정말 소수다. 나는 이런 점들을 보고 '개인은 똑똑할 지 몰라도 대중은 바보다' 라는 얘기를 하곤 한다. 다시 말하면 대부분의 개인이 바보라는 뜻이다. 이분법적 사고, 흑백논리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무단횡단을 하며 길거리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게 인간이다. 사람은 그렇게 다방면이 있다. 그러니 한쪽으로 치우쳐진 판단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세상은 흑과 백이 아닌 회색이다.


당신도 혹시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것(사람)을 싫어하거나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것(사람)을 좋아한 적이 있지는 않은가? 왜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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