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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우마드 Sep 02. 2024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닌, 하게 되는 것. 

전화가 왔다. 느닷없는 친구의 연애 상담 요청. 주변 지인들이 나에게 어떠한 형태이든 '상담' 요구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지만, 이 친구의 연애 상담 요청은 꽤나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워낙 독립적이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지 못하는 친구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나름 뿌듯했다. 남에게 의지를 하지 않는 이 친구가 남에게 의지를 하기로 했을 때 그 대상이 나였다는 것에 말이다. 그것도 연애 주제라니. 재밌을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이 친구의 고민을 자세히 얘기하기 전에 이 친구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자존심이 강하며 남에게 의지하는 것을 지양하는 사람. 사람과의 관계에 연연하지 않고 단단한 사람. 최근 내가 다시 본 드라마 '이태원 클라스'의 박새로이 같은 사람이라고 설명하면 조금은 편할 것이다.


그런 친구가 연애 상담 요청이라니? 그 친구의 고민은 이러했다. 본인이 너무나 좋아하는 여자가 생겨서 '덜컥' 사귀어버렸는데 '성격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덜컥 사귄 건데?"


"썸을 한 10일 탔나? 놓치기 싫어서 빨리 고백해 버렸어."


"아이고..."


정말 의외였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매우 신중하게 생각하는 이 친구가 10일 정도 만나보고 사귀자고 고백했다니 믿기가 힘들었다.(일하는 공간에 같이 있던 사이라고는 했다.)  


요지는 이러했다. 남의 기준에 맞추는 것을 매우 꺼려하는 이 친구가, 자기가 빠져버린 그 여자에게는 자신의 기준이나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그 여자가 바라는 대로 해주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설명하는 그 친구에게 사랑하는 사람한테 원래 그런 거 아니냐는 둥 오히려 잘된 일인 양 말을 했다. 그러나 역시 그 '정도'가 문제였다. 이 친구도 아주 꽉 막힌 친구는 아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범위에서는 나름대로의 융통성을 발휘하곤 했다. 그러나 그 친구의 여자친구가 꽤나 까다로운 것.


연락의 주기라던가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의 말투라던가 만나는 빈도수라던가 마찰이 있을 때의 행동양식이라던가 그 친구와의 가치관과는 그 차이가 매우 컸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이제 성인인 만큼 어른스러운 연애를 원하는데 내 여자친구는 고등학생의 연애를 원하는 것 같다."


내 입장에서는 막말로 그 친구의 여자친구가 연락을 5분마다 하기를 원한다 해도 그것을 '틀렸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건 그 사람의 가치관이고 나름대로의 연애 스타일이니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 법.


문제는 이 중이 절을 떠나지 않고 모든 규칙을 따르려고 하는 점이었다. 추측건대 이 친구도 그동안 불필요한 관계를 맺지 않으려고 한 점이 나름대로의 단단함이라는 것도 있었겠지만, 두려웠을 것이다. 그 관계에서 오는 상처들이 말이다. 그래서 애초에 나름대로 불필요한 관계라고 판단이 되면 그 관계를 맺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방어기제를 펼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친구는 약 6년 정도는 연애 또는 그와 비슷한 것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니 그 긴 기간 동안 얼마나 외로웠으랴.


나는 그 외로움이 이 친구에게 초조함을 가져다주고 그 친구 생각에 앞으로 이런 여자친구는 만나기 힘들 것 같다는 나름의 생각이 이 친구를 불안하게 하고 초라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을 연기하면서까지 '구애'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최악은 그 친구의 여자친구가 '회피형'이라는 것. 조금의 마찰이 있다면 그 문제를 즉시 해결하기보다는 그 자리를 떠나거나(잠수를 탄다거나) 하는 유형인 것이다. 차라리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겠다고 말을 하고 그렇게 한다면 문제 될 건 없지만, 그런 '공지'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회피'를 선택하는 유형인 것이었다.


그 즉시 문제를 해결해야 마음이 편해지는 유형인 그 친구는 이러한 점이 특히 힘들었다고 내게 말했다.(나 같아도 그럴 것 같았다.) 자기 생각엔 별로 잘못을 한 것 같지 않았는데 별다른 설명 없이 그의 여자친구가 잠수를 타면 다시 연락이 올 때까지 그 1분 1초가 그 친구에겐 지옥이었던 것. 내가 '잘잘못을 떠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태도는 마땅히 가져야 하는 거 아니냐. 그 태도는 명백히 너의 여자친구가 잘못됐다.'라고 얘기했지만 그 친구는 헤어지기가 무서워 그조차 어필하지 못하고 그저 그의 여자친구가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고 먼저 연락이 올 때까지 혼자 전전긍긍했다.


나는 화가 났다. 그 친구 답지 않은 모습이 말이다. 사랑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 사랑 아니란 말인가? 그래서 나는 그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연기해서 얻는 사랑이 무슨 의미가 있냐? 그렇게 해서 얻는 사랑이라도 네 여자친구는 너의 연기하는 모습을 사랑하는 거지. 너를 사랑하는 게 아니야. 그리고 그 너답지 않은 연기. 그거 얼마나 할 수 있을 것 같아? 너답게 해. 너답게 했는데 안 되면 아닌 인연인 거다."


사실 엄청난 깨달음을 주려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그 친구는 나의 말을 듣고 잠깐 침묵한 체, 혼자 골똘히 생각을 했다. 5분 정도 기다렸을까. 그 친구가 입을 떼기 시작했다. 


"맞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내가 여유가 없었어. 연기하는 나는 어차피 의미가 없었어. 너 말대로 나답게 해서 여자친구와 관계가 끊어진다면 어차피 아닌 인연인 거겠지. 맞는 말이야. 나도 나답게 해야겠다."


며칠간 전전긍긍하던 그 친구는 나의 '충고'에 정신을 다시 차렸다고 했고, 자기답게 행동하겠다고 얘기하며 나에게 고맙다고 말을 건넸다. 그렇게 상담 자리는 끝을 내렸고 나는 며칠 후 그 친구에게 '나답게'한 행동에 대한 결과물을 들을 수 있었다.


"그만하자고 얘기했었어. 너와 나는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특히 다른 건 이해하지만 자기 마음대로 잠수를 타고 나를 매분 매초 죽이는 것은 참지 못하겠다고 얘기했어. 그래도 너무 몰아붙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 침착하게 얘기하려고 했어. 아름다운 이별이라는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아름다운 이별을 원했거든. 그래서 헤어지자고 말은 했지만 틀린 게 아니라 우리가 다른 거라고 지금까지 너한테 좋아한다는 말이나 사랑한다는 말은 매번 진심이었다고. 우린 여기까지지만 지금까지 진심으로 고마웠다고 얘기했어. 그런데 재밌는 일이 벌어졌어."


나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미안하다고 하더라. 사과하고 싶대. 찾아오더라. 걔가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다고 했어. 나의 고마움을 잠깐 잊었대. 고치겠대. 잘하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나도 마음이 약해졌었어. 그래도 이렇게 얘기했어. 앞으로 너에게 내가 초라해지는 말은 하지 않을 거라고. 원래 난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연기했다고. 앞으로는 나답게 할 것이라고. 그게 맞지 않다고 판단되면 그때는 우리 관계를 확실히 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떨렸어. 이렇게 강하게 얘기하는 것은 처음이었거든. 내가 이렇게 말하면 걔는 감정적으로 대응해서 화를 내며 그 자리를 떠날 줄 알았어. 미안한 말이지만 나름대로 간을 본 거지. 그래도 말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어 어차피 나는 미리 혼자 마음 정리하고 헤어지자고 말했던 거였으니까. 이렇게 얘기했을 때 다시 한번 감정적으로 나오면 어차피 아닌 인연인 거라고 판단을 했어. 너 말대로 말이야. 근데 알겠다고 하더라. 잘하겠대. 걔한테 그런 말이 나오다니. 정말 신기했어.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번 잘하기로 했어. 그리고 정말 걔는 변했어. 이젠 정말 나한테 잘해. 나는 그저 나답게 행동했을 뿐인데 오히려 더 사랑받는 느낌이 들어. 정말 신기해. 정말 고맙다. 네가 해준 충고가 정말 큰 도움이 됐어."


내가 해준 충고 때문에 그 친구와 그 친구의 여자친구 간의 관계가 바람직한 연애를 향해 방향을 우회했지만 나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가끔 상대방의 사랑을 위해 나답지 않은 모습을 '연기'한다. 물론, 뭐든지 자기 기준대로 자기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양보 또는 배려 차원에서 행해져야 마땅할 것이다. 그 기준을 넘어서면 그것이 바로 나답지 않은 연기가 되는 것이다. 연기를 하면서까지 상대방의 사랑을 얻는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으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제일 사랑해야 마땅하다. 사랑이 헌신이라지만 자신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다른 사람을 위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을 발견한다는 것은 자신 스스로 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발견하는 것인데 그것이 '나보다 우선할 사람'은 아니다. 먼저 스스로부터 사랑하고 보호하자. 자신을 상처 내고 초라하게 만들면서까지 사랑하기에는 우리 스스로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 아닌가.


양쪽 모두 '나답게' 행동하는 모습을 서로 사랑했을 때,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다움'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아닌 인연인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그러니 스스로 갉아먹으면서까지 남을 위하지는 말자.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사람은 나 자신이다.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아야 남도 사랑할 줄 안다. 


그리고 나의 친구처럼. '나답게' 행동했을 때 오히려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잘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이 당신을 좋아하기로 했을 때 지금 당신의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좋아하기로 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렇지 않은가? 사랑을 약속할 때 바꿔나가야 하는 것도 있지만 바꾸지 않아야 할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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