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말은 틀렸다.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다.
선한 사람이 있고, 악한 사람이 있고, 위기에 빠진 사람을 아무 사심 없이 구해주는 사람이 있고, 위험에 빠뜨리는 사람이 있다. 스치는 지나가는 사람은 괜찮다. 그러나 지속적인 만남이 있는 환경에 처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사람을 편견 없이 대해라, 그렇게 배웠다. 선입견을 가지지 마라, 그렇게 배웠다. 그렇게 가르쳤다. 내 하기 나름이다, 그렇게 배웠다. 그렇게 가르쳤다. 그러나 그렇게 배워서도 안 되었고, 그렇게 가르쳐도 안 되었다.
말은 하기 나름이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가르쳤다. 그러나 그렇게 배워서도 안 되었고 그렇게 가르쳐도 안 되었다. 말을 잘해도 듣는 이가 고깝게 들으면 고깝게 말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
성선설도 있고 성악설도 있다. 그러니 선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는 것이다. 위기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는 사람은 선한 사람이고, 위험에 빠뜨리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다. 악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을 악하다고 할 수 있는가? 예를 들면 이런 사람들이다. 서류로 계약을 하지 않아도 구두로 계약을 해도 계약인데 구두계약은 공기 중에서 사라져도 양심에 남아 있기 마련이다. 점심식사는 식비로 제합니다. 한 달 점심 식사로 5만 원을 제합니다. 한 달 점심식사로 5만 원이면 1년 60만 원을 식비로 제하고 월급을 주는 거다. 그런데 1년 계약을 하고 점심 식사를 다하고 가끔은 저녁 식사까지 하고 간식까지 다 먹고 난 후에 점심 식사 값으로 식비를 제한 60만 원을 부당하게 고용주가 제한 거로 고소를 하는 거다. 이런 사람은 선한 걸까? 악한 걸까? 아무도 그렇게까지 하지 않는데, 그런 사람을 옆에 두고 본 사람이 자신도 나갈 때 고소까지는 안 하겠다. 그러나 그 식비 60만 원을 주지 않으면 고소하겠다고 협박하고 간 사람도 보았다.
그럼 이런 사람은 악한 사람이 아니고 선한 사람일까? 1년 동안 일을 할 때는 아무 말도 없다가 나갈 때는 몇 시에서 몇 시까지 일하는 시간보다 단 1분이라도 더한 시간을 다 적은 수첩을 내밀면서 부당으로 일을 시켰다고 고소하는 사람은 선한 사람일까? 악한 사람일까?
고용노동부는 선한 사람을 도와주는 곳일까? 악한 사람을 도와주는 곳일까? 사무관은 선한 사람만 있을까? 악한 사람도 있을까? 누가 선할까? 누가 악할까? 고소자가 선할까? 악할까? 고소를 당한 자가 선할까? 악할까?
사람을 잘 선택해야 한다. 사람을 잘 선택하지 않았을 때 그 피해는 오롯이 선택한 사람의 책임으로 된다. 사람을 어떻게 잘 선택할 수 있을까? 어떤 선택은 위기에 빠진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을 선택한 것이 되고, 어떤 선택은 위험에 빠뜨리는 사람을 선택하게 된다. 어떤 사람을 선택해야 뒷일이 안 생길까? 그런 혜안이 있으면 삶이 편해진다.
이미지나 일러스트레이션도 마찬가지다. 혜안이 없을 때, 바보처럼 아무것도 몰라서 썼을 때 닥칠 불행을 모르고 행복하게 웃고만 있다가 글을 쓰는 것이 좋아서 출간작가 명함이 좋아서 어떤 결과로 될지 모르고 분별없이 행동했다가 어떤 악인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선택하기 전에 분명히 알고 싶은 게 많아진다. 모르면 을이 되고 알면 갑이 된다. 갑은 자신을 지킬 수가 있다. 갑질이 아니라 갑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