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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랖 Dec 07. 2024

내가 공무원을 그만 둔 이유 2

(전편에서 이어집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너무 무서워 자리를 박차고 뛰쳐 나가볼까도 생각해봤다.

꿈쩍도 안했다 내 발이.  일어서서 나가는 순간 칼이 등에 와 꽂힐 것만 같고 가만히 있자니 칼을 들고  달려들  같고.

정신장애를 갖고 있는 분들의 눈빛을 보면 살기가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순간이 그랬다. 잔뜩 겁먹은 내 표정을 읽었는지 입술비죽 올리며 비웃는듯 보였다.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우리 아빠가 나를 때릴려고 몽둥이를 들고 올때도 분명 저런 술냄새가 났었는데..


심장이 미친듯이 나대기 시작했다.

오늘 나는 여기서 죽는 건가. 예전에 우리 아빠도 자식 새끼들이고 뭣이고 다 죽여버린다며 칼을 들고 와 쌩난리를 쳤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우리엄마는 나를 지켜주지 않았지만 나는 뱃속 내 아이만은 어떻게든 지켜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칼을 들고 덤벼들면 배를 감싸고 등을 돌려야겠단 계산까지 마친 후

안보이게 조용히 심호흡을 했다. 소리치면 종호가 멀리서라도 달려오겠지..

그래도 저 칼을 먼저 어떻게든 해야겠다싶어


“왜 이렇게 연락을 안받으세요? 엄청 걱정했잖아요!”

하며 내 두꺼운 허벅지로 과도를 깔고 앉아버렸다.

그분도 엄청 밝은 톤으로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는 내가 당황스러웠는지 잠시 멍~하더니 “아~예”하면서 쭈볏쭈볏 앉으신다.

이윽고 사무실 전화를 받으러 갔던 종호가 들어와 옆에  앉으니 그 민원인분이 흠칫 놀라는 눈치다. 나 혼자 온 줄 알셨나벼?

억울하게도 공무원 성별에 따라 태도가 싸~악 바뀌는 민원인들이 의외로 너무 많다. 여자라면 일단 무시하고 막말을 내뱉는다 요즘 세상에도.

정신질환 장애를 앓고 계신 남성분들은 특히 더 그런 성향이 짙어보였다.  남자들이 좀 큰소리내면 엄청 무서워하는 분들을 자주 봤다. (제 기준에서요)

 내가 들어갔을 땐 한껏 부풀렸던 어깨가 종호가 등장함과 동시에 약간 수그러든것도같은데...아예 등을 돌려 벽보고 앉으신다. 얼씨구.

너는 말해라 나는 듣기싫다.. 암튼 나는 그 등짝에 대고 전할 사항을 줄줄히 읊어드리고 그 방을 나왔다. 그때서야 집주인 분이 오셔서 집세는 언제 낼거냐 안낼거면 집을 비워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신다.

상황을 정리하고 밖으로 나오니 다리에 힘이 안들어가 제대로 걷질 못하겠다. 긴장이 이제야 풀렸나보다.

종호가 옆에 있으니 모냥빠지게 무서웠다고 말하기도 그렇고..아무렇지 않은 척!이라도 괜찮은 척!이라도  해야했다. 나는 종호씨 담당 “쌈닭”주사님이니까.

좀체 나대던 심장이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질 않아

종호를 먼저 동사무소로 들여보내고 근처 벤치에 앉아 가뿐 숨을 마저 고르고 심장도 다독여봤다.


나는 천식환자다.

10년을 넘게 앓았고 눈만큼씩 좋아지시 시작해 지금은 천식용 흡입기(벤토린) 사용이 현저히 줄었다.

임신해서는 더더욱 조심스러워 숨이 차약을 안쓰기 위해 온몸을 들썩이며 숨구멍 사수에 애를 쓰며 버텼다.

(천식은 기도에 알레르기 반응이 와서 숨구멍이 좁아지는 현상입니다)

주머니에서 흡입기를 꺼내 몇 번 들이마셨다. 천식도, 내 트라우마도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지금 사수님(여성)께서 말씀해 주셨던 일화가 생각났다.

기초생활수급자 심사에서 탈락한 민원인이 퇴근시간 때쯤 칼을 들고와 사수님 목에 들이댔다고...

절체절명의 순간에

“ 나 지금 죽이면 다음번 수급자 심사 때도 떨어질텐데요?” 말씀하셨더랜다. 눈알을 굴리며 요리조리 생각해보던 그 민원인은 칼을 쓰윽 내렸다고..


사수님의 그 말씀에 감탄했었는데..어쩜 그리 긴박한 순간에도 저리 대범하게 말씀을 하실 수가 있었을까 하고..

나는 목에 칼까지는 안들어왔어도 너무 무서워 꼼짝도 할수가 없었는데 말이다.

적어도 사수님은 친아빠한테 맞아서 생긴 트라우마는 없으셨나보다고 나 혼자 생각해봤다.

나는 아무래도 땡! 인가보다

진정한 사회복지사에 적합한 인재상이 아닌가보다. 땡!


정신질환 장애인들은

가족들도 감당이 안돼 나몰라라 하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일이 생겨서 연락드려도 그닥 신경을 쓰려고 하지 않고 귀찮아 한다.(일부)

내가 근무하는 곳은 광역시다. 시골틱한 동은 그리 많지 않은데 유달리 논농사, 밭농사를 많이 짓는 동이 있다.

그곳에 정신질환 장애를 앓고 있는 25세 처자가 살았다.

부모도 지적장애를 앓아 그 처자 돌보기가 어려워 마을분들 전체가 그 처자를 돌봐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심성은 착한 처자에요)


어느 날엔가는 식칼을 들고 마을을 돌아댕기는 사건이 있었다. 마을분들이였다면 그러려니 했을 껀데

마침 외지분들이 그 모습에 보고 경악해 경찰에 신고를 했다.

사회복지 담당 주무관들이 급하게 파견됐고 언론에서도 떠들썩하게 취재할 기미가 보이기 시작하자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제공되는 집세 저렴한 아파트로

그 처자를 거의 강제로 입주를 시켜버린거다. 아마도 혹시나 일어날 사건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목적으로다가.


태어나고 자라 맘껏 뛰놀았던 동네를 벗어나 강제로 아파트에 들어가게 된 착하지만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그 처자는 행복했을까?

거의 무너질 듯한 집을 나와 혼자 신축아파트에 살게 돼

마냥 좋기만 했을까? 아니다.

밤낮으로 소리를 질러대 경찰이 매일 출동하다시피 했고 어느 날 새벽엔가는 베란다에서 뛰어내릴려는 위험한 시도를 해서 소방대원이 출동하고 아주 아파트 단지 전체가 난리가 났었다.

어떤 게 맞는 걸까?

누굴 위해 그 좋은 아파트로 그 처자는 입주를 했던걸까? 난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부모도 장애를 앓고 있고 마을주민들에게  사고가 날까 싶어 정신장애인 처자를 낯선 아파트로 몰아넣는게 맞는걸까? 그 처자를 그냥 예전처럼 자유롭게 그 마을에 살게 하는게 맞는 걸까?

참 어렵다. (그 처자는 상태가 더욱 안좋아져 정신병원에 입원조치됐다)

내 직업에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네이버 spc매거진 (위 사진은 제 글과는 무관한 사진입니다 )


이 사진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어려운 분들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에 따뜻한 정이 느껴지시나요??

나는 연탄 나르는 이런 장면만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연말이 되면 여기저기서 문의전화가 온다

자녀들과 연탄기부도 하고 봉사활동도 하고싶다, 봉사단체인데 연탄무료나눔 행사를 하고 싶다 등등.  


좋다 이거야!!

근데 요즘 누가 저런 곳에서 연탄을 때고 산단 말인가?

그분들 요구사항은 늘 똑같다. 봉사대원들이 쭈~욱 늘어서서 손에서 손으로 연탄을 나르는 장면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찍고 싶다는. 그런 집으로 봉사활동을 가시겠다고. 한결같다. 장소섭외해서 연락주란다.

아니 뭔 드라마를 찍으러들 오시나..

도시가스가 우리  깊숙이 들어와있다.

나는 오지도 아니고 광역시에 산다. 주택정비사업을 해서 저렇게 허물어지는 집에서 연탄 때고 사셨던 분들은 이미 다 아파트로 가셨다.

연탄말고 가스비나 난방등유로도 기부해주시면 안되냐고 해도 여지없다.


그래서 리스트가 따로 있다.

저리 산꼭대기에 연탄 때고 사시는 분들 리스트!!

근데 더 웃긴 그분들도 연탄을 너무 많이 받아 더 이상 쌓아놓을 곳이 없다며 거절하신다.

이런 젠장!!!!!


국가에서 보조해주는 아파트에 살지만 밥값이 없어 먹고 싶은거 제대로 못먹는 아이들도 많. 청년주택에 살지만 난방비가 무서워 추운 겨울에도 두꺼운 옷을 겹쳐 하루 한끼로 버티며 사는 청년들도 많다. 거동이 불편해 도움 손길조차 받아보지 못한 어르신들도 수두룩이다.

그러나.도우려는 자들과 도움을 받고자 하는 자들 사이에 이런 웃픈 격차?가 발생해 정작 도움이 필요한 분들은

소외당하는 웃기지도 않는 상황들이 내 주변에는 자주 발생했다.

이 힘없는 사회복지사가 할수 있는 일이라곤 없다. 

기껏해야 동사무소에 다달이 기부해주시는 쌀과 물품들을 나누어 드리는 일 밖에는..

법에서 정해놓은 그 기준선에 걸쳐있거나 약간 넘어버린 분들을 도울 힘이 내겐 없다. 정말 힘이 빠지고 숨이 막힌다.


또 흡입기를 칙칙 뿌려댔다.

숨막히는 상황에 억지 숨이라도 쉬어야겠기에..



기초생활수급자 분들 대상으로 집을 고쳐주는 사업이 있었다.

인기가 많은 사업이라 순서 기다리는데 길게는 2년 가까이 대기해야할 정도다. 집고치기라고 해봤자 도배와 장판이 전부. 그래도 서로들 하고싶어하신다.


어느 날 관내 장애인분께 연락이 왔다. 오늘 집고치기로 해서 관계자분들이 오셨는데 절대 짐을 옮겨주지 않는다고 버티고 있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다는 전화였다.

급하게 현장으로 달려가봤다.

장애인분은 40대 남자분으로 중증장애인이다. 하반신을 거의 움직이질 못해 늘 휠체어를 힘겹게 타동사무소를 방문하시는 분이시다.

도배, 장판으로 새로 해야하는데 짐을 옮겨놓지 않은 상태라 일이 더 진행되지 못하니 그냥 가시겠단다. 분명 며칠 전부터 고지했다며..

얼마를 기다려서 얻은 기회인데 이분들이 지금 무슨소리를 하시는지..

“장애인 분이신데 같이 몇개만 좀 옮겨주시면 안되나요? 저도 도울께요.“ 살림살이라고 해봤자 진짜 몇 개 안됐다. 내가 힘만 셌다면 번쩍 들어 날랐을 껀데..


절대 안된단다.

계약할 때 도배, 장판외에는 절대 짐 옮기는 것, 자질구레한 쓰레기 정리 등등 아무것도 일절 해줄수 없다고 장정 두 분이 허리춤에 손을 턱하니 얹고 버틴다.

중증장애인분이잖아요 가족도 없습니다 봉사활동도 하시는데 좋은 일 하신다 생각하고 살림살이 몇개만 옮겨주십사 다시 간곡히 부탁드려봤다.


이젠 손사래까지 치신다. 준비가 안되면 자기네들은 다음 집으로 가야것단다. 일이 계속 밀려있어 다시 언제 올지는 장담 못한다고 정내미 뚝뚝 떨어지게도 말씀하신다.


자치위원장님께 급하게 전화를 드렸다.

동 일이라면 두 손 걷어붙이고 동분서주해주시는 고마운 분이시다. (각 동마다 자치위원장님있는 거 혹시 알고들 계십니까?)

상황을 설명드리니 동네 장년층 분들 몇몇을 데리고 멋지게 뛰어오시는게 아닌가

그때 자치위원장님의 모습은 나에겐 슈퍼맨이요 토르였다.

그 몇개 안되는 살림살이 좀 옮겨주지 우리 사회복지사님 난감하게 만드냐며 자치위원장님이 관계자분들께 한마디 하셨다.

또 작아진다.

자치위원장님이 안계셨다면 나 혼자 이 일을 어찌 해결했을까? 생각만해도 눈앞이 캄캄해졌다.

어려운 분들 도와드리는 일이 좋아서 사회복지사가 됐다. 법에서 정해놓은 기준과 내가 일하는 현장에서의 괴리감이 너무   내 마음이 저 밑으로 가라앉아버리는 것 같다. 처음 입사할 때 가졌던 해맑은 내모습점점 사라지 있었다.

내가 가진 힘이 보잘것 없어서,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몇 개 안돼서...

나는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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