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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랖 Dec 14. 2024

의원면직하겠습니다!

에필로그

“동장님! 저 내일 출산휴가 들어갑니다.”


으읭? 자네 언제 임신했는가? 나한테 미리 얘기하지 그랬어?”

정년을 1년 앞두신 동장님의 말씀이시다.

임산부라고 몇 번을 들으셨으면서 ㅋㅋ 만삭이라 배보면 바로 아실텐데 이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암튼 공무원의 장점은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크게 눈치 안보고 쓸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전혀 꺼리낌없이 쓸 수 있다는 건 아니다. 전후사정 봐가면서 미리 출산날짜에 맞춰 총무과랑 상의도 하고 내가 빠진 업무 공백을 옆에 있는 내 동기나 팀원들에게 떠넘기면 안되니까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무모하게 그냥 툭! 출산휴가 들어가버리는 경우도 간혹있긴 하지만.


그렇게 출산 2주 전까지 근무를 하다가 아이 낳고 1년간 육아휴직을 했다. 휴직하는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이직하려는 야무진 내 계획은 늘 그렇듯 거지같은 세상의 걸림돌에 보기좋게 넘어져 무릎을 꿇게 되었고

복직 후 내 트라우마 증상은 더더욱 심해졌다. 술 취한 민원인이 찾아오면 어쩌나 덜덜 떨리는 마음으로 늘 근무했고 전쟁터에 나간다는 심정으로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했다. 근무시간 내내 긴장상태를 유지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온 몸에 있는 안테나를 다 켠 상태로 업무를 보니 집에오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다.

복직은 구청으로 했고 팀원을 잘 만난 덕분에 우리 팀(10명 남짓)은 분위기가 좋아  과장님, 국장님께도 인정받는 인기많은 팀이었다.

근데..그 인기가 요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팀원(총 10명) 중 4명이 나와 10살 가까이 차이나는  어여쁜 주무관들이라 자꾸 회식을 강요하셨다. 그런데 꼭 술 잘 마시고 리액션 좋은 그 4총사 중간에 과장님, 국장님이 끼어 앉으셔서는 술을 부어라 마셔라 해대니 아무리 젊은 나이고 술을 좋아한다고 해도 버텨낼 재간이 있나. 술을 못먹는 나는 옆에서 발만 동동 굴렀고 우리팀 계장님은 팀원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알코올에 찌들어 가든가 말든가 흥겨워 매일이 싱글벙글이시다.  

본인 승진에 그 4명의 팀원들을 밟고 올라가실 생각이신지 자꾸만 회식자리를 잡아오셨다. 대단한 능력이시다.


점심시간도 근무의 연장선이다. 과장님을 모시고 늘 식사하시는 서무님( 과 총무를 서무님이라 부릅니다)이

불만을 터뜨리셔서 팀별로 돌아가며 과장님과 식사를 한다. 아니 과장님은 혼밥의 즐거움을 모르세요? 뭔 또 팀별로 우르르 데리고 가서 식사를 하시나 나 참..이해가 안된다.

제가 만약 과장이 된다면 점심시간은 다 혼밥!! 자기만의 시간!! 아주그냥 칼같이 지켜줄거야!얄짤 없어!!

분명 팀별로 돌아가야 하는데 우리 팀 순서가 다른 팀의 2배였고 점심 시간에도 과장님의 “라떼는 말이야!”에 리액션 할라 점심 수발들라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먹긴 한것 같긴한데..소화제를 매일 영양제처럼 섭취하는 날이 늘어 갔다.

사랑하는 팀원들아!! 리액션 좀 그만해라 너희들이 그리 사회성이 좋으니 회식이 끊기질 않잖냐...


술을 못먹는 나는 회식 마무리하고 윗분 나리들 태워다 드리고 팀원들 대리 불러주고 또 데려다주고 안심귀가 담당을 자처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자꾸만 솟구치는 죄책감은 어찌 할수가 없었다. 언니가 돼갖구 어린 동생들이 술먹고 꽥꽥거리고 있어도 뭘 더 해줄수가 있나, 술잔을 마구 돌려대는 과장님, 국장님의 횡포를 막아줄수가 있나..

좌절의 연속이었다.

우리팀 계장님께 회식이 너무 자주 잡혀 힘들다고 애들 몰골 좀 보시라고 했더니


“00씨! 승진 안할거야? 기회는 있을 때 잡아야지!” 하신다. 저  몇 달 전에 승진했는데요? 다른 팀원들도 승진한지 얼마 안서 승진 할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지금 승진 문턱에 걸려있는 사람은 계장님 뿐거든요?? 다 아시면서 지금 눈 가리고 아웅하십니까??

그리고 뭔 승진을 회식으로 한답니까? 실력으로 해야죠. 10시, 11시 퇴근은 기본이요 다음날 숙취에 절어 출근하는 팀원들 얼굴 보는건 정말이지 곤욕이었다.

(동기들의 말을 빌리자면 코로나 이후 회식이 좀 잦아들어 그렇게 행복했다고 한다. 코로나 종식후 조금 잠잠해진듯 하더니 다시 부활한 회식문화는 그나마 강도가 예전보단 덜하다고.)




그리고 고위 공무원 나리들께 이 자리를 빌려 한말씀 올리것습니다! 여러분들의 넘쳐나는 음주가무의 열정과 끼를 부하직원들 하고만  즐기지 마시고 가정에서 발산하십시오! 물론 싫어들 하겠죠~ 가족도 싫은데 남인 직원들은 얼마나 싫고 힘들겠습니까??  잘 새겨들으십쇼

그러시다 고독사 하십니닷!



나는 알코올 중독 아빠에게 맞고 자라  엄청난 트라우마가 생겼다. 그래서 이상형도 술 안먹는 남자다.

딱 그 이상형이 우리 남편!

술도 안마시고 담배도 안피고 다정다감한 사람이다.

(효자라는 엄청난 단점이 있긴하지만)


그런데 내가 지금 돈벌이 하러 나온 곳에서 그 술 처먹는 인간들 뒤치다꺼리를 하고 앉았다.

그것만으로도 끔찍한데 나혼자 맨정신이라 저 인간들은 왕창 퍼마시고 하나도 기억 못하는 그 진상짓들을 온전한 정신으로 다 지켜봤던 나는 다 기억이 난다. 망할!!

가혹하다 진짜. 그 높은 나리들은 다음 날이면 다시 리셋상태로 아무렇지 않게 행동들 하시지만 전날밤 이뤄졌던 그 말투가! 그 행동들이! 다 하나하나 되살아나 아침마다 맨정신으로는 버티기 어려울 정도다. 정말 내가 튼튼한 간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장담컨대 술독에 빠져서 헤어나못했을거다. 이 어마무시한 환경을 어찌 맨정신으로 견뎌낸단 말인가.

대신 커피를 들이켰다. 커피가 술인양 생명수인양 아침댓바람부터 벌컥벌컥 들이켰고 이 정도면 내 피 색깔은 레드가 아니라 블랙이 아닐까하는 합리적 의심도 해본다.  아메리카노 올블랙 블러드!ㅋㅋ


버티고 버티다 다시 육아휴직에 들어갔다. 일에 대한 열정도 사라진지 오래~ 민원인들의 ‘갑’질은 날이 갈수록 진화했고 기초생활수급자들끼리 어떻게하면 나라 혜택을 더 많이 받아먹을지 어떻게 행동하면 사회복지 공무원들을 더 괴롭힐지 연구하는 밴드며 카페도 생긴다는 소식에 치 떨렸다. 손이 덜덜 떨려 차마 찾아보진 못했지만. 또 복지만 담당해도 이렇게나 진이 빠지는데  윗분들이며 팀원들 술시중 드는것도 더는 못해먹겠고 그때쯤 참다참다 못한 내 몸에 이상신호가 와서 수술날짜도 잡았더랬다.


다시 복직할 수 있을까? 계속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 ‘갑’들의 갑질을 계속 내가 감당해낼 수 있을까? 몇날 며칠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잠을 못이뤄 마트에서 이슬톡톡 6캔짜리를 사왔다.


딸과 남편을 재우고 나혼자 눈물을 안주삼아 홀짝홀짝 마시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오홍~ 이래서 다들 술을 마시는가베?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하는 이 괴로움을 알코올이 조금은 희석시켜 주는것만 같아 잠깐이지만 위로를 받는것도 같았다.

그렇게 한 캔, 두 캔, 세 캔... 세 캔째 까고 나니 몸 상태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고작 3캔 먹고 그것도 높은 도수도 아닌 도수 3%밖에 안되는 과일향 함유 술 좀 마셨다고 이럴수가...


손톱이 으스러지기 시작했다.. 엄지 발톱이 빠졌다.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고 꽤 이쁘단 소리 들으며 살아온 내 미모가 퇴색하기 시작했다.

가장 참기 어려운 건 가려운 곳을 맘대로 긁어댈수가 없다는 거다. 손톱이 아주 찢어지고 난리가 났다. 피가 나고 고름이 생기고 어린이집 다니는 딸아이 머리를 묶어줘야 하는데 손톱이 이모냥이니 고무줄로 땡겨서 묶어줄수가 있나.

한 번은 양갈래로 아이 머리를 묶어주다가 너무 아파 눈물을 펑펑 쏟은 적도 있었다.


간이 맛탱이가 갔단다. 

아니 어떻게 생겨 먹었길래 토끼간도 아니고 나름 인간의 간일텐데 이리도 알코올에 취약하단 말인가.

간 해독약을 먹기 시작했다.  딸랑 이슬톡톡 3캔이었지만 내 손톱이 제대로 자라나기까지는 그뒤로 3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진짜 비루하다 비루해!!  

아마 스트레스가 너무 심한 상태에서 알코올까지 섭취해서 그런게 아니였을까 짐작만 해본다. 참다참다 남편에게 상의를 했다.

“나..그만두고 싶은데...복직 안해도 돼?” 차마 떨어지지 않는 말을 수 백 번 연습하고 또 연습해서 숨도 안 쉰채 한번에 내뱉었다.

돌아온 대답은 예상했던 그대로!


놉!! 그럴줄 알았다. 역시 우리 남편!!

지금 같이 돈을 벌어줘야 우리 미래가 어쩌고 .. 어떻게 합격한 직장인데 지금 그만두면 되겠냐 저쩌고..

남편이 아니고 나랑 친하지 않은 지인들이 할 법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래. 인정!! 물론 나도 그만두지 않고 버텨보려고 안간힘을 썼으니깐.. 그래도

많이 힘들었구나. 자기 힘들면 그만둬도 돼.

지금까지 버텨내느라 고생많았어! 이 한마디 듣고 싶었는데.. 그게 그렇게  힘드냐? 어쩜 저리 근면성실한 소리만 지껄이실까나. 맞네 맞아 내남편!!


복직날이 점점 다가오고 내 증상이 점점 심해졌다. 시아버지까지 가세해서 나를 괴롭히니 정말 죽고 싶단 생각 밖에 안들었다. 매일 눈물로 지새우다 이대로 아침에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창문을 보면 나도 모르게 뛰어내리고 싶단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한 번 내 손에 움켜쥔 그것을 내려놓기가  어려워서, 주변의 기대를 차마 떨쳐버릴수 없어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공무원들 소식을 우리는 뉴스에서  가끔씩 접하게 된다. 나에게 그럴 용기가 생길까봐 덜컥 겁이 났다.


나 그만 둘거야. 자기가 뭐라해도 어쩔수 없어. 그래도 죽는 것보단 공무원 때려치는 게 낫잖아?

남편에게 선포하듯 통보했다. 계속 반대하던 남편도 이번엔 알았다고 답해줬고 나는 복직 대신 의원면직을 선택했다.


내가 힘들게 살아왔으니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앞장서서 봉사하며 살아갈 수 있을거란 오만에 사로잡혀 있었던게 아닐까? 자기 상처 하나 제대로 감싸지 못하면서 어디서 그런 자신감과 자만감이 새어져 나왔는지. ‘나’ 라는 이 작은 땅뙈기 하나 가꾸고 열매 맺지도 못하면서 뭔 남을 돕것다고 사회복지사가 되어서는 그 작은 땅뙈기 마저 척박하게 만들어버리고 있는지 생각만 해도 한심했다.


초등학생 때 엄마가 재혼을 해서 혼인신고를 하는 바람에 난 소녀가장이 됐다.   엄마가 동사무소에 신청을 해서 나와 내동생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학비도 면제받고  그 외 다른 복지혜택도 받았을거다. 난 그 사실을 고등학교 3학년 때 취업을 나가게 되면서 알게됐다. 나름 충격이었다. 학대가정, 이혼가정, 한부모가정, 재혼가정, 소녀가장, 기초생활수급자 모든 상황을 다 겪어봤으니 또 나라에서 혜택도 받아봤으니 나와 같은 과정을 겪어본 이들에게 따뜻하게 손내밀어 위로해 줄 수 있을거라 착각했다.

제 자신하나 돌볼줄 모르는 바보 멍청이면서 오지랖만 넓어가지고 으이구 죽어야 고치지!!


그래도 세상에 공짜로 하는 개고생은 없다고 했다.

영원히 내안에 꼭꼭 가둬놓고만 싶었던 일곱살 그 아이를 재등장시켰지만

민원인과 매일매일을 치열하게 싸우는 걸 뱃속에서부터 듣고 태어난 딸은 말싸움의 귀재가 되었고  여러 번의 삼재로  흙탕물에 빠졌을 때도 조용히 템플스테이에서 108배를 같이 올려준 영원한 내편! 동기 진영이와 정은언니를 만났으니까 짧지만 강렬했던 나랏밥 먹은 개고생은 어쩌면 나에겐 득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부모에게 상처받은 그 가여운 아이를 나조차 외면하고  꽁꽁숨기기에 급급했다.

이젠 남이 아닌 내 자신에게 더 친절해 보려고 한다. 엄마의 불안증에도 꿋꿋하게 아들같은 딸로 잘 자라주고 있는 태권소녀(세영)와 함께 내안의 일곱살 소녀도 같이 키워볼까한다. 아마 성이 되기까지는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도 모르겠다.



나를 보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같은 질문을 한다

공무원 그만 둔거 후회하지 않아?그래도 다시 공무원하고 싶지 않아?


제 대답은요?


의원면직은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대도 전 똑같은 선택을 할겁니다! 지금이 가장 행복하니까요!




지금까지 <나의 짧은 나랏밥 먹은 이야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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