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히는 일명 닭장 같이 생긴 구청에서 일할 때였다. 내 옆에 바로 커다란 은행용(캐리어) 에어컨이 떡하니 있건만 전~~혀 시원하지 않았다.
청사를 곧 옮길 예정이니 새 에어컨은커녕 수리조차 해주질 않는다. 세월이 쌓인 이 캐리어씨도 본인의 운명을 직감한 듯 더운 바람만 켁켁 내뱉고 숨을 겨우 연명하고 있는 듯 힘겨워 보였다.
다닥다닥 붙어서 근무하는 사무실은 옆자리 기분을 모조리 흡수해버리는...정말 악조건의 근무환경이다.(좁아서 기지개도 못 폄)
동에 있을 땐 출장이라도 한번씩 나가서 코에 바람이라도 쐬고 살가운 어르신들도 만나고 했을텐데 내 업무는 출장이란 게 없다. 너무 좁은 곳에 많은 인원이 근무하다보니 분명 다른 팀 민원인데도 내 일인양 감정이 요동 칠 때가 많았다.
그리고..
그날은..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찾아왔다.
열심히 근무를 하다가 화장실을 가려고 잠시 일어서는데...
눈 앞에 .
바로 내 눈 앞에 술취한 아빠가 걸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비틀비틀.. 흐느적거리며 당장이라도 달려와 나를 또 때리고 죽여버린다고 소리 지를것 만 같았다.
아닐거야 우리 아빠는 돌아가셨는데...분명 돌아가셨다고 들었는데...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지더니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때였다.
내 마음속 깊이 봉인해놨던 그 스위치가 탁! 하고 켜진 게..
술 취해 휘청거리며 다가오는 그 민원인이 어릴 적 나를 때릴려고 저벅저벅 걸어오는 아빠의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한 게..
숨이 안 쉬어졌고 다리가 땅에 달라붙어 움직여지질 않았다. 도망가고 싶었다. 피하고 싶었다.
(제 민원인은 아니였습니다)
그땐 덩치 좋으신 옆 계장님께서 그 민원인을 잘 타일러 돌려보내셨지만 웬만한 윗분 나리들은 몸을 사리신다. 나부랭이시절 하도 민원을 처리해와서 그런가 아님 그런 민원인이 징글징글해서
인지 여직원들이 당하고 있어도 도통 본인과 관련된 일이 아니면 잘 나서주시질 않는다.
그때 구청 우리과에는 청원경찰이 없었다. 민원인이 칼을 들고와 설친다고 해도 고스란히 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게 내 현실이었다.
덜덜 떨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밖으로 뛰쳐나갔다.
잠시 숨을 고르다가 약국으로 달려가 우황청심원을 사서 마셨다. 이젠 괜찮을 줄 알았는데..내 감정을 잘 감출수 있다고 자부하며 살았는데..
오늘은 ..실패다.
한참을 심호흡하고 다시 사무실로 복귀했다. 심장박동 소리가 너무 커서 바로 옆자리 주사님들한테까지도 들릴정도였다.
우황청심원아! 빨랑 실력 좀 발휘해봐라!
동에 있을 때 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셨던 주사님이 계셨다. 인감관련 업무라 민원의 강도는 엄청 셌다. 근데 민원대에 앉아 아무 감정변화없이 늘 한결같은 무표정을 유지하고 계신 그분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인가는 뭔 한약을 쭉쭉 빨고 계시길래
“주사님! 무슨 한약이에요?”하고 물었더니
“응! 스트레스가 심해서. 한약 먹고 있어.”
엥? 주사님도 스트레스 받아요? 했더니 밤에 잠을 잘 못 잘 정도여서 늘 한약을 입에 달고 산다고..
나만 그런게 아니었구나. 다만 나보다 현명하셔서 기분을 감쪽같이 감추고 계셨구나 싶었다.
내 친아빠는 사업실패 후 알코올 중독자가 됐다. 힘없고 빽없고 능력도 그닥 없던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매일 술먹고 엄마랑 싸우는 일과 힘없는 자식들을 쥐어패는 일이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스트레스가 풀렸을까?(지금은 돌아가셔서 물어볼수가 없으니 아마 그랬을거라 추측만 할 뿐!)
내가 때리기에 딱 좋은 크기(연령)였나보다. 동생과 언니보다 나를 주로 때렸다. 손에 잡히는 거는 그 무엇이든. 매일 밤 술 먹고 비틀거리며 귀가하는 날엔 여지없이 매타작이 이어졌고 나는 아직도 컴컴한 밤엔 집밖을 잘 못나간다. 무서워서..술취한 사람을 맞닥뜨릴까봐...그때의 기억이 너무나 또렷해서..
엄마는 집을 자주 나갔다. 어린 딸들 3명이 밥을 굶는지 학교를 가는지 아무 생각도 없이 아무때나 집을 나갔다. 집 나가면 여지없이 아빠한테 붙잡혀오고 붙잡혀 오면 또 서로 죽일것처럼 싸우고 또 집을 나가고..
1년 전 뭘 했는지는 난 기억이 안난다. 대신 ... 일곱살때부터 맞았던 순간순간은 그 무엇보다 FULL HD 고해상도 화질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트라우마...
그렇게 나를 괴롭혔던 아빠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돌아가셨다. 아니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술 먹고 추운 날 객사했다고 전해들었다. 그래서 어디에 묻혔는지 어디에 뿌려졌는지 알지 못한다.물론 알고 싶지도 않고...
그 소식을 전해들었던 그때의 기분을 아직 잊지 못한다.
이젠 맞지 않고 살수 있겠구나. 밤마다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되겠구나. 진정한 자유를 얻은 줄 알았던 내 생각은 결국 착각이었다. 그때의 기억이 내 발목을 지금까지
꽉! 잡을 줄이야.
우리 엄마는 말한다. 니가 나이가 몇인데 어릴 때 기억을 갖고 원망을 하며 사냐고..엄마가 제대로 못키웠으니 성인이 된 너는 더 열심히 살면 될거 아니냐며..
칼로 찔러놓고 왜 피를 흘리냐 왜 똑바로 못걷냐 묻는거는 좀 너무하지 않아 엄마? 상처는 아물어도 흉터는 남아!
우리 엄마는 또 이런 주옥같은 말씀을 해주셨다
느그 아빠 닮아서 너도 정신이 온전치 않을지 모르니 정신병 조심하라고!!
그 정신병 환자랑 결혼해서 자식까지 낳고 같이 산 사람이 그게 할 소리야? 자식 가진 엄마가 그런 모진 말을 어떻게 아무렇지않게 내뱉을수가 있어?
엄마는 술 먹고 개 패듯 때리는 아버지는 없었잖아? 엄마는 엄마가 재혼해서 매일을 지옥같은 날을 살아보진 않았잖아!!!!
엄마는 천벌 받을 거야 분명!! 그렇지 않다면 하늘이 직무 태만 하는 거야.
지금 나이가 몇인데 돌아가신 아빠 모습이 떠올라 이리 벌벌 떤단말인가.
내 자신이 한심해 미칠것만 같았다.
다 잊혀진줄 알았는데 그때의 고통이 또 고스란히 떠올라 괴롭기 시작했다. 남편한테도 말할 수가 없었다.
동기들한테도 털어 놓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리석은 나는.. 입을 다물기로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행세하며 겉으로는 생글생글 잘 웃는 친절한 공무원인양 행동하기로 했다.
안에서 곪기 시작한 것도 모른 채..그 일곱살 어린 아이가 밖으로 뛰어나올까 무서워 더 꽁꽁 싸매 숨겨놓기로 했다. 더 깊숙한 곳으로! 들키면 안돼!! 절대!!
친한 한약사 쌤께 남편 몰래 약을 지었다. 그 포커페이스 주사님처럼 근무하믄서 물처럼 쭉쭉 마셔댔다.
괜찮은 듯 싶다가 또 술취한 민원인이 찾아오면 그 스위치가 탁!하고 켜졌다. 근데..그 스위치가 자주 켜지다 보니
(술취한 민원인이 의외로 많습니다)
이젠 증상이 점점 심해졌다. 나랑 관련없는 민원인데도 소리지르고 싸우는 소리가 들리면 심장이 쪼그라들었고
정신이 나갈 것만 같은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정신을 다 잡고 버텨볼라고 이를 악물었더니 나중에는 턱에서 딱딱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밤잠을 못이루는 날들이 많아졌다. 눈 뜨면 출근하는게 즐거웠던 내 모습이 사라졌다. 지옥같은 내 어린시절이 되풀이 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나쁜 기억에 갇혀 살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나만을 사랑해주는 배려심 많은 남자를 만나 결혼까지 했다. 다 괜찮아질 줄 알았다. 앞으로의 인생은 꽃길뿐일거라고 약간은 기대도 해봤다.
내 뇌를 절반 정도 잘라내면 그 기억들을 없앨 수 있을까? 그리될 수만 있다면 잘라내고 싶었다.
점점 신경이 곤두서게 됐고 또 술취한 민원인이 찾아오진 않을까 문 쪽에 시선을 집중하며 근무하게 됐다. 맨 아래쪽 서랍을 우황청심원과 한약으로 가득 채운채 버티는 날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자꾸 튀어나올려고 하는 내 안의 일곱살 그 작은 아이를 못나오게 꾹꾹 눌러가며 살아가야 했다. 그 방법 말고는 다른 카드를 꺼낼 용기가 내겐 아직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임신을 하게 됐고 그나마 임산부들한테는 업무환경을 배려해주는 직종이라 동으로 인사가 났다.
그런데...옮긴 곳은 더 가관이었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 지방특색만 있는 줄 알았더니 동마다 분위기가 또 달랐다.
(그 당시에)발령받은 동은 아파트가 많이 없고 사는 형편이 조금 어려웠다. 주민들 평균 연령이 높은 편이어서 쓰레기 관련 민원이 끊이질 않았다.
물론 사회복지과라 직접적 관련은 없지만 동은 거의 일을 같이 나눠서 하는 분위기라 같이 움직이다. 쓰레기 불법투기 민원신고가 매일 몇 건씩 들어와
복지대상자면 나도 같이 나가 처리를 했야만 했다.
그런데 웃긴건 신고전화는 불이 나는데 본인 신분은 밝히진 않는다. 접수하려면 민원인 이름을 써야하는데
1시간 넘게 하소연하면서 정작 성함 말씀해 달라면 조용히 전화를 끊어버리신다. 음식물 쓰레기도 하수구에 막 버려서 비오면 물난리가 났고 왜그리 종량제 봉투 사는 돈이 아까우신 지..
아무렇지 않게 불법투기하는 분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것도 남의 집앞에...(주민들 모아놓고 쓰레기 버리는 교육을 해야 될 정도로 심각했다.)
통장님들끼리도 편이 나뉘어서 동은 거의 매일 고성이 오갔다.
여기서 내가 살아 남는 길은???
같이 싸우는 일밖에 없었다.
내 별명이 “쌈닭”이 되었으니까..
예전 동에 공익 한솔이가 있었다면 이번 동에는 장애인 도우미 종호가 있다.
종호는 산업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오른 손가락 4개가 절단돼(엄지제외) 장애인이 되었다. 오른손 쓰기가 좀 불편할 뿐(제 생각입니다 어찌 안 불편하겠어요)
키도 크고 덩치도 큰 20대 중반 혈기왕성한 청년이다. 또 웃상에 싹싹한 성격이라 동에 있는 모든 분들이 좋아해주신다.
또 짝꿍이 돼서 출장도 같이 나가고 임신한 나 대신 힘든 일도 척척 해주는 만능 일꾼! 환상의 짝궁이다.
종호가 지어준 내 별명이다 “쌈닭 주사님!!” ㅋㅋㅋ 일처리를 잘 못했을 때 내가 아마 머리채를 잡았나 볼따구니를 잡았나...아마 그때 붙여진 별명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ㅋㅋㅋ
공무원들이 쓰는 업무용 컴퓨터는 개인정보 등 보안이 필요해서 민원인이 사용를 사용할 수 없다. 여기가 PC방인 줄 아시나 컴퓨터좀 쓰게 해달라고 찾아오는 민원인이며 출력 해달라는 민원에
대상이 아닌 무료급식카드를 다 큰 본인 자녀한테만 발급해달라고 팔뚝 문신을 드러내며 협박하는 민원인이며 하루하루가 진짜 버라이어티 그 자체였다. 지기 집 앞에 불법 쓰레기 감시용 카메라
달아달라 행패부리고 불법투기한 자기 집앞 쓰레기 치워달라고 찾아오는 민원인이 너무나 많았다.(본인 집앞은 본인들이 치우세요!! 자기 땅 자기 집이시잖아요!)
또 유난히 정신질환장애 비율이 높은 동이였다.
노인. 장애인 담당이였던 나는 진짜 매일이 전쟁터 나가는 기분으로 출근을 했다. 온 신경을 곤두세워 근무를 할라니 심장이 시도때도 없이 날뛰었다. 임산부라 스트레스 완화 한약을 먹을 수가 없었다.
대신...유산되지 않는 한약을 지었다. 한 번 아이를 보낸 경험이 있는 나는! 이번엔 꼭 지켜내고 싶었다. 이 전쟁같은 상황에서!!
동의보감 허준 선생님의 힘을 빌려서라도 뱃속 아이를 꼭 붙들어 잡고 싶었다.(임신 5~7개월 사이가 가장 위험하다고 허준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동의보감에 나와있는 처방대로 약을 지어 먹으며 버틴 나날이었다)
내색할 수 없었다. 아무리 심장이 나대도 아무리 불안해도, 울고 싶어도
나에겐 책임져야 될 장애인도우미 종호씨랑 사회복지도우미 지혜씨가 있으니까... 물론 사수님(여성)도 계셨다. 근무한 지 거의 30년 차가 되시는 분이라 힘든 일이나 허드렛일은
거의 내가 하는 편이었다. 그래도 내가 복이 많아 종호랑 지혜같은 멋진 짝꿍들을 만날 수 있었고 함께여서 감사할 일도 많았다.
그 어떤 민원도 척척 해결해 내는 우리는 천하무적 3총사!!
그러던 어느 날!
밖으로 도통 나오지 않는 정신지체 장애인분을 좀 설득해서 방을 비우게 해달라는 집주인 부탁으로 출장을 간적이 있었다. 등급심사 안내문이 자꾸 반송되는 곳이라 출장을 가야했던 참이라 종호랑 출동했다
주인분이랑 같이 문을 두드려도 나올 생각을 안했다. 재심사 안받으시면 장애취소 될 수 있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니 겨우 문을 열어주었다.
40대 남자분이였고 정신장애 2급이어서 이래저래 복지혜택을 받고 있는 분이었다. 마침 사무실에서 전화가 와서 종호는 전화를 받으러 갔고 나 혼자 들어간 집 안에는 소주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대낮부터 거나하게 술을 드신 그 분이 갑자기 과도를 중간에 떡하니 놓더니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거의 만삭이 다된 나는 본능적으로 배를 끌어안았다. 일곱살 그 아이가 또 튀어나오려고 문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