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세함 결핍증
퇴근 후 늦게 집에 오니 공기가 싸늘하다. 집사람을 보니 치켜뜬 두 눈이 사천왕의 눈을 닮았다. 순간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곰곰 생각해 본다. 열심히 잘살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을 모르겠다. 옆에 있던 딸아이가 한마디를 한다.
“아빠, 오늘 엄마 생일인데 몰랐나?”
젊은 날부터 내 생일을 차리라고 한 적은 없다. 날마다 살아가기에 급급했는지 그렇게 살아왔다. 생일이라고 하면 미역국을 끓여서 아침을 먹고, 특별히 준비하면 케이크를 자르는 정도였다. 집사람의 생일도 마찬가지였다. 나이가 드니 집사람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것을 이제는 보상받고 싶은 것 같다. 며칠 전부터 교육도 받았는데, 이상하게 그날만 되면 잊어버린다. 내가 생각해도 성질이 날만도 하다. 입은 있으나 말을 할 수가 없다. 제대로 잘 챙겨줄 걸 하는 때늦은 후회를 한다.
돌이켜보면 아이들을 키울 때도 다정다감하게 잘해주지 못했다. 그냥 지켜보거나 경상도 특유의 짧은 한마디로 말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을 할 때도 아이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아침 일찍 깨워서 차에 태워서 떠났다. 그런 탓인지 아이들은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가족이 함께 해외여행을 하고 싶은데 아이들의 의사를 물어보면 항상 부정적이다. 나에게 너무나 좋은 여행이 아이들에게는 고난의 행군으로 기억되는 것 같다. 아이들의 관점에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여행을 할 걸 하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아서 어머니는 주말이면 시외로 바람을 쐬고 싶어 한다. 그러면서도 자식에게 부담을 주는 것은 부담스러워한다. 즐기면 될 일인데 어머니는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집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한다. 뒤에 탄 누나가 이러한 엄마를 나무란다. 그런데도 조금 조용해지면 또 한 번씩 말을 한다. 성질이 급한 나는 툭 한마디를 한다.
“엄마 여기서 내리세요. 우리 갔다가 올 동안”
갑자기 차 안의 분위기가 차가워진다. 일주일을 기다리며 아들과의 바람 쐬는 것을 기다렸을 어머니를 생각하면 내가 참아야 했다. 가슴에 상처로 남는 말을 하지 말 걸 하는 반성을 한다.
집사람은 항상 이야기한다.
“당신은 해 줄 것은 다 해 주면서 말을 왜 그렇게 하느냐?”
조곤조곤한 말로 대화해야 하는데, 마음속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 무뚝뚝한 경상도 특유의 축약과 웃음으로 대신한다. 꼬치꼬치 따지면서 달려드는 경우는 버럭 고함을 지르는 경우가 많았다. 바꾸려고 많이 노력을 해도 내 몸에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집사람은 사소한 것이라도 이야기하기를 원한다. 가족이기에 모든 것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그만 접촉사고가 있어 혼자 처리하고 뒤늦게 사실을 알면 몹시 화를 낸다. 알아보았자 걱정만 한다고 생각하는 나와는 다르다. 조그만 사실 하나로 그날 하루를 기분 나쁘게 보내야 한다. 정말 별일이 아닌데, 사소한 말다툼이 되기도 한다.
아버지로, 남편으로, 자식으로서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하지 않는 것도 아닌 데, 결과적으로는 어설프게 하고 있다. 세세함의 부족이 일을 그르치고 있다. 조금 더 돌아보면 좋아질 수 있는데, 조금의 부족이 문제다. 나는 만성적인 세세함 결핍증을 앓고 있다. 더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조금 더 생각하고, 참고, 배려해야 한다. 어설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다면 그다지 모자라는 삶은 아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