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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배

작은 결실의 기쁨

by 시인의 정원 Sep 1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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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 하면 떠오르는 것이 나주배다. 제주에 배 과수원이 있다는 것은 들은 적 없다. 제주 산골배가 열렸다. 커다란 벚나무 옆이다. 하여 흐드러진 벚꽃나무 아래 듬성듬성 피었던  이화(배꽃)는 존재감이 없었다. 꽃마저 벚꽃과 비슷하다. 배나무의 절정은 꽃보다 잘 익은 배다. 추석을 앞두고 무성한 잎 사이에 숨은 누런 배를 헤아렸다. 수차례 세어 보니 여덟 개다. 정원 모퉁이에 십수 년 전에 한 그루 심은 것이다. 팔려고 심은 나무가 아니니 8개 달린 것에 만족한다. 삼 년 전 네 개의 수확이 있었고, 작년에는 추수 시기를 넘겨 제대로 맛보지 못했다. 추석 때까지 잘 익기를 기다렸더니 상하고 골아서 떨어졌다. 아내는 아까 마음에 상한 부위를 도려내고 배즙을 갈아 내어 음식에 넣었다. 성한 부분이 많은 배는 썰어서 꿀에 재워 끓였다. 기관지가 안 좋아 기침이 잦은 남편을 위해서였다.


  제주에서 과수원이라 하면 귤밭을 한다. 귤이 아닌 다른 유실수는 결실즈음 태풍이 지나기 때문에 낙과가 많을 것이다. 토질은 거름으로 해결한다고 해도 고온다습하고 일조량도 적은 기후에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제주에 귤 외에  다른 과일 농장이 없는 이유가 될 것이다. 기후변화로 망고, 용과 같은 열대 과일은 하우스에서 재배한다. 귤나무는 귤을 달고 있는 가지와 꼬투리에 질긴 섬유질이 많아서 센 바람에도 떨어지지 않는다. 강수량이 많아도 물이 잘 빠지는 경사진 돌밭이 오히려 귤 맛이 좋다. 제주 환경에 매우 적합한 나무가 귤나무다.


  작년에 유기질 비료를 뿌려준 덕분인지 튼실한 배가 달렸다. 꽃이 진 자리에 생겼던 팥알만 한 열매가 주먹만 하게  다는 게 신기하다. 사서 먹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추석이다. 올해는 를 사지 않아도 되겠다. 작은 결실의 기쁨이다. '내년 배농사를 더 잘해야지' 의욕이 샘솟는다. 잘 익은 배 몇 개를 수확한 효과다. 수고한 배나무에게 주변 잡초 정리와 겨울나기 유기질 비료를 듬뿍 뿌려 주어야겠다. 십수 년간 열매 없던 열매나무에 희망이 달렸다.


  정원에 더 좋고 큰 자리를 차지한 사과나무야 너는 언제 잠에서 깰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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