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출퇴근길 메이트
매일 비슷한 시간에 출퇴근을 하면 유독 자주 눈에 보이는 사람이 있지 않나요?
비록 서로 인사도 하지 않고, 말도 걸지 않지만 마음속 친밀감은 높은 그런 사람이요. 저에게는 그런 사람들이 몇 명 있어요. 오히려 안 보이면 걱정되기도 한답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풍채로 기억하는 제 출퇴근길 메이트를 소개합니다.
1. 13층 아주머니
남편과 저는 6시 10분에서 15분 사이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출근길에 오릅니다. 오차범위가 5분이나 있지만 일주일에 3번 정도 마주치는 13층 아주머니가 있어요. 엘리베이터가 13층에 멈추면 '엇 오늘도 만날까?'라는 기대감이 생기기도 하죠. 아주머니는 만날 때마다 늘 분주하시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차를 향해 달려가시죠.
'남편! 저 아주머니는 어디로 출근하실까?'
'너처럼 서울로 출근하시는 게 분명해. 이렇게 일찍 집을 나서는 걸 보면'
'그래? 근데 서울 출근러들은 차를 잘 안 가져갈걸? 내 생각에는 카페 사장님 같아. 회사가 모여있는 빌딩 사이에서 7시부터 문 열고 샌드위치랑 커피를 파는 카페 사장님!'
'오, 그것도 괜찮은 추측인데?'
아주머니의 직업을 추측하며 버스정류장으로 출발합니다. 남편은 서울로 가는 좌석버스 정류장에 저를 내려주고 출근하거든요. 그리고 버스에서 또 내적 친밀감이 쌓인 출근 메이트를 만납니다.
2. 낡은 가방을 든 안대 아저씨
제가 버스 타는 곳은 고속도로를 타기 전 마지막 정거장으로 빈자리가 몇 개 없어요. 그중에 늘 비어있는 자리가 있습니다. 바로 안대를 끼고 있는 아저씨 옆이죠. 남아있는 자리가 거의 없어서 저는 거의 그 아저씨 옆에 앉아요. 아저씨는 오래된 가죽 가방을 품에 꼭 껴안고 주무시고 계십니다. 가방 손잡이가 자꾸 벗겨지는지 손잡이 한쪽에는 손수건이 돌돌 말아져 있죠.
'버스에서 안대를 끼면 정말 잠이 잘 올까? 아저씨는 맨날 이렇게 새벽같이 출근해서 돈 벌러 가시는데 가방 하나 사고 싶지 않을까? 몇 년 사용한 가방일까? 저렇게 낡은 가방에 손잡이가 다 까져서 손수건까지 말아서 다니시는데 왜 가방을 안 살까?' 생각하다 보면 저도 어느새 스르르 잠이 들고, 한 시간을 달려 서울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안대 아저씨와 전 같은 정류장에서 내리죠.
'엇, 아저씨 맨날 캐주얼룩 입고 다니시는데 오늘은 양복을 입고 오셨네? 오늘 회사에서 특별한 일이 있나? 아저씨! 오늘 양복데이 화이팅하세요!'라며 마음속 인사를 남기고 각자 갈 길을 갑니다.
3. 2명의 장애인 친구
그리고 퇴근시간이 되면 또 자주 만나는 2명의 장애인 친구가 있습니다. 핸드폰을 하다 어느 순간 보면 옆에 있죠. 칸 많은 지하철에서 저희가 자주 만나는 이유는 늘 빠른 환승이 가능한 2-1번 칸에 타기 때문이에요. 장애인 친구 2명은 저랑 같이 환승하고 동네 근처까지 같이 갑니다. 제가 이 친구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둘이 함께 있는 모습이 너무 따뜻해 보이기 때문이에요.
'오늘도 같이 일하고 같이 퇴근하나 보다. 둘은 형제일까? 친구일까? 키와 체형이 비슷한 걸로 봐서는 형제인 것 같기도 하고, 둘이 같이 다니면 진짜 외롭지 않겠다. 너무 든든한 인생의 동반자일 것 같아. 근데 왜 맨날 둘이 티격태격하지. 애정 표현인가. 티격태격하는 것도 둘이니까 가능한 거지. 좋겠다. 나도 나중에 아기 낳으면 꼭 두 명 낳아야지' 생각하며 빠른 환승을 위해 열심히 발걸음을 옮긴답니다.
그러다 가끔 둘이 아닌 혼자 있는 모습을 보면 '오늘은 왜 혼자지? 한 명 어디 아픈가? 늘 둘이 있다가 혼자 있으니 좀 심심해 보이네' 하며 퇴근을 해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
늘 같은 출퇴근길, 주위를 한번 둘러보니 저에겐 이렇게 많은 출퇴근 메이트가 있었어요.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출퇴근 메이트들! 오늘도 화이팅입니다.
내일 출근길에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