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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데이 Nov 29. 2024

눈보라를 뚫고 출근하는 현실

K직장인이니까

어제와 그저께, 경기도 남부에 눈폭탄이 떨어졌어요.

첫날은 분명 예쁜 눈이었는데, 그 눈은 퇴근길부터 폭탄이 되었고, 그다음 날은 출근을 막는 재앙이 되었습니다. 눈이 어마어마하게 온다는 예보를 듣고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준비했지만 바깥세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했어요. 출근은커녕 정말 집 앞을 나가는 것조차 불가능에 가까웠죠.


그래도 출근을 하긴 해야 하니 진지하게 출근방법을 고민했습니다.

1. 걸어갈 수도 없게 쌓인 눈을 뚫고 지하철 역까지 걸어간다. 역까지만 1시간 소요 예정

2. 도착예정에 뜨지도 않은 버스를 마냥 기다려서 지하철 역까지 타고 간다.

3. 자차를 끌고 지하철 역까지 어떻게든 간다.


평소 남편이 서울 가는 좌석버스 정류장까지 저를 내려주고 출근하기에 저희 부부는 3번을 선택해서 일단 차를 끌고 주차장을 나가보기로 했죠.

'여, 여보.. 이거 맞는 거야? 아니 집 나온 지 1분도 안 됐는데 지금 길에 갇힌 차가 3대인 거야?'

'아, 흠.. 심각한데? 어쩌지, 이건 아닌 것 같아. 들어갈까?'

'지금 버스도 아예 안 오는데 방법이 없잖아. 일단 가보자'


버스정류장 앞,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사람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운전을 하는데, 집 앞 마을버스 정류장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남편, 저기 버스정류장에 사람들 봐. 마을버스 아예 뜨지도 않고, 나 서울 가는 좌석버스도 지금 아예 운영을 안 하는데 어쩌냐. 지하철역 가는 사람들 같이 좀 태워서 갈까?'

'어, 좋아. 근데, 우리 뒷자리에 한 3명 탈 수 있을 것 같은데, 저 20명 중에서 3명만 태워...?'

'그러네. 오히려 더 혼란을 키우는 일이 될 수 있겠다'


고민하던 사이, 몇몇 사람들이 움직였습니다. 인도는 눈이 너무 쌓여서 걸어갈 수 없으니 그나마 길이 있는 차도로 걷기 시작하더라고요. 평소 역까지 30분이 걸리니, 최소한 1시간은 걸리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차가 미끄러지면 사람들을 칠까 봐 정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운전을 했죠. 어찌어찌 겨우 역에 도착해서 전 무사히 출근을 했습니다.


하지만 출근하자마자 슬픔이 밀려왔어요.

대재앙 속에서 2시간 걸려서 출근을 했는데, 반전으로 서울 땅은 너무 평온했기 때문입니다. 차도와 인도까지 깔끔하게 제설이 되어있고, 물이 되어버린 눈의 흔적을 보며 눈이 왔었구나! 짐작할 수 있는 정도였죠.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던 출근길과 대비되는 이 평화로움 앞에서 전 허무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왜 눈보라 속에서 집이 아닌 지하철 역으로 발걸음을 향해야만 하는가?
왜 이 대재앙 앞에서도 우리는 출근을 해야만 하는가?


하지만 이유가 뭐 있겠어요. 그냥 우리는 직장인이니까. 출근해야죠. 돈 벌어야죠. 하하. 이렇게 출근해서 많이 벌어서 지하철역 앞, 역세권으로 이사 가야죠. 하하.

어제, 경기 남부에서 출근길에 오른 모든 분들 존경합니다. 고생하셨어요. (퇴근길은... 괜찮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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