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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b Aug 25. 2024

[7] 행복에 대한 끄적거림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행복을 묻는 질문은 언제나 저에겐 참 당혹스러운 질문이었습니다.

단순히 대답하기엔 너무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인데요.


내가 걷는 길이 정말 행복을 위한 길일까 생각하며 불안을 느끼기도 하고

행복을 느낄 자격이 있는 상태일까 하며 스스로에게 괜한 심술을 부리기도 했죠.

"행복이란 게 구체적으로 뭔데??"라고 되묻고 짜증을 내기도 했습니다.


사실 행복한지를 묻는 질문보다 '당신은 불안하십니까?' 혹은 '당신은 지금 슬프십니까'라는 질문이 더 대답하기 편합니다.


미래에 내가 뭘 하면서 살지 불안하고

내 주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지 혹은 이상하게 생각할지 불안하며

의미 없이 젊음을 낭비하고 있는 것 같아 슬픕니다.


이처럼 부수적인 감정 없이 명쾌하게 답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여기선 일부러 몇 가지를 추린 것이지 사실 더 많이 나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떠한 사건이나 생계가 걱정되는 불안한 상황이 있지 않음에도 그저 일상적인 불안과 슬픔을 느낍니다. 그러한 감정들이 옅게 녹아 있는 것이죠. 


때문에 자꾸만 큰 행복을 좇았습니다.


어릴 적에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싶었고

이후엔 취업을 하고 싶었으며

계속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했죠.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이루면 큰 행복이 올 것이라 생각했고 그것이 옅은 슬픔과 불안을 없애주리라 믿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목표로 했던 것들 중 이룬 것도 있고 이루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큰 행복을 이뤄도 슬픔이나 불안은 계속 마음속에 부유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오히려 큰 행복을 이뤄 느껴지는 성취감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그다음에 또 해야 할 일이 있다는 부담감이 먼저 찾아오더군요.


그래서 그만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삶의 거대한 목표를 이루는 게 단기적인 행복만을 가져다준다면 차라리 그것들에서 행복을 추구하지 말자고 생각한 것입니다. 


따라서 회사에서 별다른 야망을 가지지 않았고

2024년의 목표를 적었던 노트를 찢었으며

인간관계에서도 구체적인 무언가를 얻으려고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삶의 원동력이 없어질까 봐 조금 걱정하긴 했습니다만 그런대로 살아지더군요.

생각보다 아침에 잘 일어났고 잘 출근했으며 사람들도 잘 만나러 돌아다녔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좋아하는 음악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30분의 시간 때문에 출근길을 나서거나

색다른 이야기에 웃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약속을 잡고

별 이유 없이 오늘 하루는 나름 만족스럽다 느끼는 자신이 보였습니다.


그제야 행복의 속성 또한 옅은 슬픔이나 불안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전히 불안하고 때론 슬프지만 비슷한 빈도수로 만족스러움을 느끼고 기쁨을 느꼈기 때문이죠.


따라서 '당신은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이제는


"아마 대충 이곳저곳에 녹아있을 것입니다"라고 답할 수 있을 듯합니다.



본 글은 백수린 작가님의 소설, "눈부신 안부" 속 [나는 너무 큰 행복은 옅은 슬픔과 닮았다는 걸 배웠다]라는 문장에서 영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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