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이름의 흔적들
하늘은 아버지의 한을 위로했다. 떠나던 날, 천지가 눈바람에 휘청거렸다. 파란 창공을 밀어내고 짙은 안개와 구름으로 자신을 가렸다. 함박눈이 내려 조용히 조문했다. 발등까지 쌓인 설원 위로 상여가 지나간다.
그렇게 먼 길을 떠났다. 평온한 하늘을 원했을까, 아니면 한과 그리움을 품은 눈길 속에서 마지막 말을 전하고 싶었을까.
중학교 마지막 겨울방학이었다. 축구하던 중, 위독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집으로 달려가는 길, 공포가 뒤따랐다. 손을 꼭 쥔 채 무엇인가 말하려다 끝내 입을 열지 못했다. 힘없는 눈동자로 바라보더니 눈물을 떨구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무엇을 전하려 했을까. 시선이 마주친 찰나에 스친 기억은 무엇이었을까. 침묵은 영원히 풀리지 않는 그리움으로 남았다.
서른여덟에 세상을 떠났다. 할 일 많은 인생을 남긴 채였다.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떠나는 이별이 얼마나 아팠을까. 마지막 눈물에는 삶의 모든 사연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유복한 시골집에서 자라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좁은 울타리를 넘어서야 한다는 뜻을 품었다. 장손이라는 이유로 집안 어른들의 반대가 극심했지만, 고향을 등졌다. 수저 두 벌과 이불 한 장, 친구에게 빌린 돈을 손에 쥐고 대구로 향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에 일터로 향했다. 추위도, 피로도, 절망도 발걸음을 꺾을 수 없었다. 고된 하루를 견디며 가슴속에는 늘 꿈을 키웠다. 가난한 현실 속에서도 미래를 그리며, 하루하루를 쌓아 올려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길거리 붕어빵 장사부터 연탄 배달까지, 온몸을 던져 생계를 일으켰다. 어머니의 기억 속 아버지는 비포장 언덕길을, 연탄을 지고 끝없이 오르내렸다. 무거운 짐에 어깨가 눌려도, 거친 길에 발이 아파도 멈추지 않으셨다고 했다.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려도 흔들리지 않는 걸음걸음이 우리 가족의 하루하루를 떠받치고 있었다. 한 장의 연탄이 깨질 때마다 한숨이 하늘 끝까지 퍼졌다. 그렇게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구멍가게도 열었다.
모든 것이 순탄해 보이던 어느 날, 도둑이 들어 재산을 송두리째 훔쳐 갔다. 두 번이나 털렸다. 악착같이 모은 전 재산을 잃었다. 한 가족의 꿈과 희망이 산산조각 났다. 텅 빈 주머니 속에서 무력감이 깊어졌을 것이다.
삶의 갈림길에서 고통에 휩싸여도 가족을 위해 견뎌냈다. 그 여정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는 것 같았다. 가시밭길을 걸으면서도 헌신을 멈추지 않았다. 삶은 단순히 재물을 쌓는 과정이 아니었다. 가족을 향한 애정, 끝내 사그라지지 않는 소망, 눈물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의지였다. 가족의 꿈을 함께 짊어지고 당신의 어깨 위에 미래를 얹어 놓으셨다.
살아갈 길이 막막해지자 부산에서 카센터를 운영하는 외삼촌 댁으로 향했다. 기술을 익히며 새로운 인연을 맺고, 성실함을 인정받아 조선공사 부품 납품 일을 소개받았다. 끈기 있는 노력으로 작은 공장까지 운영하게 되어 우리 가족에게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단칸방에서 방 두 개 딸린 전셋집으로 이사했다. 백색전화와 자가용이 생겼다. 집을 짓고 내 방이 생긴 날은 잊을 수가 없다. 기쁨에 입꼬리가 내려올 줄 몰랐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빛이 행복으로 가득한 눈동자에 담겼다.
업무상 호텔에서 지인과 식사할 때면 종종 나를 데려갔다. 자동차를 타는 경험은 설레고 특별했다. 처음 마주하는 음식 중 좋아하는 요리들을 모두 앞으로 슬며시 옮겨주었다. 섬세한 배려와 사랑이 지금도 마음속 깊이 새겨져 있다.
낚시를 즐겼다. 출발하기 며칠 전부터 저녁마다 부엌에서 납 봉돌을 직접 만들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면 봉돌 크기별로 잡히는 어종을 설명해 주었다. 밤은 깊어졌지만, 자상함에 빠져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호사다마라더니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 병원마다 다른 진단이 나와 정확한 병명을 알 수 없었다. 수술 후에도 회복되지 않은 채 일 년 이상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질병이 몸을 갉아 먹고 날마다 기력이 소진되는 고통 속에서도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얼굴은 야위었으나, 눈빛만은 끝까지 흐려지지 않았다. 그 속에는 무언의 사랑과 심장 깊은 곳에서 마지막까지 지키려 했던 가족이 있었다.
그때 나는 너무 철이 없었다. 매일 친구들과 축구하며 신나게 놀았다. 그런 나를 향해 "우리 큰아들,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겠구나"라며 자랑스러워했다. 지금에야 이 말이 가슴을 저리게 하는 이유를 안다.
높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 방이 네 방이야." 처음으로 내 공간이 생긴 그날, 청명한 하늘빛은 내게 가장 행복한 색채가 되었음을. 한 이불 속에서 부모님 사이를 오가며 뒤척이던 그 시간의 그리움을. 아버지는 알고 있을까.
가정을 꾸리고 아들을 얻었다. 아이의 젓가락이 자주 향하는 반찬에 시선이 닿는다. 조용히 음식을 앞으로 옮겨준다. 말없이 보여주셨던 사랑이 내 안에 어느새 자라났나 보다.
돌이켜보면, 누구보다 위대한 삶을 살아냈다. 화려하지 않은 일상에서, 묵묵히 사랑을 지킨 분이었다. 그 마음은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내 가슴속에 남아있다.
나 역시 부모가 되어보니, 아버지의 깊은 헌신이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더욱 절실히 느낀다. 그리움은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지만, 이제는 그 마음을 넘어 아버지가 보여주었던 사랑을 내 가족에게 전하려 한다.
보고 싶습니다. 천국에서 평안하기를 바라며, 언젠가 그날이 오면 찾아뵙겠습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