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계획은 있어?
다른 사람들은 연봉 협상을 할 때, 나는 혼자 퇴사 면담을 진행했다. 면담 후, 일주일이 지나니 모든 직원들이 나의 퇴사를 알게 됐다.
보통 퇴사를 한다고 하면 받는 질문을 뭐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퇴사하면 뭐할거야?" 였다. 이래서 직장 동료들과 너무 가깝게 지내지 말라고 하는 것인지 1년이 지난 그때서야 그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물론 좋은 사람들과 일했다고 생각한다. 맞지 않는 성격도 있었고, 겉으로는 친하게 지내면서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직원도 있었지만 나와 잘 맞는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환경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정도면 나는 인간관계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잘 다니는거지 뭐, 라며 최대한 좋게 생각하며 다녔던 것 같다.
퇴사 계획에 대한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는 나름 열심히 계획했던 것들이 많았다. 모아놓은 돈으로 사이버대학도 가야하고, 부족하면 학원도 갈거고, 돈이 부족해질 수 있으니 주말 알바도 할 생각이었고, 가끔은 나홀로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고 싶었다.
'사람은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 X맞기 전까지는' 이 명언이 왜 이렇게 나와 잘 맞았는지 웃프다, 라는 감정을 절실히 깨닫는 시간이 되었지만 말이다. 계획을 세우고 시간제 대학에 등록을 할 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길로 갈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정말 스스로를 몰라도 한참 몰랐기에 할 수 있는 확신이었다.
첫 수업이 끝나고 들었던 생각은 '와, 망했는데?' 였다.
누가 보면 고작 한 번 들은걸로 섣부르게 생각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모르던 그 시기의 나도 하나만큼 알 수 있었다. 내가 살면서 이과 계열의 일을 직업으로 삼을 일은 없을 거라는 것을.
그 덕분에 광범위한 범위가 조금은 좁혀들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나는 긍정적이니까!
후에 내가 했던 행동은 등록 해놓은 시간제 수업을 모두 환불 받는 것이었다. 그 뒤로는 브런치북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방황의 시작이었다. 지금은 내가 해왔던 모든 일들이 유랑이었고, 앞으로도 유랑일 것임을 알지만 2년 전의 나는 재수생이었을 때보다 더 깊은 좌절, 우울, 무기력함에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분명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많았던 사람이었는데 왜 지금은 없는 것인지, 내가 좋아하던 일들로는 돈을 벌 수 없는 것인지, 꼭 직장에 들어가야만 남들처럼 살 수 있는 것인지, 하고 싶은 일이 없는데 어떻게 취업을 하라고 하는 건지 많은 고민과 갈등에 부딪히는 시간을 보냈다.
"퇴사하고 뭐 할거야?"
"퇴사하고 난 후의 계획은 있어?"
라고 물어보는 질문에 대한 2년 전, 나의 대답은 "아니, 모르겠어." 말고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