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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리 Nov 27. 2023

직업에도 유행이 있나요?

따라갈 게 없어서 직업을 따라가버렸다

퇴사를 하고 초반에는 그때 나름의 완벽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굳이 걱정이라고 할 만한 것을 생각해보자면 예체능 인생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평생 예체능 인생으로 살아갈 것이라 생각하던 내게 이과라는 분야는 너무 '생소했다'라고 해야할까.


하지만 그 '생소하다'는 감정도 애초에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던 분야기 때문에 무섭지도 않아서 들었던 감정인 것 같다. 뭐, 지금 생각해보면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을텐데 무슨 자신감으로 선택했는지 여전히 모르겠지만 말이다. 역시 사람의 성향은 바뀌지 않는 것 같다.


창피해서 말하고 싶지 않지만 익명의 힘을 빌리자면.. 그 당시의 내가 택했던 직업은 데이터애널리스트 혹은 마케팅애널리스트 분야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데이터 분야가 너무나 각광을 받고 있었고, 특히 해외에서 수요가 많은 직업이라는 정보를 듣고 무작정 선택했었다.


무작정이라는 말이 좀 대책없어 보일지도 모르겠는데 나름 맞는 성격, 성향, 필요한 스킬 등등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선택한 것은 맞다. 표면적으로 필요한 것들에는 조금씩 맞았을지 몰라도 나의 내면과 어렸을 때부터 형성 되어왔던 성향이나 취향은 절대 맞지 않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는게 문제라면 문제였지.


지금은 다 지워버려서 찾을 수가 없는데 블로그에 열심히 정리해서 업로드도 하고 그랬었다. 내가 뭘 하는지 주변에 티를 내야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서 그랬는데 내 글 보는 사람들은 지금도 어이없을 것 같다. 무슨 사람이 하루 걸러서 진로가 바뀌나 싶어서.


그리고 다음이 UIUX 디자이너였다. 정확히는 웹디자인이지만 아무튼.. 이건 국비지원까지 받아서 학원에 등록했는데 코딩 수업 들어가자마자 흥미 떨어져서 환불 받았다. 나 왜이렇게 시작도 빠르고 포기도 빠른거지.


UXUI는 그 뒤로도 종종 미련이 남아서 코딩보다 디자인과 리서치를 중점적으로 배울 수 있는 커리큘럼을 찾아보고 어떤 성향의 사람에게 잘 맞을지 알아보고 했는데, 결론은 나와 안 맞는다는 거였다.


일단, 나는 많은 사람과 협업해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내가 구독하고 있는 블로그 이웃 중에 현직에서 UXUI로 일하시는 분의 글을 보니 발표가 정말 많다고 한다. 내가 왜 이런 디자인을 했고, 왜 여기에 배치를 했고, 왜 이런 글을 썼고 등등...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기 때문에 프로젝트의 처음부터 끝까지 발표, 발표, 발표란다.


물론 이 직업 안에서도 세부적으로 맡아서 하는 일이 다 나뉜다. 리서치, 디자인, 라이팅, UXUI 둘 다 하는 사람과 한 가지만 하는 사람, 코딩까지 하는 사람, 디자인만 집중적으로 발전 시키는 사람, 정말 많겠지만 이것들은 다 제쳐두더라도 어떤 직무를 선택하든지 사람과 떨어질 수 없겠다는 변하지 않는 본질이 나를 포기하게 했다.


데이터와 UXUI를 제외하고도 짜잘하게 찍먹해본 것이 참(^^) 많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중 한 가지는 살짝 틀어서 여전히 나의 목표로 남아있다. 하반기에 마음을 다잡고 취업하는 것을 포기한 결정적인 이유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유행을 쫓고 있었다는 거다.


이 직업이 해외에서 취업이 수월해서, 이 분야가 앞으로 더 발전할거라서, 이 직종은 수요가 많아 신입도 잘 뽑아서 등등 오로지 취업에만 목적을 두고 어쩌면 내가 30년을 넘게 해야할 일을 고르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머리가 띵해져서 그럼 난 뭘해야 하는거지? 1년 반 동안 아까운 시간을 날리면서 뭐한거지? 우울한 생각들만 하게 됐고, 살면서 처음으로 우울과 무기력 콤보에 난리였었다. 나도 우울할 줄 아는 사람이라니 좀 핀트가 어긋한 충격이 있긴 했는데..


그래서 지금은 과감하게 취업은 포기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사회는 가장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사회라고 한다. 굳이 회사에 취업하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한데 왜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맞지도 않는 문으로 들어가려고 몸을 구기고 있었을까.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정말 많은 사람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 누구는 할줄 몰라서 안하고 회사 다니는 줄 아냐, 부모님 집에 얹혀 사니까 힘든 걸 몰라서 그러는거다, 이런 소리 하는 사람도 당연히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근데 그 사람들이 내 인생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고, 나는 엄마한테 항상 혼나면서도 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내일 사고 나서 죽을 수도 있는 거 아냐? 물론 엄마는 죽어도 엄마, 아빠가 죽은 뒤에 죽으라고 하긴 하지만 허허, 


당장 1년 뒤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에서 30년, 40년 뒤를 바라보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기에는 나는 그리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아야지.


인생은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재밌는거고,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하지. 그렇다면 내가 조금이라도 재밌게 잘 열심히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알 수 없는 인생을 버티며 살아가지 않을까?


그리고 이건 책임질 것이 내 몸 하나 뿐이기 때문에 더더욱 할 수 있는 결정이니까 엄마, 아빠 내년까지만 더 신세질게요! 내년 어버이날에는 용돈 두둑히 줄 수 있는 딸이 되어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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