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한번 돋아 난 우울은 쉽게 가시지 않고 기분이 계속 좋지 않아요. 이제 괜찮아졌다고 이대로라면 단약을 하고 선생님과의 만남도 끝이 날 거라고 겁을 먹었는데 그건 어디서 온 착각이었나, 제가 우습게 느껴져요.
우울은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또 제 발목을 잡아요. 선생님과의 만남을 지속하고 싶지만, 이 기분으로 계속 지내는 건 또 싫어요. 아침이면 의미를 찾고 우울은 깊어져요. 한없이 가라앉아요.
아침과 밤이 지옥이에요. 결국은 아침약을 증량하며 저는 또 한 번 절망에 빠져요. 역시 모아둔 약을 버리지 않길 잘했구나. 역시 버리지 못한 이유가 있구나.
저는 다시 약을 찾아요. 약의 유통기한을 다시 들여다봐요. 다시 처방받을 수 있을까. 그때의 고통을 다시 겪고 싶지는 않은데 이것보다 더 확실한 약은 없으니까, 곤란해져요.
그리고 혼란에 빠져요. 살고 싶어서 발버둥 치는 와중에도 선생님의 기대를 실망으로 바꾸고 싶지 않음에도 약을 찾고 약을 손에 쥐는 제가 싫어요. 싫어서 또 죽고 싶어 져요. 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쉽게 찾아와요.
일상을 찾겠다는 우울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저와 죽고 싶어 하는 제가 싸워요. 누가 이길까요. 저는 누구를 응원하고 싶은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