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나를 만나러 온 여행'
엉엉 울고 싶은데 눈물이 나지 않을 때가 있고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는데 하염없이 흐를 때가 있다. 친구랑 이야기를 하는데 “더 이상 말하면 나 눈물이 날 것 같아 효진아.”
아는 동생과 서로의 안부를 얘기하는데,
“어, 왜 갑자기 눈물이 나지” 라면서 생각지 못하게 동생의 울음을 보기도 했었다.
친한 언니가 힘들었던 일을 덤덤하게 얘길 하는데,
“와 언니 정말 힘들었겠어요. 그때의 언니한테 가서 내가 안아주고 싶다. 제가 다 속상해요”.라고 했더니 언니가 갑자기 소리 내어 울었었다.
순수함에 늘 반짝반짝 빛이 나던 동생이 “언니 요즘에 저는 사람들이 보기가 싫어서 히키코모리를 자처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요즘 흑화가 돼있답니다”.
“그럴 때가 있지. 지금의 그 순간들도 너의 소중한 감정이니 스스로를 잘 보듬어줘. 사람들 때문에 힘들었나 봐! 이런 얘길 나에게 하고 있는 것도 사실 너무 사랑스러운 건데, 너의 빛나는 점들은 변하는 것들이 아니니까 좀 쉬다가 나중에 다시 너를 펼쳐! 그래도 괜찮지! ”
“언니 눈물이 날 것 같아요 ”
번아웃이 오고 상담을 받으면서 정말 많이 울었었다.
답답해서 울고 괴로워서 울고 슬퍼서 울고 외로워서 울고 속상해서 울었었다. 나에게 미안해서 울기도 하고 기뻐서 울고 벅차서 울고 감사해서 눈물이 났었다. 희망이 조금씩 보이면서도 울었었다.
운다라는 건 해소할 감정이 남아있다는 신호다. 잠깐 울고 나면 해소되는 일이 있고 대체 얼마나 울어야 끝날까? 싶은 끝이 안 보이는 힘겨운 눈물도 있다.
괴로움의 이유를 모르겠는데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얼굴 전체가 뻐근하고 두통이 몇 달째 사라지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몇 달째 눈물이 끝이 안 났었다. 지치고 시간만 흐르고 여전히 눈앞이 깜깜했다. 말 그대로 혼돈의 카오스. 감정의 소용돌이가 빠르게 도는데 그 한가운데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힘들 때마다 찾아갔던 내 해우소, 바다로 도망쳤다.
부산 해운대 앞에서 하염없이 파도만 바라봤다.
‘왜 이렇게 힘들어 효진아? 왜 그렇게 힘들까? 뭐 때문이야?’
너무 갑갑해서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계속했었던 때였다. 파도를 바라보면서 나한테 재차 물어댔다.
일주일째 똑같이 해운대 바다 앞에서 몇 시간이고 앉아 멍하니 파도를 바라보고 울었다. 야속하게도 시간만 계속 흘렀다.
힘들어하고 슬퍼하고 나아지기만을 바라다 그게 안돼서 또 괴로워하고. 힘든 시간을 길게 보냈었다.
그러다 문득, 다 내려두고 지쳐서 힘들어하는 지금의 내가 그제서야 갑자기 보였다.
‘내가 이렇게 아픈 거 보니 그동안 마음 상하는 일이 많았구나...?
난 괜찮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내 마음이 많이 상했었는데 내가 몰라줬구나.....
그래 나 힘들만했지...'
나에게 너무 미안했다.
이전에 흘렸던 눈물과는 다른 의미의 울음이 터져 나와 엉엉 소리 내어 한참을 울었고 길고 긴 암흑의 터널을 보내다 나와 화해하는 시간을 가졌던 첫 순간이었다.
분명 나와의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잘 가꿔가고 있었는데, 좋아하는 일을 찾고 나서 밸런스가 천천히 깨져갔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달려왔었을까?' 이미 엎질러지고 나서 하는 의미 없는 질문을 내게 수차례 했었다.
일이 너무 좋아서, 나를 함부로 휘두르는 일터에서의 모든 일들에 스스로를 챙기는 걸 조금씩 내려놨던 게 차곡차곡 쌓여왔나 보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타인을 위해 진심으로 기뻐하려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잘 되길 바란다면, 우선적으로 나와의 관계가 좋아야 한다.
'우린 스스로를 잘 돌보고 있을까?'
내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도 받아들인다는 것도 너무 어려운 일이지만 내가 괜찮은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 내 마음은 어떤지에 대해 스스로에게 끊임없는 노크를 죽기 전까지 해야 한다.
인생이란 '나를 만나러 온 여행'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평소에 우리의 영혼은 어디쯤에 머물러 있을까?"
역할과 책임감에 똘똘 쌓여 있는 우리들의 삶은 나의 감정 하나 들여다보는 시간도 부족하고 피곤하고 마음의 여유가 없다. 너무 슬픈 일을 너무 짜증 난다며 맛있는 음식으로 감정을 퉁친다.
나도 그랬었다. 상담을 받으며 초점을 나에게로 돌리는 시간을 가지면서 내 삶의 시계가 처음으로 천천히 느리게 흘러갔다.
모든 눈물에는 이유가 있다고 하고 그냥 흘리는 눈물은 없다고 한다.
울어야 할 눈물의 양을 채워야 그 일을 보낼 수 있다는 얘길 들었었다.
그때 바다 앞에서 나와 화해하는 눈물을 처음 흘리면서 깨닫고 난 후에 독립을 결정하게 됐었다.
나를 돌보는 시간들을 보내면서 충분히 울어야 웃을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울어야 할 일인지도 모르고 아픈지도 모르면 눈물도 안 난다. 울고 있는 나를 보려고 하지 않으면 그 일은 영영 해결될 수가 없다.
요즘은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면 그 눈물이 반갑게 느껴진다.
예전엔 어쩔 줄 몰라 하기도 하고 내 마음까지 아파서 덩달아 많이 속상했었는데 감정에 솔직해져 우는 걸 보고 있으니 ‘아 다행이다. 축복이다! 울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다.
수면 위로 떠오른 힘든 일이 울고 싶은 만큼 다 울고 나면 해가 뜨겠구나 싶어서 되려 기분이 좋다.
“괜찮아.
그냥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더 울어
울고 싶은 만큼 다 울어”
내 앞에서 울고 있는 걸 보면서 이제는 괴로움을 보내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걸 알아서 웃음이 난다.
“얼마나 힘들면 눈물이 나,
많이 울고 스스로 많이 안아줘.
오늘도 고생했어 우리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