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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대장 Oct 24. 2024

아직은 죽지 않았다

아이의 안녕에 관하여


아이가 죽었다. 분명 일행들과 함께였는데, 잠시 눈을 돌린 사이 아이는 철제 난간에 앉아있다. 왜 아이를 저곳에 혼자 두고 내가 이 자리까지 떨어져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몸을 돌려 아이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부터가 시작이었다. 자신의 키만큼 높다란 난간에, 분명히 혼자 오르지 못했을 텐데 어찌하여 아이가 그 난간에 올라앉아 다리를 까딱까딱 흔들고 있는 것인가. 위태로운 아이를 발견한 순간 내 다리는 멈추었다. 한 발짝만 내디디면 아이는 뒤로 발라당 자빠질 것만 같았고, 난간 아래는 직접 보지 않아도 땅에서 꽤 먼 높이일 거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차린다.



아이를 향해 무거운 발을 억지스레 떼면서 속으로 내뱉는다. 가만, 가만, 가만히 있어. 그런 나의 말에 아랑곳 없이 아이의 다리는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처럼 정처 없이 흔들린다.  아이와 가까워질수록 숨이 막혀온다. 숨을 쉬는 것에 집중할 새가 없다.



아이의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나누는 사람들, 아무도 아이를 발견하지 못한 것인가? 저렇게 작은 아이가 난간에 앉아 있는데 사람들은 왜 아이를 보지 못하는 것인가? 보고도 못 본척하는 것인가? 그마저도 아니라면 저 아이가 다리 아래로 떨어지든 말든 관심이 없다는 것인가? 그 짧은 순간에도 오만가지 생각이 검은 연기처럼 머릿속을 시커멓게 그득 메운다.



아이에게 거의 다 와 갈 때쯤 아이가 나를 쳐다본다. 어? 엄마네? 엄마가 거기 있었네? 아이의 눈빛은 반가움과 두려움이 뒤섞인 채 혼란스러워 보였다. 그래. 엄마야.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지 않아 애꿎은 목덜미를 손아귀로 그러 쥐며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내가 한마디라도 하면, 숨이라도 내뱉으며 그 압력으로 아이가 날려져 갈 것만 같다. 사정권 안에 들어온 아이에게 손을 뻗는다. 그 순간, 아이는 표표히 날려간다.



허공을 휘젓는 손목을 시큰한 바람이 감싼다. 서늘한 소름이 일자 목구멍이 터진다. 이미 사라진 아이를 그제야 부른다. 아이의 이름을 비명처럼 내뱉는다. 없다. 아이는 이제 그곳에 없다.



꿈이다. 안다 꿈인걸. 아이에게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는 순간에도 알고 있다. 꿈이라는걸. 하지만 꿈 속일지라도 아이를 꼭 살려 내고 싶다. 지난번처럼 아이를 죽게 놔둘 순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렇게 보낼 수는 없다. 이번에는 살려야 한다. 꼭 살려야 한다.



심장박동이 거세지면서 자연스럽게 눈이 떠진다. 울었나? 소리를 질렀나? 눈을 떠 천장을 보는데 조금 전까지도 그 상황에 놓였던, 무의식적인 현상 속에서 나의 몸과 음성이 뒤틀렸다는 걸 어렴풋하게 느낀다. 뻣뻣한 몸을 돌려 옆에 누워 있을 아이의 몸을 찾으려 손을 더듬는다. 아이의 몸에 손이 닿으면 수순처럼 눈물이 줄줄 흐른다. 나의 아이는 죽지 않았다. 



그 많은 밤 아이는 죽고 또 죽었다. 시커먼 진흙탕 속에 동그란 흙 거품만 남긴 채 뻘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도 했고, 얼굴과 팔다리에 시퍼런 멍이 든 채 사람들이 그득 찬 골목을 뒤돌아보지도 않고 도망치는 아이의 뒤를 죽을힘을 다해 달려가는데도 아이를 놓치고 만다. 때마침 들어선 건물 주차장이 저만치서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고 조수석에 앉은 아이를 바라보며 숨과 함께 내 뱉는 말, "아가, 괜찮을 거야!" 낮은 음성과 함께 천장에서 그대로 떨어져 내리는 콘크리트 지붕. 뉴스에서나 보던 붕괴 사건 현장에서도 나는 아이를 지켜내지 못했다. 



그렇게 사라진 아이는 눈을 뜨면 내 옆에 누워있다. 가벼운 다리 한 짝을 내 허벅지 위에 올려 둔 채 얕은 숨을 색색거린다. 숨도 안 쉬어지는 나를 알 턱이 없는 아이의 메마른 머리카락을, 올려져 있는 종아리 피부의 감촉을, 방안에 가득 찬 아이의 숨 냄새와 희미하게 풍겨져오는 땀 냄새를 한껏 들이 마신다. 살아있다. 나의 아이는 살아있다.



그런 생각을 왜 해요? 왜 그렇게 끔찍한 생각을 하는 거죠? 죽긴 왜 죽어요! 말이라도 찝찝하네요. 



많은 엄마들은 상상조차 기피하고 그것을 떠올린 자신의 머릿속을 탈탈 털어내고 싶어 한다. 상상만으로도,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그것을 나는 매 순간 절감하고 있다. 그것은 일면 고통 중에서도 가장 큰 고통이 되기도 하지만 역으로 그렇기에 지금 내 옆에 선 아이가 이 세상에서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라는 걸 누구보다 십분 공감한다. 그것은 나의 육아에 정말이지 커다란 힘이고 살아있는 아이와 함께 마주 볼 수 있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닐 소소한 시간조차 폭죽 같은 환희이고 죽어서도 갚지 못할 은혜이고 축복이라는 걸 나는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오늘 아침, 치맛단에 프릴이 달린 노오란 잠옷을 입은 아이가 나의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뒤꿈치를 들고 폴짝, 나비처럼 내 품에 안긴다. 읽던 책을 덮고, 쓰고 있던 안경을 벗으며 나비 같은 아이를 품 안에 그득 채우면 이상하게 눈물이 난다. 이 작은 생명체가 매일 아침 나에게로 날아든다는 건 아이에게 내가 꽃일지도 모른다는 감격과 이렇게 가벼운 아이가 실로 어마어마한 무게감으로 내 품을 채우면 생이, 이 생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중요한 무엇이 된다. 



지금 당신의 옆에 앉은 아이를 보라. 살아 있는 당신의 아이에게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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