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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군지로 이사 간 동생과 천년 전 개경

천년을 관통하는 입지와 사교육

by 소만

천년을 관통

올 초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동생은 학군지로 이사를 갔다. 경기도에 살던 동생은 서울로 이사를 와서 3년 만에 인서울 학군지로 입성했다. 자가였던 새 아파트는 전세를 주고, 학군지 주변의 아파트 전세로 옮겼다. 동생이 살던 아파트는 밝고 깨끗한 지하 주차장에, 동마다 엘리베이터 2개에 지상에는 차가 다니지 않고 아파트 내 헬스장과 새 도서관이 있었다. 하지만 이사 간 곳은 비좁은 주차장에 낡은 엘리베이터 한 개뿐인 30년 넘은 아파트였다. 원래 살던 곳과 그리 멀지 않았지만 가격은 새 아파트보다 훨씬 비쌌다. 이게 학군지의 위력인가? 그만큼 학군지가 매력이 있는 것일까?


동생의 선택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학군지로 이사 간다는 것은 한국에서 단순한 주거지 변경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유명 학군지 주변 아파트는 밀집된 학원가와 다양한 편의 시설을 쉽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 못지않게 그곳에 사는 것 자체가 주는 사회적 신호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한국 사회의 특징이 아니라 역사적인 맥락의 한 흐름이다. 천 년 전 고려시대도 지금과 마찬가지였다.


고려시대에는 거주지에 따라 과거 응시에 제한이 있었다. 양인이라도 향·소·부곡 같은 특수 지역에 살면 사회적 차별을 받았고 과거 응시에도 실질적 제약이 있었다. 반면 개경에 거주하면 개경시 등 특별한 과거 응시 기회가 주어졌고, 교육 인프라도 집중되어 있었다. 개경에 산다는 것은 단순히 수도에 거주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출세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자격 같은 것이었다. 입지가 곧 신분이었다.


그중에서도 문벌 귀족들은 자녀의 과거 시험 합격을 위해 특별한 사교육을 시켰다. 바로 12 공도였다. 그중에서도 최충의 문헌공도가 가장 유명했다(최충은 과거시험 출제위원 출신이다). 마치 오늘날 "○○학원에 다닌다"라는 말이 학생의 수준을 말하듯, 당시에도 "문헌공도 출신"이라는 타이틀은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게다가 12 공도는 대부분 개경에 집중되어 있었다. 고려시대 사교육은 개경에 집을 마련하고 자녀를 유명 공도에 보낼 수 있는 재력이 있는 문벌귀족의 자제들이 주로 이용했다. 이를 통해 그들은 대를 이어 관료가 되었다. 지방에 사는 양인 가정의 자녀가 과거에 응시하여 합격할 수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오늘날 우리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강남 8 학군", "대치동 학원가", "목동 입시학원". 이 단어들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다. 학군지에 산다는 것은 최고의 교육적 인프라를 누릴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의미한다. 학군지 아파트와 사교육은 계층 이동의 사다리이자 동시에 진입장벽이다. 좋은 학군에 위치한 집을 사려면 수억, 수십억이 필요하고, 유명 학원에 다니려면 매달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이 든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교육 환경을 결정하고, 교육 환경은 다시 입시 결과로 이어지며, 그 입시 결과는 높은 확률로 다음 세대의 경제력으로 연결된다.


한국사를 공부하다가 고려시대가 현재와 참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 년이라는 시간 동안 기술은 발전했고, 입시 제도는 바뀌었고, 세상은 완전히 달라졌지만 교육과 기회, 입지와 신분, 돈과 사교육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변한 것이 없어 보인다.


사실 지금 나는 결정의 기로에 서 있다. 남편이 이직하려는 회사 근처에 유명 학군지가 있다. 최종 면접을 남겨둔 상황에서 만약 합격한다면 회사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갈 예정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평수로 학군지 아파트를 가려면 그동안 모은 돈을 다 써야 한다. 주변 사람들은 영끌하는 것도 아니고, 빚을 많이 지는 것도 아니니 학군지로 이사 가는 것 자체가 기회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하지만 선뜻 결심이 서지 않는다. 고려시대 자녀의 과거시험 합격을 위해 전 재산을 가지고 개경으로 향하던 사람들도 이런 고민을 했을까. 새 아파트에 살던 동생은 학군지의 30년 넘은 아파트에 전세로 가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천년 전, 고려 개경의 12 공도 주변의 집값도 비쌌을 것이다. 개경 학원가 주변은 재력가들이 사는 고려시대 사교육 1번지가 되었을 것이다. 고려시대 사교육 시스템은 문벌귀족이라는 폐쇄적 지배층을 낳았고 과거에 합격한 문신들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다시 교육을 통해 세습했다. 이 문신들은 지속적으로 무신들을 업신여겼고, 결국 무신정변이라는 후폭풍을 불러일으켰다.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교육의 기회가 경제력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가 심화되면, 고려 후기 같은 사회적 혼란이 더 심해지는 것은 아닐까.


천년의 시간 동안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하는 것이 많다. 이 역사적 사이클과 흐름 속에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이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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