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lizabeth Kim Apr 12. 2024

우리네 어머님 인생

어머님의 깊은 한을 통해, 내 안의 한을 깨닫다

어머님의 나이는 아흔네 해를 헤아린다. 작년까지만 해도, 어머님은 몸과 마음 모두 어머님 연세가 무색할 정도로 정정하시고 건강하셨다. 가끔 시누이들 사이에서 어머님의 기억력이 조금씩 흐려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연세에 비해 정신이 맑다고 생각했다.


어머님의 인품에 대해선 이루 말할 수 없다. 어머님처럼 순하고 착하신 분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좋으시다. 그런 어머니께서 올해 들어서 가끔 역정을 내시는 모습을 목격하는 일이 늘었다. 열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맏며느리로 시집오신 어머니다. 남편의 부재 속에서 시동생 여덟 명을 키워내셨다. 남편이었던 시아버님이 결혼하시자마자 해병대에 입대하셨기 때문이다. 남편도 없이 시부모님과 시동생을 포함한 열 명이 넘는 대가족을 돌보며 시집살이를 하셨다.


오랜 세월을 거쳐 동안 어머니는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살아가셨다. 젊은 시절, 아버님은 집을 지어 파시는 일을 하시며 엄청난 부를 이루셨다. 하지만, 동업하시는 친구분의 배신으로 모든 것을 잃게 되셨고 그로 인해 가족은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시동생들이 어머님의 헌신에 보답하지 않은 것은 고사하고, 지금까지 연락 한번 없는 것이 어머님의 가슴에 깊은 한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시집온 이후로도 가끔 시동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지만, 최근에는 감정이 담긴 말씀을 하시는 일이 잦아졌다. 이렇게 순하고 착한 분을 변화시킨 것을 무엇일까?  


어머님을 통해, 나 역시 조금씩 쌓여가는 감정의 존재를 인지하세 되었다. 원부모님, 남편, 아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중요한 가치를 발견하게 된 셈이다.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오지 않았다면 알지 못했을 깨달음이다. 아이들에게 풀었던 과거의 행동들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캐나다로 빈손으로 떠나 힘들 때 아이들에게 화를 내었던 일들이...


어머님의 삶을 통해, 나 역시 내면에 서린 한이 마음속에 서려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네 어머님 인생에선 평생 그렇게 살고 계신다. 정말 안타깝고 가슴이 에린다. 그럼에도, 이제라도 이를 깨닫게 된 것이 정말 다행이다. 적어도 나에겐 아직 돌이킬 수 있는 시간이 남아 있지 않나. 이런 시간이 있다는 것이 참 설렌다.

 

이전 13화 남편의 한국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