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꽤 길었던 명절 연휴.
친정에서 5일을 머무르고 집으로 돌아왔다.
2주 동안 콧물과 기침. 폐렴이라는 진단으로
내내 약을 먹었던 태오는 드디어 다 나았다.
하오는 할머니 집에 있을 때,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졌는데 어찌나 놀랬는지..
‘엄마 집에 가고 싶어요. 하오 침대에서 자고 싶어요.’
그랬다.
태오는 이리 쿵 저리 쿵 벽이며 장롱에
머리를 박아대며 자더니,
집에 와서는 한 번을 깨지도 않고 잘 잔다.
나도 집이 편하고 좋은걸 너희도 그렇구나.
반찬이 콩나물 하나만 있어도 잘 먹는
하오가 예쁘다며.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왔다.
세상 제일 좋아하는 딸기도 할아버지와 나누어 먹고,
할아버지가 머리카락도 세심하게 말려주었다.
내 아빠가 손녀 대하는 모습을 보니,
어린 나를 예뻐하던 아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손녀를 예뻐하는 게 나를 예뻐하는 것만 같다.
반면, 아무리 말을 잘 들어도 징징거리며
우는소리를 내는 하오를 보고 엄마는
징징거리지 말라며 혼을 냈다.
어릴 때 내가 징징거리거나 우는소리를 내면
엄마한테 많이 혼났었는데.
엄마는 우는소리가 그렇게 싫단다.
나.. 엄마 닮은 걸까.
나도 아이가 울 때 화를 참기 힘들다.
‘엄마, 애 다섯 어떻게 키웠어?’ 물으니.
‘몰라 어휴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라고..
친정에 너무 오래 있었다.
엄마가 지쳤다. 빨리 집에 가야지! 도망가자!!
- 집에 돌아오니,
여독을 푸는 듯이 내내 잠이 쏟아졌다.
어제 오빠가 하나로마트에 파는 프리지어 한단을
사 왔다. 오늘 입춘이라며.
봄이면 늘 프리지어가 놓이는 식탁.
커피 캡슐이 다 떨어졌다.
오빠가 분명 출근했는데 누군가 다시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온다.
오빠다.
커피캡슐 없는 거 알고,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건네고 간다.
오빠는 시간이 지나도 참 세심하고 다정하다.
- 어린이집을 한참 안 간 하오가 가기 싫다고
입을 삐죽 내미는데 모른 척 등 떠밀어 보내놓고
조용히 둘째와의 시간을 보냈다.
매일 뭐 하고 놀까 놀 궁리를 한다.
점심을 먹고 나니 햇살이 거실을 가득 드리우는데
너무 예쁘다.
부엌 놀이 장난감을 정리해 두었더니
하원한 하오가 태오랑 같이 꽁냥꽁냥 요리를 한다.
누나 옆에서 냄비 뚜껑 덮는 태오가 왜 이리 귀여운지.
11개월에 뒤뚱뒤뚱 걸었던 하오와 달리
13개월이 넘었는데도 태오가 아직 걷지를 않는다.
우뚝 서있더니 오늘은 내 품으로 쓰러지듯이 다섯 걸음 걸어왔다. 자기도 신나는지 해맑게 웃으면서 말이다.
늦게 걷는 것을 걱정하기보다
매일매일 오늘은 또 얼마나 걸을까 기대한다.
걱정보다 기대하는 태도.
육아도 일도 그렇다.
다음 달, 복직을 앞두고 수많은 걱정들이 뻔히 보이지만
눈 감아버리고 기대할 만한 것들을 찾는다.
기대하면서 설렌다.
천천히 남은 시간을 즐기면서
3월을 단단히 준비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