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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nya J May 25. 2024

30대를 위해 살아라

EP04. 20대였던 내가 준 선물

Quote of the Day

Don’t worry about who doesn’t like you, who has more, or who’s doing what.



오늘의 명상은 걱정하지 말자. 사람이 과연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정말 사소한 일까지도 우리는 걱정하고 살죠. 심지어는 연예인 걱정까지 하잖아요. 누구나 걱정을 할 수는 있지만, 그 걱정에 사로잡혀서 살 필요도 이유도 없는 것 같아요. 새가 머리 위로 날아가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둥지를 짓는 것을 막을 수 있다잖아요. 그 사소한 걱정으로 인해 자신에게 주어진 이 값진 하루를 헛으로 보낼 수 없죠. 직접 방송으로는 보지 못했지만 개그맨 윤성호 씨가 유퀴즈에 나와서 한 말이 최근에 화제가 되었더군요.

" 얼마나 잘 되려고 이렇게 힘들까?"

저번 에피소드에서 말한 Thank you 프로젝트에서도 언급했었듯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리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줬어요. 걱정은 할 수 있지만 자신을 걱정이라는 둘레 안에 가두지 말자고요. 그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뿐이라는 것을 명심합시다.





눈으로 듣는 팟캐스트, 세 번째 이야기 시작합니다.

오늘 나눠볼 주제는 과거의 20대였던 내가, 현재 30대인 나를 위해 준 선물이에요. 여러분도 이참에 한번 함께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지금의 당신의 모습은 지난 과거의 당신이 만들어준 거니까요. 그래서 처음에 정말 후회하는 일도 많았죠. 진작에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뭐 요론 부류의 후회들. 근데 이런 후회들은 잠깐일 뿐 내가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후회가 될지, 아니면 선물이 될지가 구별되는 것 같아요. 분명 10년 후에도 지난날을 후회할지 모를 당신을 위해 그 선물을 같이 풀어보고자 합니다.


저의 30대의 삶은 캐나다에서 시작했어요. 그래서 캐나다에서 시작한 삶은 20대에 겪었던 경험들을 토대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죠. 시간이 지날수록 저 자신에게 왜 나는 미리 준비하지 않았을까, 혹은, 진작에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들을 종종 할 때가 있어요.  그렇게 하지 못한데는  여러 이유가 있었겠죠, 누가 알았겠어요, 제가 지금 캐나다에서 살고 있을지. 저는 과거에 잘 집착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후회는 할지는 모르나 과거를 책망한들 변할 건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과거에 대한 회상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좋은 날도 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한 날들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10대였을 때의 이야기는 여기서 다루지는 않을게요. 어차피 어린 나이였고 대부분이 학교얘기일 테니까요. 그래서 저의 20대를 한번 훓터보고자 합니다.


수능을 끝내고 대학교 진학을 위한 원서들을 엄청 뿌려댔죠. 그중에서 3군데 면접본 대학교에서 합격 통지서를 받았어요.  첫 번째 대학교는 여대였어요. 원해서 지원했다기보다는 뭐라도 걸리라는 심정으로 했던 것 같아요. 근데 3년 동안 여고를 다닌 저로서는 또다시 여자들만 있는 곳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죠. 나름 대학교 캠퍼스 커플을 꿈꾸고 있을 나이에 여대가 웬 말인가. 그래서 바로 포기.  이제 여기서부터가 저의 갈등이 시작되죠. 나머지 두 대학교는 공교롭게도 면접날이 같았어요. 근데 하나는 오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오후였어요. 이론상 가능한 게임이었어요. 하나 끝나고 바로 가면 시간이 얼추 맞을 거 같아서 둘 다 가기로 결정. 사실 오전 면접보다도 저는 오후면접을 보는 대학교에 더 관심이 있었어요. 건축학과에 관심이 있어서 지원한 대학인데 붙었으니까요. 근데 용인에 있는 대학이라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했어요. 오전 면접이 있는 대학은 서울 중심에 있는 대학이고 제가 그 당시 살고 있던 지역과 가까웠고 저 또한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근데 그때 지원했던 과가 화학과였는데 나름 이과였던 저에게는 문안한 과였을지는 몰라도 별 관심 없던 과였어요. 저뿐만이 아니었을 거예요.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 당시 수능은 학생이 원하는 과에 가는 것보다 대학교 이름을 보고 더 지원했을 때였으니까요. 어쨌든 오전 면접을 무사히 끝나고 오후 면접을 받으려 버스를 타고 용인으로 향했어요. 문제는 이미 버스 안에서 지쳐버렸다는 거죠. 면접은 다행히 잘 마쳤는데 다시 버스로 집에 갈 것을 생각하니 타기 전부터 멀미가 나기 시작한 거예요. 속으로 정말 원했던 과였는데 과연 내가 통학하면서 다닐 수 있을 까하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그렇게 합격통보날이 되고 결과는 두 대학교에 합격. 나름 저에게는 bittersweet 한 고민이었지만 차마 어떤 대학을 선택해야 할지 막막하더라고요. 서울에 있는 대학이냐, 원하는 과냐. 내가 관심 있는 과를 선택할 것인가 남들에게 뽐낼 수 있는 대학을 갈 것인가의 고민이기도 했죠. 저의 선택은 관심 없는 과를 지원한 대학이었죠. 단순히 통학이 어렵다는 이유로 원하던 대학교와 과를 포기한 거죠.


그렇다면 저의 대학생활은 여기서 행복했을 까요? 아무리 관심 없는 과일 지라도 저는 뭔가를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 열심히 공부도 하고 장학금도 받고 나름 우등생으로 대학생활을 했어요. 문제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죠. 대학교에서 시험 볼 때마다 우수한 성적을 받았을 뿐 그 시험 점수가 나의 미래를 책임진다는 보장이 없었어요. 저는 시험점수를 잘 받기 위해 공부를 했었을 뿐, 정말로 이 분야에서 탑이 되거나 전문가로서의 자질이 전혀 없었어요. 더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 대학원을 가지 않는 이상은 진로가 분명하지 않았죠. 대학원까지 가고 싶을 정도로 이 과에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고 대학원에 입학할 돈도 없었죠. 대학교 3학년이 되니까 슬슬 현실이 보이는 거예요. 대학교 학사 졸업장만으로 취업의 문이 쉽게 열리지 않을 거란걸 깨닫는 순간, 만약 내가 관심 있었던 그 건축학과에 진학했다면 뭔가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적어도 실생활에 써먹을 수 있는 뭐라도 배우지 않았을까, 전문기술이 필요하지 이런 이론 지식으로는 취업할 수 있는 곳이 한정되었구나.. 하는 이런저런 후회들이 밀려오기 시작했죠. 이것이 저의 첫 번째 후회였어요. 왜 원하는 꿈을 좇지 않고 남들 시선을 먼저 생각하고 멀리 보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


그래서 만약 제가 다시 그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꼭 저에게 이 말을 하고 싶어요.

"네게 원하는 것을 해라."


제 주위에는 저의 미래를 위해 진심 어린 조언이나 상담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죠. 심지어는 부모님조차도 내 미래를 위한 조언을 해주지 않으셨어요.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 좋은 직장에 취업해야 한다. 기준은 언제나 이런 식이 었으니까요. 누굴 탓하겠습니까? 그런 사회에서 살아오신 분들인데. 이제는 세상이 많이 바뀌었고 사회인식도 다양하게 변화했기 때문에 자신의 선택이 중요해진 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그러니 저와 같은 고민에 있을 20대 친구들에게도 이 말을 전하고 싶네요. 자신이 원하던 것을 하면 후회하지는 않을 거예요. 대신, 후회가 아니라 경험을 얻게 될 거예요. 우연히 본 짧은 영상이 있는데 어느 한 노인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20대는 꿈을 위해 여러 가지를 경험할 때고 30대는 그 경험을 통해 먹고 살아갈 방법을 찾아가는 단계고 40대는 그 방법으로 돈을 벌고 50대에는 그 돈으로 더 이상 고생하지 않고 살아가는 단계'


참으로 공감 가는 말이었어요. 과연 나는 20대 때 어떤 경험들을 쌓았을까, 과연 그 경험들이 지금 나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있나.


화학과에 걸맞게 제약회사에 취업은 했지만 영업사원으로 취업을 했죠. 당연히 적성에도 안 맞고 내가 배운 지식들과 무관한 일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이 한심하기까지 했어요. 그렇게 원치 않은 과에서 졸업을 하고 원하지 않는 제약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취업을 했지만 6개월 정도 다니고 그만뒀죠. 대학생 때 솔직히 아르바이트 경험도 별로 없었거든요. 과외정도 말고는. 그래서 사회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꽤 힘들었죠. 따지고 보면 4년 동안 공부하고 바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건데, 그에 맞는 경험치가 부족해서 못 버틴 것 같아요. 4년이란 시간을 마치 아무 경험 없이 훌쩍 버린 느낌이라 할까? 이제는 대학생이 아닌 취중생이 돼버린 저에게 취업의 문은 더 높았죠. 그러던 중, 캐나다로 유학 간 친구에게 연락이 온 거예요. 한번 놀러 오라고. 처음엔 해외여행 갈 돈도 없는데 어떻게 갈 수 있겠나 했는데, 이때 아니면 정말 못 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있는 돈 탈탈 털어서 캐나다로 6개월 동안 어학연수를 가기로 결심했죠. 이게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줄도 모른 채 말이죠.


그렇게 6개월 긴 장정을 마치고 돌아와서 깨달은 게 많았어요. '내가 정말 우물 안의 개구리였구나. 내가 너무 남의 시선만 의식하고 살았구나.' 캐나다 여행을 통해서 얻은 교훈은 '잘못한 게 없으면 당당해지자.' 여러 사건들이 그때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굳이 여기서 말하고 싶지는 않아서 다음에 기회가 되면 말하는 걸로 할게요. 한국에 돌아와서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죠. '다시 캐나다에 가기 위해 돈을 벌자.' 영어도 제대로 배우고 싶었고 캐나다 문화가 너무 저랑 잘 맞았던 거죠. 다시 가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돈을 모아야 했죠. 처음 캐나다에 가기 전엔 한국에 돌아와서 과연 내가 취업할 수 있을 까하는 걱정을 했었는데 돌아오고 나서는 '그딴 건 난 모르겠고 알바라도 해서 돈을 벌자'가 되었죠. '어디'에 취업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디든' 취업해서 돈을 버는 게 제 목표가 되었죠.


그 이후에 여러 곳에서 일을 한 경험이 있는데 이 경험들이 정말 꼬리에 꼬리를 무든 인생 스토리가 되기 때문에 여기서 잠깐 나누고 싶어요.


과연 지금 현재 뭘 하면 재미있게 일할 수 있을 까하는 생각을 중심으로 일을 찾다가 '연극'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거예요. 그래서 무작정 대학로 주변에서 일을 찾았죠. 그렇게 해서 찾은 곳이 공연기획사였어요. 단순 업무 보조 일이었죠. 공연티켓팅도 도와드리고 전화상담도 해주고 여러 가지 공연에 관련된 일이었죠. 그러던 중 연극 포스터를 수정하는 작업을 보게 되었죠. 그때 처음으로 포토샵이란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죠. 너무 신기한 거예요. 예전에는 전혀 관심 없는 분야였는데 갑자기 저도 디자인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무작정 프로그램을 다운로드해서 이것저것 해보는데 어떤 기능이 있는지 어떻게 사용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는 거예요. 혼자서 나름 독학식으로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기본적인 기능정도만 익히면서 사용을 하다가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포토샵을 배울 수 있는 학원을 찾아봤죠. 감사하게도 국비지원무료교육을 해주는 학원이 있어서 무료로 그래픽디자인 코스를 배울 수 있게 되었죠. 이를 통해서 그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스킬이 생긴 거죠. 포토샵, 일러스트레이션, 인디자인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는 스킬. 물론, 이런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안다고 해서 제가 디자인 감각이나 재능이 생긴 건 아니에요. 전 단지 이런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아는 거지, 창작물을 만들어낼 재능은 없었죠. 저에게는 이런 스킬들이 단순 취미생활로 이용할 수 있는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다가 이런 디자인프로그램을 다루는 곳에서 더 전문적으로 일을 배워보고 싶었어요. 아시다시피 저는 디자인 경험도 없고 포트폴리오 같은 것도 없었기 때문에 디자인회사에 취업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됐죠.


근데 운 좋게 프린팅 회사에 일을 하게 되었어요. 처음엔 알바로 시작했다가 정규직으로 일을 하게 되었죠. 프린팅 회사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디자인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알아야 했고,  이미 디자인 작업이 끝난 상태로 인쇄소로 넘어오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발간하는 책자나 졸업앨범 제작할 때 말고는 굳이 창작물을 제작할 필요도 없었죠. 저에게 딱 맞는 직장이었죠. 그렇게 일에 적응하고 있을 때쯤, 또 캐나다에 갈 일이 생겼죠. 그 유학 간 친구가 결혼을 한다는 거예요. 저에게 Bridemaid가 되어 달라고 하더군요. 망설임 없이 간다고 했죠. 그리고 그 당시 그 친구가 제게 캐나다 지인들에게 보낼 청첩장을 만들어달라고 해서 감사한 마음으로 청첩장까지 작업해 주었죠. 또한 Bridemaid 드레스를 입기 위해 6개월 동안 요가를 시작했어요. 유튜브 찾아보면서 오자다리 교정하는 운동, 밸런스 맞추는 운동 등등 드레스 입었을 때 예뻐 보이고 싶어서 아주 날리도 아니었죠. 내 결혼식도 아닌데 무슨 호들갑을 떠느냐고 하시겠지만 여자라면 공감하리라 믿어요. 그렇게 6개월 동안 요가를 하고 나니까 다리교정효과를 똑똑히 경험한 거죠. 그 이후로 요가라는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처음에 시작할 때는 단순히 살 뺄 목적으로 배웠다면 이번에는 전체적인 몸의 밸런스를 맞추고 싶어서 요가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죠. 그러다가 학원만으로는 제대로 배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제는 아예 요가 자격증을 따보자는 결심까지 하게 된 거죠. 제대로 배워서 내가 스스로 수련을 하는 게 낫겠다 싶었던 거죠. 그때도 여전히 프린팅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라 회사 끝나고 틈틈이 자격증을 준비했어요. 자격증을 준비하다 보니 나중에 캐나다에 가게 되면 요가강사로 취업해서 돈을 벌면 되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더군요. 자격증을 따고 틈틈이 헬스장에서 요가수업까지 진행할 수 있는 기회까지 얻게 되었죠. 30살이 되던 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요가강사로서 몇 달 동안 일을 하다가 마침내 캐나다로 출국하게 되었죠.



사람 인생이라는 게 정말 정답이 없죠? 화학과를 졸업하고 마지막 한국에서의 커리어가 요가강사가 되는 이 과정. 20대 때 제 진로에 대해서 엄청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지금 이렇게 돌아보고 나니 힘들었던 과정보다는 인생의 하이라이트만 기억이 남네요. 그렇다면 이렇게 얻은 20대 때의 경험들은 제가 30대가 되었을 때 어떻게 활용되었을까요? 위에서 언급한 어느 노인의 말대로라면 20대 때의 경험들이 30대 때는 그 경험을 통해서 먹고 살아갈 방법을 찾아가는 단계라고 했잖아요. 저는 이제 30대 후반을 달리고 있어서 40대 때는 그 먹고 살아갈 방법을 이미 찾아서 돈을 벌어가는 과정을 겪어야 하는 건데 과연 저는 그 방법을 찾았을까요?



20대 때 얻었던 경험들이 캐나다 생활을 하면서 어느 한 부분에서는 도움을 주긴 했어요. 예를 들면, 어학원에서 제가 요가강사 경력이 있는 것을 알고 방과 후 활동으로 요가수업을 해달라고 하더군요. 이 또한 좋은 경험이 될 듯싶어서 한 두 번 정도 자원봉사를 했죠. 또 캐나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무료영어학교에서 캐나다 고등학교 디프로마를 받을 수 있는 시험이 있는데 그 시험 과목 중에 하나가 Biology였는데 전 이미 대학교 때  이 과목을 이수했기 때문에 공부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죠. 그래서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죠. 그래픽 디자인 경력을 살려서 인턴으로 private 영어학원에서 홍보자료를 제작하는 기회도 얻을 수 있었죠. 이런 경험들이 직접적으로 직업으로는 연결이 되지는 않았지만 내 경험들이 이런 식으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배웠죠.


결론부터 말하면 아직도 먹고 살아갈 방법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에요. 지금 현재 캐나다 코스트코에서 일하고 있지만 저는 이것이 저의 정착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쨌든 돈은 벌어야 하니까 어디서든 일해야 한다는 신념은 20대 때 가졌던 마음가짐과 동일하죠. 처음에 캐나다에 와서 요가강사로 일하고 싶었지만 언어의 장벽에 부딪혀서 이 부분을 먼저 해결해야 했어요. 그렇게 어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생활비를 충당해야 했기 때문에 어디든 취업을 해야 했죠. 처음에는 한인마트에서 캐쉬어로 일을 했어요. 5개월 동안 캐쉬어로 일하고 나니 이 또한 경력이 되어 다른 곳에서 지원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고 캐나다 리테일 스토어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죠. 그곳에서 5년 동안 일을 하게 되었고 또 그 경험을 통해서 더 큰 회사인 코스트코까지 오게 되었죠. 여기까지 오는데 8년이란 시간이 흘렀네요. 언어적인 문제, 금전적인 문제가 조금씩 해결되니까 이제는 다른 꿈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글을 쓰고 싶었어요. 글을 통해서 내 삶을 보여주고 싶어 졌어요. 또 모르죠, 제 글이 돈을 벌게 해 줄지도. 결국은 '네가 원하는 것을 해라.'로 돌아온 것 같네요. 아무래도 저는 어느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물지 못하는 성격인가 봐요. 20대도 30대 때도 계속 내가 원하는 것을 찾고 있으니 말이죠. 지금은 40대를 바라보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내가 40대에 접어드는 순간에는 지금 내가 준비하고 있는 것들이 빛을 발하리라 믿거든요.


20대 때는 그때만을 위해서 살았어요. 미래를 보지 못한 채, 그 현실의 무게를 버거워하면서. 그때의 경험들이 30대 때 얼마나 큰 힘이 돼 줄지 상상도 못 한 채.

근데, 그때의 경험들, 아픔, 시련들이 저의 30대를 버티게 해 준 자양분이 되었죠. 어떻게 보면 참 감사해요.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길을 찾으러 노력한 거 보면요. 이게 나의 20대가 나에게 준 선물이죠.


이제 슬슬 마무리를 해야겠네요. 제 기준에서의 20대는 지금의 저를 만들어주었지만 사람마다 그 시기가 다르리라 믿어요. 그러니 누군가에겐 어제부터가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는 거죠. 잘 생각해 보세요. 지금의 당신을 여기까지 오게 할 수 있었던 순간들을 말이죠. 저에게도 꼭 공유해 주세요. :) 그럼 저는 다음 시간에 또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좋아요와 구독은 사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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