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의미 있게 살기 위해 반드시 점검해야 할 세 가지
우리는 종종 눈앞의 목표만을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가느라, 정작 우리 삶의 소중한 부분들을 놓치고 살 때가 많습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리 앞에서,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혹시 끊임없이 외부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지나치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세상이 정해놓은 속도에 자신만의 진짜 모습을 잃어가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삶의 무상함을 이해하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고, 우리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깨닫게 해줍니다. 때로는 잠시 멈춰 서서, 숨 가쁘게 달려온 길을 고요히 돌아보는 지혜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마치 인디언들이 말을 타고 달리다가도 이따금씩 멈춰 서서, 자신이 달려왔던 쪽을 한참 동안 바라본 뒤 다시 길을 떠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혹여 자신이 너무 빨리 달려 영혼이 뒤따라오지 못할까 염려하여, 영혼이 따라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합니다.
삶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가기를 요구합니다. 그 깊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멈출 줄 아는 지혜와 과감히 비울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여정을 통해, 우리는 결국 자신과의 진정한 화해를 이루어가는 귀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당나라 때의 선사, 문익 선사께서는 삶의 무상함을 꿰뚫어 보며 이렇게 '무상송(無常頌)'을 읊으셨습니다.
"솜털을 껴안으며 녹음방초를 대하니 그 취향이 예전과는 다르구나! 머리카락은 오늘도 희어지는데 꽃은 지난해처럼 붉구나! 아름다움은 아침 이슬을 따르고 향긋한 향내는 저녁 바람을 따르니 어찌 꽃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가 비로소 공(空)을 안다고 하겠는가! 꽃이 피는 것도 무상이요, 꽃이 지는 것도 무상이다. 자기 자신과 바깥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면, 번뇌와 집착이 일어날 때마다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 한다."
꽃이 피고 지는 자연의 순리처럼, 우리 삶 또한 찰나의 순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흘러갑니다. 젊음이 영원하지 않고, 아름다움이 영원하지 않듯이, '무상(無常)'의 삶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모든 존재는 인연에 따라 생겨나고 소멸하는 '연기적 흐름' 속에 놓여 있습니다. 시간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이 순환은 바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있는 그대로의(如如) 모습입니다.
삶은 이처럼 무상하기에, 우리는 '오늘'을 더없이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다시는 오지 않을 소중한 순간들이기에, 무상함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정성을 다해 가꾸고 마음껏 누려야 한다는 깊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현재를 살아갑니다. 내일이 아닌, 바로 '지금 여기'에서 사랑을 행하고 선한 영향력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 무상이 주는 가르침입니다.
무상은,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아픔과 상처에는 따뜻한 위로와 치유의 손길이 되어주고, 삶의 크고 작은 굴곡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깊은 지혜를 길러주며, 주어진 시간을 가장 충만하고 의미 있게 살아내도록 이끌어주는 원동력이 됩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문득 '어떻게 살아야 할까?' 스스로에게 묻곤 할 때가 있지요. 고요히 멈춰 서서 삶의 방향을 되짚어볼 때, 시대를 초월한 고전의 지혜는 늘 깊은 울림을 선사합니다.
"자왈(子曰), 부지명 무이위군자야(不知命 無以爲君子也), 부지례 무이립야(不知禮 無以立也), 부지언 무이이지인야(不知言 無以知人也)."
하늘의 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예를 알지 못하면 세상에 바로 설 수 없으며, 말에 담긴 의미를 알지 못하면 사람을 제대로 알 수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첫째, 부지명(不知命) – 삶의 목적을 찾아 나아가기
공자가 말한 '명(命)'은 단순히 타고난 운명을 넘어, 우리가 삶에서 추구해야 할 목표, 꿈, 그리고 밝은 미래를 향한 비전까지 포함하는 넓은 의미입니다. 인생의 목표와 뚜렷한 목적의식이야말로 우리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는 귀한 에너지입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둘째, 부지례(不知禮) – 관계 속에서 함께 빛나는 삶
우리는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서로 돕고 기대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이지요. 여기서 '예(禮)'는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입니다. 이 예가 없다면 아무리 좋은 관계도 쉽게 흔들리고 무너질 수 있습니다.
'배려'와 '이해'로 서로의 부족함마저 감싸안는다면, 더 큰 배움을 찾고 새로운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부지언(不知言) – 진정한 소통으로 마음을 잇기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사람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한 가장 첫걸음은 바로 '말'에 담긴 속뜻과 마음을 제대로 듣고 이해하는 힘, 즉 '부지언(不知言)'에서 옵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그 안에 담긴 감정과 의미를 헤아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소통의 시작이자 관계의 깊이를 더하는 열쇠입니다. 진정으로 상대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잠시 나 자신을 내려놓고 마음을 열어야겠지요. 나의 고집이나 편견을 조금 내려놓는 용기가 필요할 때입니다.
공자의 가르침처럼, 내 삶의 목표와 목적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고, 관계 속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상대방의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는 연습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여기, 우리의 삶과 업(業), 그리고 마음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무비 스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무비 스님은 증도가 강의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체가 다 마음뿐이었음을 깨달으면 업장도 따로 업장이라 할 게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더라도 그것은 본질적으로 금(金)이라는 비유처럼, 겉모양에 사로잡힌 관념을 버리고 사물의 본질을 보라는 깨달음입니다.
무엇을 했건, 하고 있건, 하려고 하건 그 모든 것이 우리의 마음 작용이며, 하나의 자성(自性)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말라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또한 하나의 성품이 인연 따라 갖가지 모양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이지요.
이런 것을 일컬어 "인과에 어둡지 않다", 즉 **"불매인과(不昧因果)"**라고 합니다.
인과에 어둡지 않다는 것은 모든 결과가 원인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고, 그 인연을 망각하지 않는 지혜를 뜻합니다. 본래 평등한 성품 자리를 깨닫지 못하고 차별적인 모습에 사로잡혀 살면, 백천 겁이 흐른다 해도 지은 업은 없어지지 않아 인연이 맞아떨어질 때 그 과보를 스스로 돌려받게 됩니다.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곧 미래의 씨앗이 됨을 잊지 않고, 매 순간을 깨어있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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