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저마다 다른 꿈과 목표를 가진채 배에 올랐다.
누군가는 가정을 부양하기 위해 소년가장이 되어야만 했고 누군가는 본인의 꿈을 뒤로한 채, 여동생의 학비를 벌어야 했으며 누군가는 빚을 갚고 집안을 일으켜야만 했다.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가혹했다.
어린 나이의 친구들이 짊어진 그 삶의 무게는 지금에서의 나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승선이라는 환경과 이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그 누가 온전히 이해해 줄까.
"힘들면 그만둬""버티지 않아도 돼"
이런 무책임한 말들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정말 관둬버리면 이들의 가정은 누가 책임져 주나.
그들은 그걸 알기에 누구에게도 힘들다 내색할 수 없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기댈 뿐이었다.
친구들에 비해 나는 그저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경제적으로 집안이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그냥 일찍 철이 들었을 뿐이었다.
2019년 9월 3일
내가 처음 승선을 하러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떠나 싱가포르에 도착한 날이다.
이제부턴 더 이상 가족도, 친구도 아무도 없이 홀로 서야만 했다.
두렵지만 용기를 내야만 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아까워서, 응원해 준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친구들도 버티는 데 나만 무너질 순 없었다. 아니 버텨야만 했다.
존재만으로 의지가 되었듯 누군가에게 나도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했다.
배에 처음 올랐던 그날은 잊을 수 없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 페인트 냄새와 기름 냄새가 섞인 처음 맡아보는 특이한 냄새.
"아.. 나 이제 진짜 승선했구나."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승선하게 된 실습항해사 XXX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장님을 비롯해 배에 모든 선원에게 기합이 가득한 인사를 드렸다.
삼등항해사님께선 나에게 작업복 3벌을 주시며 방으로 가 짐을 정리하라 하셨다.
화장실도 없는 1평 남짓한 방은 앞으로 내가 7개월간 지내게 될 곳이었다.
짐을 정리하며 약한 휴대폰 신호를 붙잡고 어머니께 문자를 드렸다.
"저는 배에 잘 승선했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이 많으실 부모님이시기에 나라도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했다.
"7개월, 앞으로 210일... 집에 가는 날이 올까? 모르겠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뒤엔 브릿지(선교)로 얼른 올라갔다.
앞으로 많은 일들이 벌어질지 모른 채,
실습항해사인 나의 승선 첫날은 그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