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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스타드 Dec 05. 2023

승선생활에서의 불편한 진실들

[처음 마주한 브릿지]


학교 시뮬레이터와 실습선이 아닌 나의 첫 실제 항해 당직이었다.

레이더를 비롯해 몇몇 항해 장비를 제외하곤 온통 처음 보는 장비들로 가득했다.

처음 마주한 실제 선교의 첫인상은 마치 외계인의 우주선과도 같았다.


이등항해사님께선 나에게 첫날인 만큼 오늘 하루는 적응하며 쉬어가자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곧 하루 이틀이 아니게 되었다.



모든 해기사는 해기면허를 발급하기 위한 승선 실습 기간이 필수로 요한다.

이 기간은 단순히 승선 경력만 채우는 것이 아닌 해기사가 되기 위한 실무와 해당 선사의 시스템을 배우는 기간으로 육상으로 비교하자면 인턴과도 같다.


여기서의 문제는, 승선 실습이 실습생에겐 필수이지만 사관들에겐 강제사항이 아니다.

즉, 내가 탄 배의 상급자가 나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아도 전혀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이와 별개로 상급자가 외국인이거나 실력이 형편없어도 어쩔 수 없다.

운에 의해 앞으로 나의 승선생활이 좌지우지된다.

이건 해상이건 육상이건 어디서든 해당이 되는 문제이기에 해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배에서 정치성향이 미치는 영향]


어느 날,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고 모두가 식당에 모여 밥을 먹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선장님께서 갑자기 나에게 질문을 하셨다.

"실항사(실습항해사)는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고요한 적막과 모든 이의 귀가 내 말에 집중되어 있음을 느꼈다.


"아. 올 것이 왔구나."

언젠가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 예상했다.

지금의 대답으로 앞으로 나의 승선생활이 좌지우지될 것이 분명했다.

긴장되었지만 천천히 나는 입을 열었다.


“저는 열아홉의 나이에 승선을 하여 투표를 해본 적도 없고 정치에 무지합니다. 한 수 알려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선장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답이었다.


그 말을 들은 이후 선장님께선 그날 저녁 선교에 올라오셔서 2시간의 걸쳐 4대 문명부터 문재인 대통령까지의 정치 역사 강의를 해주셨다.


선장님은 파란색의 정치색을 가지신 분이었다.

그러나 나는 관심이 없었다.

정치 성향이 내 승선생활과 해기지식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선박에서 정치성향은 많은 문제가 된다.

때론 업무 능력과 상관없이 편향되기도 하고 자주 말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나는 후배 해기사들에게 절대로 정치성향을 밝히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저 상급자의 말에 맞장구를 치라한다.

그 이상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끔은 배에서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선거가 이뤄지는데 여기엔 허점이 많다.

첫째로 선장이나 상급자가 중립적이지 않을 경우.

둘째로 허술한 보안이다.

때문에 선상 투표엔 많은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학교에선 해기지식을 가르쳐주지만 이런 사회생활의 대응법을 알려주진 않는다.

단순히 공부를 잘했다고 해서 원만한 승선생활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한 순간으로 내 앞으로의 승선생활이 좌지우지되는 것. 이것이 내가 느낀 불편한 선박의 현실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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