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는 아시아와 유럽, 중동을 넘어 미주 등
배가 어디로 가든 꼭 거치게 되는 항구이다.
그렇기에 싱가포르에 도착한 많은 배들은
선원 교대뿐만이 아니라 연료와 선용품 그리고 선원이 먹을 부식을 실는다.
내가 타게 된 배도 마찬가지였다.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나는 바로 부식을 창고로 옮기는 데 투입되었다.
선원 한 명, 한 명의 인력이 중요한 상황이었다.
성인 스무 명이 한 달은 족히 먹을 량의 부식은 마치 마트를 방불케 했다.
3시간 동안 뙤얕볕 아래에서 산처럼 쌓인 부식을 옮기고 또 옮겼을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작업은 결국 끝이 났다.
고생한 뒤 먹은 저녁밥은 꿀맛이었다.
조리장은 미얀마 사람이었는데, 도무지 외국인이 만든 음식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평범한 수준의 한국 음식 맛이었다.
배는 보통 사관과 부원의 주요 국적에 따라 식단이 두 가지로 정해진다.
만약, 한국인이 주로 타고 있다면 한국 음식 위주의 식단이고 중국인이 주로 탄다면 중국 음식 위주의 식단이 나온다.
그렇기에 보통의 선주들은 사관과 부원의 국적을 통일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한국인 사관과 미얀마 부원, 혹은 한국인 사관과 필리핀 부원 이런 식으로 말이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배는 곧 출항을 하였다.
선장님께선 나에게 그만 방에 들어가 쉬고 내일 점심에 브릿지(선교)에 올라오라 하셨다.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방에와 나머지 짐을 마저 풀었다.
첫날부터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나중에 깨달았다.
내가 앞으로 겪을 일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다음 날이 되고 오전 1100시,
나는 미리 일어나 씻고 점심밥을 먹으러 갔다.
배에선 밥을 먹고 안 먹고는 본인의 자유다.
그러나, 나는 승선하기 전에 “ 배에선 밥을 먹지 않으면 게으르다고 판단하는 분들이 많다. “라는 소문을 들었기에 일부러 점심을 먹으러 일찍 갔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위 소문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인 것 같다. 실제로 나이가 많거나 꼰대기질의 상급자들은 밥을 먹지 않는 사람들을 게으르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부지런한 사람들은 대게 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점심밥을 먹은 뒤엔 양치를 하고 브릿지에 11시 45분 전에 올라갔다.
배에는 15분 전 집합'이라는 개념이 있다.
최소한 15분 전엔 미리 와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배는 3교대로 당직이 쉬지 않고 돌아가니 그 15분 동안 인수인계를 마치고 당직을 준비한다.
잠시 후, 앞으로 나와 당직을 같이 서게 될 이등항해사님이 오셨다.
첫날 인사 이후 두 번째 만남이었다.
나의 항해 당직과 실습은 이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