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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스타드 Dec 09. 2023

선원이 이발하는 방식

[우리 배 이발소]


내가 승선한 지 한 달여가 지났을 때였을까.

짧았던 내 머리카락도 어느새 덥수룩해 보일 정도로 자라게 되었다.


당시에 나는 딱히 이발을 하고픈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당시의 선장님은 꼰대 of 꼰대로

매일 나뿐만이 아닌 사수에게도 늘 눈치를 주었다.


배라는 곳은 수직체계와 더불어 위계질서가 있는 곳이라 실습생이라는 위치로서의 나는 선장님의 불편함을 안 이상 이 머리를 계속 유지할 순 없었다.

그렇게 나는 이발을 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선원은 일반적으로 계약기간이 6개월에서 8개월이다.

그렇기에 머리카락을 장발로 기르는 것이 아니라면  어차피 한 번쯤은 이발을 해야만 한다.


상선에서 선원들이 이발을 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1. 상륙을 나가 현지 이발소에 다녀오는 것.

2. 배에 있는 이발기로 이발을 하는 것.


상륙을 나가는 것은 언제, 어디서 나간다는 보장이 없고 멋지게 이발하여도 결국엔 배로 돌아와야 하기에 대부분의 선원은 배에서 이발을 한다.


이발기는 거의 모든 배에 비치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깍새'라 불리는 배마다의 헤어 디자이너도 있다.

‘깍새'는 따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고 그나마 배에서

가장 실력이 나은 사람이 이발을 맡게 되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발이라는 행위는 쉬는 시간과 노동을 요하기에 부탁한 선원이 수고비로 음료나 맥주, 담배를 사주던가 아예 배에 정해진 '문화비'에서 달마다 급여의 형태로 주기도 한다.


배에서의 첫 이발이었던 나는 미얀마 선원에게 내 머리를 맡기게 되었다.


"어떻게 해줄까?"라는 그의 질문에

나는 "Myanmar No.1 style”로 해달라 말했다.

호기롭게 말한 나의 말과 달리 나는 그냥 해병대 머리가 되고 말았다.

마음에는 안 들었지만 오히려 꼰대 선장님의 기준에 부합하게 되었다.


가끔 어떤 사람들은 삭발이나 엄청 짧은 헤어스타일로 승선하기도 한다.

그러면 좋은 첫인상을 남길 수 있을뿐더러 머리카락을 감고 말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그러다 6개월에서 8개월이 지나 집에 갈 때쯤이면

충분히 머리가 자라 휴가 때 원하는 헤어스타일로 꾸밀 수도 있다.


2023년인 요새는 머리카락 가지고 트집 잡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분명 배는 개선되어 가고 있고 군대와 같은 딱딱한 문화가 많이 사라졌다.


한편으론,

애초에 군대가 아닌 직장에서 상사가 부하직원의 헤어스타일을 지적하는 것이 이상한 게 아닌가란 생각을 해본다.


생각보다 상식 이외의 문제가 많은 곳.

이곳이 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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