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면서 느낀 점이 있다.
해기사(항해사&기관사)는 결혼을 하게 되면 무조건 기러기 아빠가 된다.
수개월을 가족과 떨어져 배를 타야 하는 직업인지라 누구도 예외는 없다.
남편 그리고 아버지가 가정에 없더라도 화목하면 다행이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듯 보였다.
내가 실제로 들었던 충격적인 상황으로,
80세 가까이 승선 중이던 회사 최고령 기관장님께
“아빠가 그동안 해준 게 뭐가 있어"라든지
“빨리 배나 타러 갔으면 좋겠다"든지
한평생 가정을 이바지하기 위해 일을 한 아버지에게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을 하는 자식들이 있었다.
이 기관장님은 간혹 식사시간에
"나도 주식해요 4천만 원 정도.. 딸이 하고 싶다 해서" "5살 손자 생일 선물 사주게 50만 원만 달랍니다.. “
"제가 롯데 백화점 VIP 등급이 됐답니다."라고 말할 때면 듣는 나도 괜히 화가 나곤 했다.
다른 이혼하신 기관장님은 빚만 1억 5천을 지고 이혼하게 되었다 한다.
한 달에 세후 1400만 원을 집에 보내줘도 빛만 1억 5천이 남았다니 참 어이가 없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상급자의 절반은 이혼했거나 집에 돈만 갖다 주는 ATM기기 신세가 되었다.
원만하고 화목한 가정생활을 이어가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소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꼭 좋지만은 않다.
자식 그리고 아내와 일 년에 2~3개월만 함께할 수 있다는 게 그리 좋은 걸까?
가족과 희로애락을 함께하지 못하고 자식과 유대감을 쌓지 못한다.
아무리 배가 좋고 승선이 좋은 사람일지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보다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럽 선사는 3개월 계약, 3개월 휴가가 기본이다.
그러나, 한국은 보통 6개월~8개월 계약에 2-3개월 휴가를 기본으로 한다.
이것이 선진국, 해운강국이라 말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배라는 환경이, 우리나라의 제도가, 사회적 분위기가 모든 것이 배를 타지 말라고 부추긴다.
한평생 가정을 위해 배를 타고 돈을 벌었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면 얼마나 허망할까.
돈,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해기사가 포기하는 것에 비하면 분명 많은 액수는 아니다.
상급자들을 볼 때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상황이 많아서 나도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내가 계속 이 일을 하다 보면 저런 미래가 될 수도 있겠구나.
사람마다 저마다의 삶의 가치관은 다를 것이다.
나는 돈은 적게 벌 지언정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픈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