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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우리 할아버지

우리 할아버지

by 인상파

우리 할아버지, 존 버닝햄 글· 그림, 박상희 옮김, 비룡소


우리 할아버지


우: 우리 할아버지는요

리: 리듬악기도 척척 잘 치시고요

할: 할머니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시는 분이셨어요

아: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조용히 곁에 계셨지요

버: 버드나무에 물오른 봄날 세상을 떠나셨지요

지: 지금은 그 빈 의자가 자꾸 눈에 밟혀요


빈 의자에 남은 마음


<우리 할아버지>는 존 버닝햄이 아버지와 딸의 엇갈린 대화를 보고 구상한 그림책입니다. 처음 장면에서는 의자에 앉은 할아버지가 손녀를 반기지만, 마지막 장면에서는 초록색 빈 의자만 남아 있습니다. 할아버지와 손녀의 우정은 계절의 흐름 속에서 이어지고, 함께한 시간이 손녀에겐 길었지만, 할아버지에겐 짧은 생의 마지막이었음을 암시하지요. 할아버지의 죽음을 직접 드러내지 않고 빈 의자로 표현한 점이 오히려 더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할아버지와 손녀는 친구처럼 지냅니다. 글자 짙기의 차이로 표현된 두 사람의 대화는 겉보기엔 엉뚱해 보이지만, 마음이 통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씨앗을 돌보는 장면에서는 할아버지는 자리가 부족해 걱정하고, 손녀는 벌레들도 하늘나라에 가냐고 묻습니다. 서로를 씨앗과 벌레에 빗대어 걱정하는 것이지요. 할아버지가 손녀만 한 나이였던 이야기를 들려주면 손녀는 믿기지 않아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런 유년기를 지났기에 손녀의 마음을 잘 헤아립니다.


이야기에서 생략된 감정과 생각은 흑백 그림이 대신 전합니다. 손녀의 상상, 할아버지의 회상, 죽음에 가까워진 할아버지의 상태가 그림 속에 조용히 배어 있지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는 그림, 짧지만 따뜻한 문장들이 만나 생과 사, 만남과 이별을 자연스럽게 그려냅니다. 손녀는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마음에 품고 그 기억을 자양분 삼아 앞으로 나아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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