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핸드폰 액정에서 버젓이 영현엄마의 번호와 그가 걸어온 전화임을 보았으면서도 나는 그녀를 반갑게 부르지 못하고 마치 모르는 이의 전화를 받은 것처럼 대꾸했다. 연락을 하지 않은 기간 동안 서로 각자의 사정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전혀 가늠이 안되었던 탓이리라. 영현은 괜찮은 걸까, 영현의 엄마는, 그리고 영현의 엄마는 내 사정을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하준의 일까지도 알고 있을까.
상대 역시 그런 마음이었는지 회신이 빠르게 돌아오지 않았다. 서로가 보이지 않는 통화를 하는 중에도 뭉그적거리는 듯한 상대의 굼뜬 행동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어, 하준엄마. 나야...."
"어, 영현엄마. 웬일이야."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다시피 한 무심한 목소리와 대답에 스스로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영현의 엄마와는 무리 지어 놀 적에도 따로 시간을 내어 본다던가 통화를 하는 각별한 사이는 아니었다. 다 같이 있으면 어색하지 않고 재밌게 이야기할 수야 있었지만, 함께한 다른 일행 중 누군가가 화장실에 간다던가 약속장소에 등장한 시간이 엇갈려 둘만 있게 되는 상황에 처한다면 조금은 어색했던 그런 사이였으니까. 그렇기에 내 대답은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니, 무슨 일이 있어서 전화한 건 아니고. 그냥... 하준엄마랑 통화하고 싶어서."
메마르면서도 푸석한 듯한 영현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눈앞에 펼쳐진 까만 노트에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왼손으로는 핸드폰을 귀에 대고, 오른손으로는 노트를 매만지다 불쑥 내뱉었다.
"하준이가, 노트를 썼어."
두서없이 내뱉는 나의 말을 영현엄마는 말없이 계속 들어주었다. 호응이라고는 거의 없다시피 한 영현의 엄마와의 통화에 오히려 마음이 편해져 말은 술술 나왔다. 속에 있는 말과 마음을 탈탈 털어놓았더니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상대편의 저 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하지 않고 말한 지가 실로 오랜만인 듯했다. 말을 했다기보단 무언가를 뱉어냈다는 표현이 더욱 잘 맞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런 나의 분출을 말없이 받아준 영현의 엄마는 괜찮아?라는 짧은 안부를 건내고선 얕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꺼낸 첫 마디는 까만 노트를 주제로 두서없이 말을 쏟아낸 나로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영현이가 지난달에 퇴원했어."
영현의 소식은 아이들이 고등학교 3학년 2학기를 다니던 무렵, 잘 다니던 학교를 자퇴했다는 소식이 끝이었다. 우리 모임의 모든 아이들과 엄마들이 부러워했던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를 입학하고서 졸업학년이 다 되어 꼬박 3년을 다 채우기 직전이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어떤 대회에서 어떤 상을 받고, 어떤 학교를 입학하며, 어떤 점수를 받아와 우리를 계속해 놀라게 했던 영현이 이번엔 그 마지막 종착지라 할 수 있는 어떤 대학교를 갈까를 궁금해하던 때였다. 영현은 언제나 우리의 기대를 뛰어넘었었는데 그 결과가 자퇴라는 것으로 흘러가 다른 방면으로 이리 놀라게 할 줄은 몰랐었다. 그 이후로 영현의 엄마는 우리의 단톡방에서도, 또 다른 어디에서도 영현의 소식과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오지 않았다. 그런 영현의 엄마가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 별로 친하지도 않던 나에게 전화 걸어와 전한다는 이야기는 또 한 번 나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영현이가? 어디 아팠어? 그래서 자퇴했구나? 왜 말 안 했어?"
퇴원이라는 말에 자동스레 물음이 이어져나왔다. 어디 좋은 해외 대학이라도 가려나, 검정고시를 쳐서 정시에 집중하려 하는구나, 얼마나 대단한 대학에 가려고 그러나 생각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런 과거의 내가 부끄러워 한층 더 걱정되는 목소리로, 조금은 과장하듯 물었다.
"자랑할 거리도 아니고, 당시에는 부끄럽다고 생각해서. 그리고, 금방 괜찮아질 줄 알았어."
"뭐가 부끄러워. 아픈 게 어디 부끄러울 일이야? 지금은 좀 괜찮고? 영현엄마가 고생 많았겠다, 어디가 아팠는데?"
어느덧 진심으로 걱정되어 되묻는 나에게 영현의 엄마는 또 한 번 내 생각이 채 쫓아가지 못한 답변을 내놓았다.
"정신병동에 입원했었어, 영현이."
이번엔 무어라 답변을 할 수 없었다. 오버스러운 걱정도, 따뜻한 위로도, 어떤 말을 내놓아야 할지 전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영현의 엄마는 수화기 너머의 그런 나를 이해한다는 듯 나의 대답은 기다리지 않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고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증상이 나타났던 것 같아. 영현이도 공부를 잘했다지만 전국에 내로라하는 수재들이 모인 학교라 그런지 성적이 점점 뒤처졌거든.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그래도 공부하는 만큼 성적이 나왔는데 고등학교에서는 잘 안 됐나 봐. 처음엔 배가 아프다더라? 그것도 시험이 3일밖에 안 남았을 때. 큰일 났다 싶어서 얼른 차에 태워 내과에 갔더니 아무런 이상이 없었어. 이것 봐라, 꾀병 부리는구나 싶었지. 시험도 얼마 안 남은 마당에 정신 차리라 하고 그냥 지나갔더니 얼마 안 있어서 이번엔 또 머리가 아프대. 아주 깨질 듯이. 꾀병이라기에는 많이 아픈 것 같기도 해서 여기저기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별 이상이 없었어. MRI니 CT니 찍을 수 있는 건 몽땅 다 찍은 것 같아. 유명하다는 대학병원을 몇 군데나 다녔는지 몰라. 그 와중에 중간고사 망친 거며 수행평가 놓친 거, 학원 진도랑 과제는 어떻게 따라잡아야 되나 걱정했었어. 그래서 병원 대기시간 때 시간 아낀다고 문제지 싸들고 가서 풀고 했었는데, 참 지금 생각하면 나도..."
잠시간 영현의 엄마는 울컥하는 듯 말을 끊더니 "잠깐, 물 좀.."이라며 자리를 비웠다. 다시 나타나 한 두 차례 헛기침을 한 영현엄마는 앞서 이어하던 말머리를 조금 돌려 나를 향해 물었다.
"하준엄마, 우리 동네에 어떤 병원이 제일 많은 줄 알아?"
아이들이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마자 본격적으로 학군지에 가겠다며 이사를 한 영현이네였다. 영어, 수학, 국어 여러모로 두각을 나타낸 영현의 공부머리를 받아 줄 곳은 대한민국에 그곳 밖에 없었다. 최고의 학원들이 모여있다는 서울의 그 동네. 그곳에 가서 경쟁할 수 있는 머리를 가진 영현도, 집을 구할 수 있는 영현 아빠의 재력과 큰 일을 과감하게 밀어부치는 영현엄마의 추진력 그 모든 게 부러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 동네에 어떤 학원들이 있는 줄은 알지만, 어떤 병원들이 즐비한지는 전혀 정보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대화와도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나를 건너에 두고 영현의 엄마는 물 한잔으로 목소리가 한결 편해진 듯 말했다.
"정신과야. 소아정신과."
영현의 엄마가 왜 그런 질문을 던졌는지 이제 알겠다는 생각에 아차 싶었다. 영현의 엄마는 계속해 말했다.
"병원에 가서 이런저런 검사를 해도 뾰족한 수가 안 나왔는데, 의사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들이 있었어. 정신과에 데려가 보라고.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이 의사가 미쳤나, 싶었지. 제정신인가, 어디 멀쩡한 애를 정신과에 데려가라고 하나. 그런데 의사들이 다 똑같은 얘기를 해. 이건 마음의 병일 수 있으니 정신과에 가보라고. 뭐 대단한 병이 발견 되지를 않는데 애는 계속 아프니까 정말 어쩔 도리가 없구나 싶을때 쯤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라는 심정에 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어. 알고 봤더니 주변에 정신과를 다니는 애들이 꽤 되더라. 전부 쉬쉬하고 있었던 건지, 나만 몰랐던 건지. 학원 정보는 잘만 공유하면서 이런 정보는 왜 공유 안 해줬던 건지. 어쨌든 그제야 소아정신과를 찾아보는데 웬걸. 병원이 너무 많은 거야. 그리고 예약은 또 얼마나 힘들게. 그 많은 병원에 몇 달간 예약이 전부 찼었어. 거짓말 아니고 정말 꽉꽉. 겨우 빈자리 생긴 일정에 들어가서 첫 진료를 봤어."
그 후로 영현은 정신과의 진료를 받으며 조금 호전이 되었다고 영현의 엄마는 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영현의 상태가 좋아지는 시점에 고2로 진입하며 그에게 조금은 다른 증상이 찾아왔고, 고1때와는 마음가짐이 달랐던 영현, 아니 영현의 엄마는 지금 당장의 치료보다는 조금 더 학업에 집중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렇게 영현은 점점 죽어가게 되었다고 영현의 엄마는 말했다.
"하준엄마, 회귀물이라고 알아?"
어디로 튈지 모를 영현엄마와의 대화는 또다시 다른 곳으로 흘러가려 하고 있었다.
"회귀물?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환생해서 뭐 되고 막 그런 거 아냐? 드라마 같은 거? “
영현의 엄마는 처음으로 약간의 웃음을 내뱉는 듯했다.
"맞아. 딱 그 마음이었어. 영현이를 키우면서."
"영현이를 키우면서?"
그녀의 말을 반복해 묻는 내가 다시 재밌다는 듯 영현의 엄마는 좀 더 웃음 더해 말했다. 재밌어서 웃는 웃음이 아닌 씁쓸함과 비정함이 섞인 듯한 슬픈 웃음이었다.
"응. 왜 있잖아, 내가 예전엔 몰랐던 걸 지금은 알게 되어서 이 기억을 가지고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거라는. 마치 그런 기분이었어. 내가 이 공부를 열심히 했다면, 이 대학을 갔다면, 더 나은 삶을 살았을 거니까, 그러니까, 내가 낳은 영현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영현이를 위해, 이렇게 하면, 이것만 하면 되겠다, 확신이 있었고 그렇게 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