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고 있던 배려는 누굴 위한 것이었나?
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머리가 하얗고 이명만 있을 뿐,
'왜 내가 외도 피해?를 당해야 하나? 우리 가족은 큰 어려움이나 부족함 없이 서로를 위하며 매일매일 웃음이 넘치고 있었는데, 왜? 도대체 왜?'
밖으로 나와 천천히 걸으며 하나씩 하나씩 과거를 되짚어봤다.
전 와이프 F는 지난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회사 일이 많다는 이유로 매일같이 새벽에 퇴근하기도 하고
때로는 밤을 새우며 일을 하면서 주말 출근도 수시로 했었다. 그런 F를 보면서 안쓰러운 마음에 퇴근 후에는
내가 육아를 도맡아 하면서 F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하였다. 나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성향이라,
챙기고 놀아주는 것들에 대한 부담이 적었고 아이들도 엄마보다는 아빠를 더 좋아하고 따르고 있어서
이러한 상황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다만, 빨리 F의 회사 일이 줄어들어서 네 식구가 다 같이 시간 보내길 바라고 있었다.
그렇게 회사일로 바쁘게 지내던 F는 어느 때부터 야근뿐 아니라, 회식자리가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술 마시러 가서 연락이 두절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였고, 그때마다 '차에서 잠들었다.', '회식 후 일하러 사무실에 왔다가 잠들었다.' 등의 이유를 얘기했었다.
바보 같았다.
F가 말한 그대로를 믿으며 '잘 먹지도 못 하는 술을 억지로 먹느라 힘들지?'라는 위로의 말을 전했었고 늦은 시간까지 회식하는 F의 회사 사람들을 원망하기도 했었다.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 아이스링크장 등 놀러 갈 때면 때때로, 아이들이 '엄마도 같이 왔으면 좋겠다.'라는 얘기를 했고 나는 그때마다 가슴은 아프지만, 바쁜 엄마를 애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노력했었다.
아빠와 즐겁게 노는 아이들 모습에 행복을 느끼면서, 엄마 없이 생활하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고 점점 적응해 가는 모습에는 슬픔을 느끼기도 했었다.
'엄마도 바쁜 시기가 지나면 꼭 같이 오자', '오늘은 아빠하고 신나게 놀아보자', '......'
그 시기에 F도 늦은 퇴근에 지쳐가는지, 한 번씩 울면서 힘들다는 얘기를 했었고,
그때마다 나는 '조금만 더 버텨보자', '괜찮아지겠지'라는 말들로 F를 위로하며 힘든 상황을 함께
이겨내기 위해 노력했다. 때로는 '내가 돈을 더 많이 벌었으면, 힘들어하지 말고 일을 그만둬'라고 말하며
잠시 쉴 수 있게 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해결해주지 못하는 미안함에
눈물이 흐르기도 했었다.
근데, 이 모든 게 다 거짓이었다니.
일이 많아 야근하고, 먹기 싫은 술을 억지로 먹은 게 아니고,
D와 더러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날 속인 것이라니.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 그동안 바보같이 불륜을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준 꼴이 돼버렸구나,
배신감에 돌아버릴 거 같았다.
'우리 애들을 두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나한테 어떻게 이럴수가 있지?', '내가 뭘 잘 못했길래, 나한테 이러지?'
피가 머리로 솟구치면서 머리와 눈이 터질 거 같은 고통이 지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