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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Jul 07. 2024

나를 구출할 사람은 나뿐이라고?

내 손 잡아줄래?

"내가 너의 손을 잡고 있어. 너의 첫 번째 반응은 뭐야?"


목요일 새벽, 뜬금없는 질문이 내 생각 속으로 들어왔다. 어디에서 온 질문인지도 모르겠고, 왜 나에게 온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때 내가 비몽사몽 꿈을 꾸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질문은 하루종일 나를 괴롭혔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 무엇인가 나의 삶에서 큰 전화점의 계기가 될 듯했다. 왠지 내가 이 질문에 집중하는 이유가 있을 듯했다. 그래서 꼭 답을 찾고 싶었다.


객관식 답변도 함께 이어졌다.

1. 악수를 하듯 손을 흔든다.

2. 어색해서 바로 손을 뺀다.

3. 손을 잡고 같이 걷는다.

4. 절대 손을 놓지 않는다.

5. 손을 당겨 상대를 내쪽으로 오게 한다.

6. 상대방이 나의 손을 당겨 나를 그쪽으로 당겨주길 바란다.

7. 등등


손을 잡는다는 건, 악수의 의미일 수도 있고, 계약과 같은 약속의 의미일 수도 있다. 또한 남녀사이에서는 친밀한 관계의 의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들어온 질문은 이러한 것과는 다른 어떠한 비유와 상징의 표현이었다. 구체적인 상황이 제시되지 않은 다분히 추상적인, 그래서 어쩌면 내겐 철학적인 질문일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 책 속의 문장과 손을 잡는다면? 나의 반응은? 이런 식이었다.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들과의 손잡고 있는 상태를 상상해 봤다. 나의 가족, 나의 친구, 그냥 지인들까지.


손을 잡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상대방을 안고 폴짝폴짝 뛰고 싶은 반가운 관계가 있었고,

손을 잡고 있는 것만으로 상대방의 눈에서 모든 것이 읽혀지는 든든한 관계가 있었고,

제발~이라는 마음이 들정도로 얼른 손을 놓고 싶은 어색한 관계가 있었고,

내 마음이 들킬까봐 조마조마하는 설레는 관계가 있었고,

바로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관계가 있었고,

이제 헤어지는 거구나를 손의 감각으로 알 수 있는 관계도 있었다.


근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두 분의 코치에게도 물어봤다. (두 분의 코치 = 어제의 글 참조)

대답은 찾지 못했다.





그러다 이전의 일이 떠올랐다.


다니엘과의 영어수업시간이었다. 그가 요구하는 연기연습을 나는 쑥스러움에 또다시 거부했다. 마음에서는 해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목에서 도저히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황. 다니엘은 내 안의 내가 말하기 싫어서 숨어 있다고 했다.


내 머릿속으로 내 안의 나를 그려보니, 알과 같은 둥그런 곳에 웅크리고 앉아,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숨은 것도 아니었다. 용기가 없어서 못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누군가 와서 알을 깨고, 손을 내밀어 자신을 끌어당겨 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나의 이야기에 다니엘은 다음과 같은 말을 이어갔다.



You can come out by yourself because the reality is that you can cope.

You do know how to do everything. You can survive. You will be fine. and if you come out by yourself, you will find your connection. You won't be alone. Do you want to think about it?


당신은 스스로 나올 수 있어요. 왜냐하면 현실은 당신이 대처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어떻게 할지 알아요. 당신은 살아남을 수 있어요. 당신은 괜찮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혼자 나오면 당신은 당신의 연결고리를 찾을 거예요. 당신은 혼자가 아닐 거예요. 이거에 대해 생각해 볼래요?


No one is coming to rescue us, not me, nobody.

And you don't need them, too.


아무도 우리를 구하러 오지 않아요, 저도 아니고, 아무도요.

그리고 당신도 그들이 필요하지 않아요.


In fact, they can't, even if they try their hardest, they can not.

It is always up to you to come out; always your choice.  There is nothing they can do.


사실, 그들이 할 수 없어요, 그들이 최선을 다하더라도 할 수 없어요. 밖으로 나오는 것은 항상 당신에게 달려 있어요. 항상 당신의 선택입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If you decide to come out BECAUSE OF THEM, they will disappoint you because there is no such thing as a perfect person. They will absolutely let you down.

And then you will say they hurt me. Then you go back into the shell and hope for another person.


만약 당신이 그들 때문에 밖으로 나오기로 결정했다면, 그들은 당신을 실망시킬 거예요. 그만큼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들은 당신을 분명히 실망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당신은 그들이 나에게 상처를 줬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당신은 알속으로 돌아가서 또 다른 사람을 원할 거예요.


And that is never their job anyway.

그리고 어쨌든 그것은 그들의 일이 아닙니다.



그럼 이제 나는 혼자네.

이 세상에 나 홀로 버려진 기분이었다.

어떻게 나가지? 내가 할 수 있을까?

그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2주가 지났다.

나는 그동안의 여정을 돌아보다, 질문의 답을 찾았다.


손을 잡고 있는다는 건, 나에게는 편안하고 안정된 환경이라는 것이며,

손을 잡고 걷는다는 것은, 나와 함께 해줄 이가 있다는 것이며,

손을 잡고 당기는 건, 누군가를 구해주거나, 내가 구해진다는 것이며,

손을 계속 잡고 있다는 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또 깨달은 것은, '나'를 찾고 있는 이 여정 속에서,


나에게 가장 필요한 도움의 손길은

누군가의 손이 아닌,

내가 나에게 건네는 손길이라는 것이다.


내가 나의 손을 잡고 있을 때, 내가 가장 편하고 안정된다는 것이며,

내가 나의 손을 잡고 걸을 때, 내가 나를 가장 잘 이끌고 간다는 것이며,

내가 나의 손을 당길 때, 내가 나를 가장 먼저 구할 수 있다는 것이며,

내가 나의 손을 잡고 있다는 건, 내가 나를 계속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내가 나의 손을 잡고 있다는 건, 나의 감정을 가장 먼저, 모두 느낀다는 것이기도 하다. 반가움, 설렘, 슬픔, 어색함, 긴장감, 자신감... 그리고, 내가 그 감정들을 객관식의 답을 고르듯,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 안의 나'에게 물어보고 싶다.

어쩌면 내 안의 내가 '나'에게 물어볼지도 모르겠다.


"손 잡아 줄래?"


"In life, It's not where you go. It's who you travel with."

"Peanuts" 만화의 창작자인 찰스 슐츠(Charles Schulz)가 스누피를 통해 표현한 메시지 중 하나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목적지보다는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 즉 동반자와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나와 인생을 함께할 동반자가 다른 어떤 이가 아니라, '내 안의 나'라면? 나와 하나의 마음으로 서로의 손을 잡고 간다면, 그 충만함은 어떤 행복보다 클 듯하고 외롭지 않을 것 같다.


"내 말 듣고 있니? 나랑 손잡고 같이, 다른 연결고리를 찾으러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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