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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K May 10. 2024

출발, 두 번째 여행

Sydney

기약 없던 아들과 두 번째 여행이 시작되었다.


유난히 분주한 아침이다. 보통은 출발 전날까지는 짐을 싸놓는데 이번에는 일이 많아서 당일에도 가방을 꾸리느라 바기 때문이다. 대충 욱여넣은 옷가지들이 담긴 캐리어를 들고 서둘러 집을 나왔다.


"핸드크림!"


왜 꼭 깜박한 건 집을 나온 지 한참이 지나서야 생각나는 건지.. 그러고 보니 컵라면은 야무지게 챙겼는데 젓가락을 놓고 왔다. 그나마 중요한 여권은 가방 속에 잘 챙겨 왔단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무인수화물대로 가서 짐을 부치고 면세구역으로 기까지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지난 일본여행에서 첫 모바일체크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긴 줄을 서는 것에 불만이 가득했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그 효과를 톡톡히 봤다.


서두를게 전혀 없지만 왜 꼭 공항에만 오면 무언가에 쫓기듯 빨리빨리를 외치는지.. 게이트 번호가 쭉 나열된 면세구역으로 들어오고 나서야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한 살 더 먹은 아들은 작년과 달리 제법 의젓한 모습으로 바쁜 엄마 옆을 묵묵히 따라왔다. 엄마의 얼굴에 미소를 되찾은 것을 확인한 꼬마는 사탕을 깜박했다며 사러 가자고 했다. 여전히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녀석이다. 갖고 있던 선불카드로 사탕과 과자등 알뜰하게 구입하고 녀석이 가고 싶어 하는 놀이공간으로 향했다.


한번 와봤다고 더욱 적극적으로 노는 아들 주위로 꼬마친구들이 몰려들었다. 그래, 긴 시간 비행해야 하니 여기서 갖고 있는 체력을 다 쓰거라..


공항은 여전히 나만 지루한 곳이구나!


실컷 에너지를 소모하고 목이 마른 녀석과 가까운 곳에서 시원한 음료를 샀다.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니.. 놀라운 변화다.



우리의 목적지는 호주, 시드니!


항공사 마일리지에 없던 유효기간이 생기면서 아버지께서 다 쓰지 못하는 마일리지를 선뜻 내어주셨다. 감사하게도 그 덕분에 우리는 1년 만에 또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디로 갈지 정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했다. 유럽이나 미국보다 가깝지만 치안이 좋고 교통이 편리하고 볼거리도 많은.. '호주'로 마음이 기울던 찰나, 아들이 '오페라하우스'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지인들과 호주에서 자동차여행을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아들이 훌쩍 커서 함께 할 수 있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득 안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새 커버린 너


기내식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알찬 구성의 키즈밀을 받고 세상 행복해하던 녀석이 이제는 자연스레 식판을 받고 맛있게 먹는다. 쩍 커버린 녀석을 보고 있자니 년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기나긴 비행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익숙하지 않은 곳이 주는 신비로움이 참으로 좋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이국적인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알 수 없는 외국어가 사방팔방 들려온다. 아! 도착장으로 나오면 가장 먼저 반겨주는 커피와 토스트향이 진심으로 반가웠다.


아침 일찍 도착한 덕분에 오늘 하루를 온전히 쓸 수 있다. 하루 중 가장 설레는 순간이 시작됐다. 


첫 번째 관문인 시내까지 가기 위해 교통카드를 구입하고 플랫폼으로 향했다. 익숙한 방송과 함께 지하철이 들어왔다. 2층 기차를 처음 본 아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지하철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낯선 풍경을 감상했다. 경한 도시의 모습이 보이자 비로소 여행 온 것을 실감했다. 아침시간이지만 크게 붐비지 않고 한가 덕분에 편안하게 경치를 구경할 수 있었다. 


문제는 도착하자마자 찾아왔다. 나가는 출구가 많아서 헷갈리기 시작했다. 양손 가득 짐덩어리가 있고 아들까지 챙기다 보니 정신이 없었다. 별수 없이 구글맵을 켜고 호텔까지 걸어갔다. 다행히 지하철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호텔원이 체크인을 도와준 뒤 실이 준비되면 문자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세상 참 편리해졌구나.. 가볍게 인사한 뒤 밖으로 나왔다.


호주에 도착하면서 마주친 사람들은 한결같이 친절했다. 함께 다니는 아들덕을 톡톡히 보는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은 아들에게 잘생겼다고 칭찬해 주었다.


"엄마, 핸섬이 무슨 뜻이에요?"


유난히 크게 들려온 단어를 알아들은 녀석이 물었다.


"네가 잘생겼다고 말한 거야."


잘생겼다는 말에 녀석의 입꼬리가 수줍은 듯 올라갔다. 녀석도 칭찬엔 약한가 보다.


미처 캐리어에 정리해서 넣지 못한 커다란 짐보따리를 메고 오늘의 첫 일정을 시작해보려 한다. 아들에게 어디 먼저 가고 싶냐고 물으니 단연코 '오페라하우스'라고 답했다.


좋아, 가보자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오페라하우스로 향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창밖으로 금세 영롱한 모습을 나타냈다. 새하얀 오렌지껍질이 햇빛을 머금으며 반짝이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오페라하우스를 발견한 아들은 탄성을 질렀다. 얼른 내려서 걸어가 본다.

2층 기차


계절은 우리나라와 정 반대이지만 간절기에는 기온이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다. 큰 오산이다. 이곳은 아직도 한여름의 날씨를 자랑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따가운 햇살이 내리 꽂혔다. 어쩌면 긴팔 옷을 입은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어도 피부는 보호할 수 있을 테니..


예상치 못했던 날씨에 녀석 힘들어했지만 보고 싶은 오페라하우스가 눈앞에 있어서인지 생각보다 잘 걸어줬다. 


호기심의 힘이 이렇게 큰 것이었구나..


멀리서 봤던 하얀색 건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우아한 곡선이 아름다움을 뽐내며 웅장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다시 봐도 멋지다.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며 주변을 걷다가 더위에 슬슬 지쳐가는 아들과 그늘에 잠시 앉아서 쉬기로 했다.


가만히 앉아 있으니 솔솔 불어오는 바람덕에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기분이 살아난 꼬마는 계단을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하며 에너지를 발산하는 중이다. 밤새 비행기를 타고 오자마자 쉬지도 못해서 피곤할 텐데 지치지도 않는 모양이다.

새파란 하늘 도화지에 그려진 풍경


오페라하우스도 보고 하버브리지도 보면서 모처럼 한가롭게 이곳을 즐겼다. 더 이상 빡빡한 스케줄 속에 스치듯 랜드마크를 카메라에 담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느라 바쁘지 않았다. 그저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잠시 산책 나온 것 마냥 걸어 다녔다.


이 느낌도 나쁘지 않은데? 어쩌면 두 번째 방문이라는 사실이 주는 느긋함일지도 모르겠다. 이곳이 처음이었다면 오늘 오후엔 '블루마운틴'까지 올라갔을지도.. 하하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아들에게 먹고 싶은 메뉴를 물었다.


"햄버거요!"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평소에 먹지 못하는 음식이라 더욱 간절할 것이다. 주변에 햄버거 가게를 검색하 가까운 곳에서 위치가 잡혔다. 물론 그 옆에는 더 맛있는 식당이 줄을 지어 있었다. 아쉽지만 포기하고 아들과 함께 햄버거를 먹으러 갔다.


실내로 들어가니 공기가 이렇게 쾌적하고 시원했나.. 상대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더운 곳에서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둘 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배도 채우고 더위도 식히며 잠시 휴식시간을 갖고 있을 때 객실이 준비되었다는 메시지가 왔다. 드디어 무거운 짐가방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피곤함이 몰려온 우린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호텔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여행 중에 호텔에 가서 쉬는 게 이렇게 좋아질 줄이야..


작년과 달리 마음이 편안한 지금..

아들과의 여행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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