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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라요 May 15. 2024

내 아이들은 상위 5%입니다

나의 딸은 올해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이다. 나는 내 아이들이 상위 5%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우리 아이들이 상위 5% 일 것이라 믿는 부분은 '엄마인 나와의 유대관계와 엄마인 나를 향한 맹목적인 다정함'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기까지는 아이들이 타고난 선천적인 성격과 나의 육아관이 큰 역할을 하였다.


내가 친정엄마와의 관계가 악화돼 고성이 오가며 서로의 탓을 할 때면 엄마는 내게 몇 번이고 말했다. "너는 너 같은 딸을 만나서 마음고생을 해봐야 해. 지온이가 커서 꼭 너처럼 바락바락 대들며 똑같이 할 거야! 그때 가서 후회하겠지? 아 내가 엄마에게 이렇게 힘들게 했구나. 그때 가서 후회해도 소용없어! 넌 꼭 당해봐야 해"


당시에는 자식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엄마의 말과 자식으로서 엄마를 이해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많이 혼란스러웠다. 엄마에게 화를 내며 싸우면서도 "저 못된 년"이라는 말을 들으면 겉으로는 부정하였으나 속으로는 난 정말 못된 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딸도 나이 먹고 내게 저렇게 눈을 치켜뜨고 이건 아니라면서 소리를 지를까? 상상했다.


엄마가 자신과 의견이 다른 나에게 "넌 꼭 나를 이겨먹어야겠지?" 하며 너도 꼭 네 딸에게 당해보란 저주에 가까운 말을 퍼부을 때면 정말 그럴까? 하며 미래의 나를 의심하던 것과 다르게 지금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엄마 지온이는 절대, 절대로 나한테 안 그럴걸? 내가 장담할 있어" 여기까지 왔을 때는 이미 나도 감정이 상해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눈을 살짝 찡그리고 눈썹을 추켜올린 상태로 말한다. 이 역시 자신에게 말대답을 한다고 생각하는 엄마는 저 못된 년이라며 화를 낸다.


기간이 얼마가 되었건 서로의 앙금이 조금 가라앉는 즈음 누가 사과했는지, 누가 물러났는지도 모르게 유야무야 다시 화해하고 이야기를 이어나가면 엄마와 딸의 관계는 이렇듯 싸우고 화해하고의 반복이라고, 딸과 엄마는 싸워도 다 칼로 물 베기란 식으로 엄마는 말한다. 나는 보통의 모녀 관계가 이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지만 더 이상 논쟁거리를 만들고 싶지 않은 생각에 입을 닫는다.


나는 아이들을 기를 때 엄마와 반대로 길렀다. 정말 창피하지만 내게 육아의 지침은 "엄마와 반대로 하기"이다. 첫째. 나는 아이들에게 큰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훈육을 할 때 가장 주요하게 보는 부분은 '잘못의 고의성'이다. 훈육을 할 상황이 도래하면 아이에게 묻는다. "네가 일을 했을 엄마한테 혼날 것을 예상했어?" 아이가 혼날 것을 예상했으면서도 진행한 일은 가차 없이 혼을 낸다. 반면 혼날 것이라 예상하지 못한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혼내지 않는다. 아주 사소하게 실수로 핸드폰을 떨어뜨려 액정이 깨졌다거나의 말이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몇천 원가량의 돈을 길에서 잃어버린 적이 있다. 엄마는 불같이 화를 냈으며 당장 돈을 찾아오라 했다. 울면서 길에 나가 그 돈을 찾기 위해 횡단보도 앞을 서성였으나 돈을 찾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이 돈을 찾지 못하면 엄마에게 혼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에 잔뜩 겁에 질린 채로.


또 찬장의 유리컵을 집다가 떨어뜨려 깨뜨린 적이 있었다. 혼이 날까 봐 덜덜 떨며 거실에 있던 엄마를 쳐다보았는데 엄마가 내게 화를 내지 않았다. 언젠가는 똑같이 컵을 깨뜨려도 화를 냈는데 그날은 화를 내지 않았다. 엄마의 심경의 변화가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사건으로 어린 나는 때론 포용이 일방적인 훈육보다 더 크게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도 아이들에게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른 적이 있었다. 첫째가 6살쯤이었을 때 남편은 이러다가 이웃집에서 경찰에 신고 들어가겠다며 제발 조용히 하라 할 정도였었다. 남편은 새벽일을 하는 데다 부성애가 많이 모자랐던 사람이라 아이들의 기저귀를 갈아 준 적이 다섯 손가락에 꼽았으니 매일 코피를 흘리면서 아이 둘을 길렀다. 체력이 약해 둘을 기르느라 늘 진이 빠져있었기에 내 감정을 돌 볼 여력이 없었고 그로 인해 아이들에게 늘 화를 냈다. 나는 나의 감정을 다루는데 미숙한 엄마였고 육아로 소진된 체력은 나를 감정의 불길에 휩싸이게 했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왜 이렇게 까지 아이들에게 윽박을 지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지금 힘들구나'생각이 들자마자 별 것 아닌 일로 엄마에게 혼나는 내 아이들이 불쌍해졌다. 남편에게 힘이 들었던 부분도 나보다 약한 아이들에게 풀고 있었다.


정확히 그날 이후 나의 감정의 불길에 아이들을 태우지 않기로 다짐했다. 나는 내가 예민하게 굴던 많은 부분을 내려놨다. 아이들과 나를 상황에서 분리함으로써 아이들에게 덜 집착하고 나를 더 돌보았다. 그리고 이것이 아이들과 나의 관계 개선에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둘째. 아침에 눈을 뜨면 서로 안아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외출 후 돌아올 때는 어떤 일을 하고 있든지 상관없이 즉시 멈추고 현관으로 달려 나가 안아준다(내가 외출했다가 돌아와도 아이들이 달려 나와준다). 하루의 마지막은 서로의 눈을 보며 "사. 랑. 해. 요"라는 동작을 하고 자기 전에는 반드시 뽀뽀를 한다.


두 번째는 아이들이 내게 먼저 시작해서 나도 동참을 한 경우인데 나는 아침잠이 많아 아이들보다 늦게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휴일에도 아이들은 먼저 일어나서 놀고 있다가 내가 깨어날 즈음 안방으로 온다. 그럼 나는 졸린 눈을 비비며 안아달라는 제스처로 양팔을 활짝 벌린다. 아이들은 기꺼이 침대로 뛰어 들어와 나를 꼭 안아준다. 이렇게 매일 아침 최소 3분을 뒹굴거린다. 매일 안고 매일 뽀뽀하고 매일 애정을 표현하기. 전화를 끊을 때마다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딸의 고백에 부끄럽다가도 엄마인 내가 더 표현을 많이 해야지 싶어 반성한다.

            

셋째. 아이들의 생각과 선택을 존중하고 자존감을 높여준다. 나는 자존감은 철저하게 부모로부터 기인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내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고기도 뜯어본 사람이 먹을 줄 안다고 사랑도 받아 본 사람이 줄 수 있다 생각해 딸아이를 늘 공주라고 불렀다. 자식은 무시해야 한다고 말하는 엄마 밑에서 자라 내 자존감은 이유 없이 바닥이었다. 내가 형편없는 사람이 아님을 머리로는 인정하지만 자존감을 깎아먹는 엄마의 태도에 나는 최근까지도 스스로를 의심해야 했다.


지금의 나는 내가 그렇게 형편없고 모자란 사람이 아님을 자명히 알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확신이 든 것에는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이 주효했다. 그저 끄적인 글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시고 애정 어린 댓글을 남겨주셨다.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다수의 관심과 인정이었다. 구독자님들은 늘 나를 응원해 주셨으며 과분한 사랑에 구독자수 급증과 브런치 메인, 포털사이트에 오르게 되었다. 나는 39살이 되어서야 타인의 인정으로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었으나 내 아이의 자존감은 나로부터 발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어느 날은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잘못을 하는 날이 있다. 내가 아이들을 받아 준 만큼 아이들도 나의 실수를 받아준다. 우리는 서로가 한 잘못에 대한 인정이 빠르고 사과함에 있어 주저함이 없다.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는 우리 집에서 밥 먹는 횟수보다 훨씬 자주 하는 말이다. 내가 실수를 한 날에 아이들에게 사과를 하면 아이들은 웃으며 "괜찮아요 엄마.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잖아요"라고 말해준다.


내가 아이들이 실수할 때마다 한 말을 그대로 돌려주는 다정한 아이들이 있어 나는 늘 사랑받는 엄마가 된다. 그리고 그런 내 자식들이 '다정함 상위 5%의 아이'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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