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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부쿠마 Dec 20. 2023

5. 차비마저 없을 땐 걸으면 된다

지나면 추억이 된다

나는 걷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차비가 없어 상당한 거리를 출근하기 위해 걷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때는 2014년 연초에 있었던 이야기다.


이전 글에 등장한 J형과 전팀장을 떠나 처음 위례신도시를 개발하는 현장에 투입이 되었을 때였다.

후술 하기 전 이때의 난 동탄에 잠시 거처를 두고 있었다. 단기 임대였고 기간이 채 한 달이 안 남았던 시점이었기에 지금의 위례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돈이라고는 지갑에 만 원짜리 지폐 한 장과 후불교통카드 한 장이 전부였는데 어느 날 이 모든 게 들어있던 지갑을 잃어버리고 만다.

퇴근길 버스 안에서 잠시 흘리고서는 흘렸다는 걸 알아채자마자 바로 다시 버스로 뛰어갔지만 누군가 주워서 사라진 후였다. 이날 이후 난 품에서 절대 지갑을 떨어뜨려 놓지 않는다.


갑자기 출근길이 막혀버렸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통신요금미납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의 연락을 취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콜렉트콜로 J형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었다.


웃긴 상황은 그때 J형 옆에서 나와 함께 전팀장을 떠난 사람들이 J형이 나를 챙겨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이간질을 했었더랬다. 그래서 도움을 요청하는 내 연락을 자연스럽게 그만두고 떠나기 위한 연락으로 생각했었다고 한다.


하루아침에 모두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인생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도 들었으며, 무언가 다른 일을 찾기에는 수단이 없다고 느껴 삶을 포기하고 영원히 잠들기를 희망하게 되어 동탄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 올라 바깥을 내다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삶을 여기서 포기하기에 너무 억울하다. 선택의 잘못은 있지만 나라는 사람이 잘못된 건 아니지 않은가."


지금에 와서는 그때 정신적인 면에서 처음으로 성장을 이루었다고 보고 있다. 지갑을 잃어버리고 3일째 되던 날의 일이다.


그리고 J형 옆에서 이간질하던 다른 사람에게 전화가 왔다.

"야 네가 정말 일할 생각이 있고 함께 할 생각이 있다면 길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돈이라도 빌리거나 훔치거나 무임승차를 하건 그렇게라도 왔어야 하는 거 아니냐?"

저 말을 듣고 제일 먼저 한 생각은

"저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 겪는 상황이 아니라고 쉽게 생각하는구나. 그렇다면 진짜 독해져 봐야겠다."


그리고 그날 오후부터 동탄에서 서울로 올라갈 계획을 세웠다. 우선 근처의 상가들 근처를 돌아다니다 실외에서도 와이파이가 되는 곳을 찾아서 먹통이었던 핸드폰 인터넷망에 접속을 하여 지도 어플을 켰다. 여기서 동탄에서 위례신도시까지 올라가는 길을 모두 캡처해서 사진첩에 저장을 한 후 바로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그 후 대략적인 시간을 생각하여 오후 11시 30분 동탄에서 위례로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출근 후 영업을 해야 했기에 겉은 트레이닝복으로 입었으나 가방 안에 정장과 구두를 챙겨서 갔으며 남은 짐은 추후 다시 챙겨서 올라왔다.


하필 추운 겨울이었고 눈이 아닌 비가 오고 있었다 새벽이라 춥기도 상당히 추웠는데 지금이야 도보로 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나 그때는 어플의 서비스가 차량이용과 대중교통이용에 대한 것 밖에 없었기에 절반은 인도 절반은 차도로 걸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다. 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용인시 기흥구 흥덕동 주변을 지날 때였는데 육교를 건너기 위해 다가가다가 육교용 엘리베이터가 그 새벽에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며 문이 열리고 닫히기를 계속 반복하고 있었던 모습이다. 주변에 사람은 한 명도 없고 추운데 바람은 불고 무서움을 뛰어넘어 정신이 아득해져 가는 기분마저 들었다.


무서운 그 기분을 참아가며 우여곡절 끝에 육교를 건너가고 흥덕지구를 지나 다시 길을 올라가는데 이번엔 검은색 세단이 뒤에서 천천히 따라오고 있음을 느꼈다. '착각이려나?' 생각하고 계속 걸어 나가는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꽤 긴 거리를 따라왔었다. 이 마저도 온갖 상상이 더해져 공포감이 엄습해 왔고 일부러 중간에 근처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 잠시 몸을 숨기기도 했었다.


차도를 걸어갈 때는 정말이지 혼자 소리를 지르며 걸어갔는데 대한민국은 바쁜 나라가 맞다. 덤프트럭이 시종일관 옆으로 달리는데 그 소리와 속도와 크기 그리고 새벽이기에 언제 졸아서 부딪힐지 모르겠다는 생존본능으로 나도 모르게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심리적인 공포가 떠난 후 겨우내 분당으로 진입했을 때 긴장이 조금 풀려서 극도의 피로감이 찾아왔었다. 가장 큰 고비는 오리역을 지날 때였는데 지하철역이 보이니 슬쩍 타고 올라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장장 6시간에 걸쳐 왔으나 앞으로 얼마나 더 걸어야 할지 감이 안 잡혔기에 더욱 피로하게 느껴졌다. 특히 발에서 비명을 지르는 기분이었기에 그 유혹은 더욱 크게 느껴졌다. 하지만 여기서 내 기준을 벗어나면 그 사람들이 한 말에 반박하는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는 고집으로 꾹 참고 다시 걸어 올라갔다. 중간에 잠시 몸을 숨기기 위해 쉬었던 순간을 제외하고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걸어 올라간 셈인데 복정역을 지나 위례신도시가 보였을 때 눈물이 날 줄 알았으나 오히려 차분해지고 독기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걸 느꼈다.


심지어 모두가 출근하기 전 도착하여 옷을 갈아입고 한 번에 몰려오는 피로감에 잠시 뻗어 있었다.

J형은 잠시 뒤 출근하여 아무렇지 않게

"왔냐?"

이 한마디만 하고 갔었지만 이후 따로 얘기를 하며 난 이렇게 걸어 올라왔다. 난 도와줄 거라 믿었다며 이야기를 했고 이때 J형 옆의 사람들이 이간질을 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국 이후 그들은 서로 이간질을 하다가 전부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아가게 되었다.


이때의 J형은 자신이 너무 사람을 믿었다고 자책했으나 결국 우리는 사람을 믿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인데 믿는 대신 상황을 잘 파악하는 힘을 기르자 이야기를 훗날 하게 되었다.


이때 이렇게 걷고 난 후 내 거처는 성남시 수정구 산성동에 위치한 아버지의 치킨공장이 있었는데 그 공장에서 대략 3개월 정도 기거를 했었다. 하지만 역시나 차비가 없어 그 3개월 동안 걸어서 출퇴근을 1시간에 걸쳐했었다. 물론 9시간 정도 걸어서 출근하는 것에 비하면 별거 아니었지만 말이다.


지금도 이때 이야기를 J형과 만나서 하면

"얘는 그때 얼마나 억울했으면 몇 년이 지났는데도 계속한다? 미안하다니까!"

이렇게 얘기를 웃으며 할 수 있는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때를 생각한다면 포기하지 않는다는 선택을 한 나 자신에게 잘했다며 그때의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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