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골? 시골? 서울?
어제저녁은 서울로 퇴근했다. 건강검진 스케줄을 금요일로 잡고 주말 스케줄까지 빼곡하게 채워놨다. 가끔 지방에서 서울에 큰 병원 가는 일정이 생기면, 간 김에 이런저런 일을 처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그건 내 이야기가 됐다.
마지막으로 대장내시경을 한 게 결혼식 이전이라 내심 걱정이 컸다. 홍길동이 내게 남긴 게 이혼이 아니라 암세포일까 봐 불안했다. 이만큼 마음고생을 하면 분명 정신적인 대미지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흔적이 남으리라 확신했다.
전날 저녁 6시 이전에 마지막 식사를 마치라는 안내에 기차에서 빵쪼가리를 한 입 크게 물었다. 타고나길 위장이 안 좋아서 언제나 내시경을 앞두면 죄지은 마음이 된다. ‘이 빵이 나중에 내 발목을 잡으려나.’
느끼하고 역한 맛의 대장내시경 약을 2리터나 마시고 밤새 잠을 못 잤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 건강검진 끝나고 약속이 두 개나 있는데 하나를 포기하고 싶을 정도다. 아침 일찍 검진 병원에 가야 해서 지하철을 탔다. 오랜만에 출근길 지옥철에 몸을 맡기니 새삼 서울의 삶을 어떻게 버텨왔는지 신기했다. 사람은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동물이라더니 예전엔 아무렇지 않았던 지옥철이 고통스럽다. 그런데 내가 탄 열차의 문이 한참 동안 계속 열려있더니 곧 안내방송이 나온다. ‘우리 열차는 현재 OOO역의 시위로 인해 출발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순간 술렁이더니 이내 하나둘씩 열차에서 내렸다. 한 명이 내리기 시작하니 모두가 우르르 따라 내렸다. 열차가 사람들을 끊임없이 게워내는데 나도 휩쓸려 내렸다. 한 정거장도 이동하지 못했는데 이런 경우에는 지하철 요금 환불이 되나 생각을 하며 일단 출구밖으로 나왔더니 가관이다. 이미 버스를 타려는 사람들로 도로 위까지 인산인해다. 당연히 카카오택시는 잡히지도 않는다. 일단 아무 버스를 잡아타고 가면서 계속 택시를 불렀다. 역시나 안 잡힌다. 검진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급해졌다. 버스가 지하철 역 한 개를 지날 때마다 사람들이 더 늘어난다.
운 좋게 다다음 정류장으로 부른 택시가 잡혔다. 택시는 5분 걸린다고 뜨는데 나는 두 정거장에 10분이 더 걸렸다. 기사님께 상황을 설명하고 조금만 기다려주십사 애원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카카오 T 블루 서비스 이용료 3000원을 더 냈기 때문에 간절했다. 지하철 출구 밖으로 나온 뒤 버스로 4.5km를 이동하는 데까지 45분이나 걸렸다. 이미 건강검진 예약 시간이 다 됐다. 택시를 타고 서초동에서 용산까지 또다시 40분을 갔다. 택시에서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아 저 오늘 검진 예약한 은연주인데요, 아침에 지하철이…“
친절한 간호사가 바로 “네 시위요. 소식 들었어요. 어쩔 수 없죠. 저희 접수 마감 연장했으니까 조심히 오세요.” 답해줘서 무지 고마웠다. 덕분에 종합검진은 무사히 받을 수 있지만 도시의 삶은 역시 아침부터 우당탕탕이다. 부디 오늘 검진 결과에서 아무것도 안 나오기를. 끝나고 얼른 밥부터 먹고 싶다.
서울과 시골 중 어떤 것도 고를 수 없다면 다시 내 로망이었던 오도이촌이 답일까. 도시로 돌아오는 게 맞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여러 선택지가 더 많고 서로에게 무관심한 도시가 내게는 더 잘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서울이 싫어서 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어쩌면 내가 싫어했던 건 서울이 아니라 나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부득이하게 오늘 아침부터 서울의 출퇴근이 얼마나 지옥 같은지 다시 느꼈지만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는 내가 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