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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렐라

1화 지갑 없는 친구, 남자는 가져간 날

by 예쁜달


내 친구는 나를 만날 때

항상 지갑을 안 가져왔다.


처음엔 귀여운 실수라고 생각했다.

“아, 깜빡했어. 어떡해~ 너 먼저 내주면 안 돼?”

나는 늘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내가 낼게.”


그건 착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나는 그 상황이 불편하지 않게 지나가길 바랐던 사람이었다.


그날은 미팅이었다.

친구가 아는 사람들과 자리를 만든다고 했고,

나는 큰 기대 없이 따라갔다.


자리엔 네 명의 남자와

나, 그리고… 내 친구.


솔직히 다 별로였다.

근데 그중 한 명은 조금 괜찮아 보였다.

말투가 조용했고, 눈빛도 진심 같았고,

내가 말할 때 진짜로 경청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화장실에 갔다.

거울을 보며 머리를 정리하는데

그 친구가 따라 들어왔다.


그리고는 말했다.

“야… 남자들 너무 별로지?”

나는 그냥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 난 별생각 없는데?”


친구가 내 얼굴을 보며 말했다.

“야, 재미없다. 집에 가자.”

나는 손을 씻고 자리로 돌아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 남자가 내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 우리 차 한 잔 하고 갈까요?”


순간, 내 친구가 빠르게 말을 끊었다.

“얘 지금 바쁘대요.”

그리고는 내 손을 확 잡고 일어섰다.


그 남자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연락처라도…”

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그건 주선자가 알려줄 거예요~”


그리고 나를 데리고 나갔다.



지하철 안에서 그 친구는

“남자들 진짜 너무 별로지 않냐?”

“나 같으면 집에 그냥 갔다~”

몇 번이나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나는 “응~” 하고 맞장구만 쳤다.

별생각 없이.



그로부터 몇 달 후,

그 친구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우리 밥 먹자~”

나는 반갑게 나갔다.


밥을 먹다가, 갑자기 친구가 말했다.


“아 맞다, 그때 미팅했던 영철 씨 있잖아?

내가 한 2~3달 만나봤는데… 별로더라.”


“영철 씨?”

“응~ 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했잖아.

그래서 내가 좀 만나봤지 뭐.

근데 유치하더라. 아~ 너 안 만나길 잘했어~”


그때 친구가 손목을 턱 내밀며 말했다.


“이거 예쁘지?

영철 씨가 일본 출장 갔다 오면서 사다 준 거야.

명품이라던데~ 몰라, 난 그냥 고마워서 받았지 뭐~”



그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남자를 잃은 게 속상했던 건 아니다.

그 친구의 태도,

그게 진짜 상처였다.



만약 그 친구가

“영철 씨 좀 마음에 드는데, 나 만나도 돼?”

라고 물었다면

나는 진심으로 괜찮다고 말했을 사람이었다.


그게 친구니까.


하지만 그녀는

내 감정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잠깐 좋아했던 사람을

가져가고,

자랑하고,

별로였다고 내려놨다.



그날 이후, 나는 깨달았다.


호구는,

나쁜 성격 때문에 생기는 게 아니다.

사람을 잘못 만났을 때, 생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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