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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아 May 10. 2024

나는 슬퍼야만 합니다

밝은 아이 증후군과 우울증의 평행이론

고작 몇 시간일 뿐인데 내 에너지를 쏙 빨아간 그와의 마지막 이야기가 끝이 나고, 나는 예전의 나와 현재의 나를 돌아보며 내 선택들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나는 내 인생에서 그리 소중했던 사람을 어떻게 이렇게 빨리 떼어낸 거지? 아니, 애초에 그런 사람을 내가 왜 만나게 된 거지? 첫사랑은 안 이뤄진다는 게 확실하긴 한 것 같은데, 왜 하필이면 못 이뤄진 이유가 내 우울증이며 나는 왜 평소에는 그냥 넘기던 이 우울들을 이번엔 넘기지 못해서 결국 내 삶의 행복과 상상치도 못할 아픈 이별을 겪어낸 거지? 분명 안 좋아한다고 자부했는데 왜 자꾸 죄책감 들게 지금 다시 생각하고 좋아하는 것 같지? 왜 자꾸 신경 쓰이고 난리지? 정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의 생각들이 내 뇌를 지배하기도 했다.


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은 점점 심해지곤 했다. 아마 overthinking syndrome이라고 했던가? 이 당시 이 증후군을 겪었던 것 같다. 이 정도로 무슨 그렇게까지 가냐고 하겠지만, 이건 내 이야기이고 내가 삭제한 부분들은 이보다 훨씬 많다. 솔직히 말하면 정말 거짓말 안 치고 하루에 10만 개 정도의 생각은 했던 것 같다. 정말 잠도 안 오면서 그 1초들에 꼬인 생각이 모두 들어가서 머리가 어지럽게 꼬인 듯한 느낌. 사랑 하나로 행복했던 내가 이렇게까지 망가지는 건 싫었지만, 그렇다고 그를 생각하지라도 않으면 정말 죽어 버릴 것만 같았고 모든 일들에 대해서 내가 책임을 지는 것에 대한 회피만을 갈구할 것 같았다. 모두가 나를 욕하고, 흘겨보고, 나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모두가 믿고 그 시선으로 나를 짓누르는 힘들까지 모두 떠맡으려 했던 나는 믿을 사람 하나 없는 힘든 나날들을 보냈다. 사실 믿을 만한 사람도 내가 인간에 대한 공포심으로 억지로 만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다. 그냥 '인간'이라고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체들을 만나기가 싫었고, 만약 만나야 한다면 차라리 거울을 보고 싶었다. 그들은 그저 나에게는 공포감을 주는 존재였고, 침대만이 그들을 도피할 유일한 장소였으며 그 장소를 방해하려 하는 누군가는 정말 화가 치밀어 오르며 아무리 그게 가족이라도 살인 충동이 들 정도였다. 그들은 나에게 정말 거슬리고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기력이 쇄약해져 귀신을 본다 하더라도 차라리 살아 움직이지 않는 귀신들을 보고 그들과 함께하는 게 인간과 있는 것보단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내 한없는 우울감을 잡고 있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인간을 혐오했다. 원래 있던 사회성만이 발달해 인간들을 상대했을 뿐, 밝은 아이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이 떠올랐는지 항상 밝은 모습으로 그들을 대했고 그들은 나의 그런 모습을 사랑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반응에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들은 내 사회성을 보고 이득을 얻으려 나에게 접근하는 것만 같았고, 이런 나의 생각이 잘못된 것 같기도 했던 나는 하루에도 백 번이 넘도록 내 두 개의 내면과 갈등했다.


나는 우울증이 끝난 이후, 아니 사실 내 우울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 시점부터 인간 혐오, 내적 갈등, 과잉사고 증후군, 그리고 밝은 아이 증후군이라 볼 법한 강박이 도졌다. 나는 내 인생에서 우울이란 감정이 가장 뚜렷하고 지속적으로 큰 기간을 차지할 것이라고는 한 치의 예상도 하지 못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더 나는 밝아지려 노력했고, 때에 맞지 않은 강박에 나는 내 온 몸을 벅벅 긁어서라도 밝은 아이가 되려고 광기를 뿜었다. 하지만 말했듯이 때에 맞지 않은 이 강박증을 겪으면서 나는 점점 나에 대해 거짓되기 시작했고 그것들은 내 과잉사고 증후군을 더욱 더 심하게 만들었다. 나는 나에 대해 거짓되게 사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데,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이런 현상이 점점 더 심해진 것 같다.


하지만 결국 우울은 나에게 다정했고, 나의 삶의 동반자인 듯한 이 따뜻한 우울에 나는 굴복하다 못해 충성했다. 아니, 그마저도 오래 가지 않았고 나는 우울을 사랑했다. 무엇이든 과하게 살던 성향이 있었던 건지 나는 우울을 사랑하고야 말았다. 사랑할 존재가 없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나에게 우울은 빈 자리를 채워 주었다. 나의 우울은 그저 감정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 모든 것들을 책임졌다. 사실 혼자 이 처음이면서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끼고 다뤄내면서 뇌에 오류가 난 것처럼 우울한 것이 너무나도 좋았다. 사실상 우울에 익숙해지고 무덤덤해지면서 느껴지는 정이라고 할 만한 내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정을 결국 우울에 대한 사랑으로 간주하고 인생에 스며들게 만들었다.


'우울'이라는 감정 자체를 최근에 처음 느껴 본 나로서는 이게 우울이든 뭐든 따질 틈이 없이 일단 내 마음 안에서 꽉 차지 못한 심리적 불안감을 채워 내야만 했다. 혼자 견디기에 조금 외로운 시간이었지만, 그렇다고 내 이 행복한 생활들을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체면도 안 서던 사춘기 시절이기도 하고, 이것들을 '해결'하러 정신과에 가면 나는 무조건 이 우울하며 행복한 생활이 끝날 것만 같아 두려웠다. 나는 그것이 '해결'이 아니라 나의 '피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런 생활이 좋고, 우울이 없으면 내 삶이 공허하고 허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다시 무기력해지고 우울증이 오는 생활이 반복되었기 때문에 나는 우울을 조용하게 느끼며 침대에 앉아 조용한 영상들을 보거나 노래를 듣고 연구하고 책을 읽는 등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차라리 그러는 게 마음도 편안하고 나다웠고 내가 진정 하고 싶었던 일이다. 우울을 느끼며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내 하루에서 사라지면 나는 오지 않는 잠을 청하기까지 기다릴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결국 나는 우울과 동거를 시작했지만, 그를 나쁘게 여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밝은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은 겉으로는 나를 아주 밝은 사람으로 만들었고, 정작 내가 좋아하는 시간들은 우울증을 마음 깊이 느낄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이었다. 밝은 아이가 됨으로써 내가 점점 우울해진다는 게 정말 이해는 안 되지만 이런 생활을 이어나간 뒤로는 내가 슬퍼야 한다는 강박마저 생기긴 했지만, 슬프려고 하는 욕구 때문에 나는 울고 싶을 때 시원하게 울 수 있고 그칠 때 잘 그칠 수 있는 조절형 성격이 되었다. 이런 슬픔을 지나가는 과정보다는 슬픔과 우울을 몸소 느끼며 이런 느낌을 오래 오래 잃지 않고 나를 끝까지 잘 이해해서 내가 원하는 일들을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나를 위해 하는 것이 정말 의미 있다고 느껴서 나는 딱히 내 우울에 대해 관대해졌다면 그렇게 됐지 통제를 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예전에는 그와 보내는 생활이 그리 힘든데도 나는 왜 눈물 한 번 제대로 흘리지 못해서 벌로 이 사람과 이런 생활을 몇 달째 이어가고 있던 건가 싶었는데, 사실 진짜 슬프면 나올 눈물도 없어서 나올 눈물마저 내 눈물샘이 끝까지 잡고 안 놔 주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내 감정인 '눈물로 호소하는 슬픔'에 대해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그 밤의 외로운 시간들을 더 마음껏 즐기고 싶다.


아직까지도 그렇고, 나는 아직 그 시간들이 너무 행복하다.

나는 오래도록 그럴 것이다.

밝은 아이가 되려는 욕구와 우울증이 부딪혔던 이유이지만,


나를 위한 슬픔들을 후회하지 않는다. 아니,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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