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유대인 수용소를 방문하고
베를린 북쪽으로 35km정도 달리면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가 저지른 만행을 전시한 작센하우젠 박물관 겸 기념관이 나온다.
수용소 중간 철문에 써있는 독일어 ARBEIT MACHT FREI.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뜻이다. 감금된 이들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생각나게 한다.
1936년 세워진 이곳은 1945년 독일 패망까지 9년간 20만 명이 감금되고 생체실험과 질병으로 10만 명이 죽은 곳으로, 대개 사람들은 독일에서 가장 끔찍한 수용소로 아우슈비츠를 떠올리지만 정작 역사학자들은 그보다 더 잔인하고 끔찍한 곳으로 작센하우젠 수용소를 평가한다.
차를 주차하고 첫 건물을 지나면 수용소 담벼락을 따라 입구까지 몇백미터를 걸어가게 된다. 어쩌면 일부러 입구까지 걷게하며 방문객들에게 생각하고 느낄 마음의 시간을 만든 것 같다.
사진의 주황색 삼각형 모양이 이곳 수용소 부분이다.
이 문을 통과하면 오른편에 수용소 개요를 설명한 건물이 나온다. 사진에 보이는 안쪽 건물이 수용소로 들어가는 내부 문이 있는 건물이다.
지도에 나와있는 점을 세기도 어렵다. 한마디로 수용소로 독일을 다 뒤덮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록 정말 많다.
수감자들이 살았던 건물은 너댓 동을 제외하면 터만 남아있다. 수용인원은 3만 5천명이었는데, 생체실험이 이루어진 곳, 지하 가스실, 시체 소각장, 식당 등이 있다.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침상은 3층 구조로 수감자가 많아지면 수용인원의 3~4배를 수용해서 잠을 자기도 어려운 때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이 곳에서 수백명이 사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지하로 내려가면 사진과 당시 수감자들의 실제 신발조각, 옷조각 들이 전시돼 있다.
말을 안듣거나 정치적으로 문제자로 분류된 수감자들이 머무는 특수 수감동이 따로 있다. 심한 고문이 자행된 곳이다.
사진 아래 오른쪽에 발을 넣고 기역자(ㄱ)로 엎드리면 가죽끈으로 몸을 묶어서 채찍이나 몽둥이로 때리는 형틀이다. 위 고문 그림의 중간 그림의 실물
지하로 내려가면 수감자들을 위한 식사를 준비했던 식당이 있다. 벽에 음식재료를 모티브로 그림을 그려 놓았다.
밖에는 위와 같은 큰 나무가 몇 그루 있다. 장면만으로는 그냥 독일의 창고가 한 채 있는 목가적인 어느 시골 풍경라고 하면 믿을만 하다. 조용해 보이는 고즈넉한 분위기가 1945년 당시의 실제 수감생활이 오버랩되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위령탑이 보였지만 가까이 가고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아 그냥 멀리서 사진만 찍었다. 생체실험실과 가스실도 차마 사진을 찍지 못했다.
전쟁이 끝나고 나치의 전쟁 책임자들을 잡아 (독일내 미군의 점령지였던) 뉘렌베르크에서 법정에 세웠는데, 사형과 종신형 등을 선고받은 그렇게 악랄했던 사람들이 그냥 선량한 옆집 아저씨 같아서 충격을 받았다는 미국 기자의 기사가 떠올려졌다.
세계 1, 2차 대전으로 순수했던 인간성이 악랄하게 변질돼가는 모습을 그렸던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Lord of the flies)]도 생각이 났다.
1. 독일은 수용소를 왜 이렇게나 많이 건립했을까? 무슨 목적으로?
2. 인간은 왜 전쟁을 할까?
3. 인간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을까?
4. 내가 이런 상황에서 나치 간부라면 어땠을 것 같은가?
5. 내가 수용소에 수감된 사람이라면 어떤 느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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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남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