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만의 것으로 채우기
거실 한편에 자리 잡은 수납장.
우리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구이자 공간이다.
2년 전 새 아파트로 이사를 오며 살림살이를 고스란히 들고 왔다.
그 가구들은 새집과는 각각 따로 놀았다.
내 취향조차 반영되지 않은 것들이었다.
인테리어에 대해 전혀 모르던 시절, 남편이 검색을 통해 신혼부부들이 많이 사용한다는 B가구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주말 B가구의 분당 쇼룸에 가 우린 다른 브랜드와 비교도, 더 고민도 않고
신혼집에 들여놓을 가구를 몽땅 거기서 다 구입했다.
남들이 많이 한다는 무난한 화이트톤으로 맞췄다.
새집으로 이사를 와 예전에 산 가구들을 보고 있자니 가끔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취향도 아닌 물건 여러 개가 각각 한 자리씩 자리를 잡고 있으니 여간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거실의 tv아래, 바닥을 다 차지한 tv장이 눈에 거슬렸다.
교체하지 못할 거면 차라리 없애 공간을 넓히는 게 낫다고 판단해 거실장을 정리했다.
좁아 보이기만 했던 거실이 더 넓어지고 답답한 게 사라졌다.
그러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수납장을 하나 보게 되었다.
다크월넛색의 그 수납장을 우리 집 거실 한편에 두면 어울릴 것 같았다.
가구라는 건 덜컥 구매했을 때 되돌리기 어렵다는 걸 몸소 겪어보았기에
마음에 든다고 바로 구매할 수는 없었다.
신중해야 했다.
그렇게 3개월이 넘게 고민을 했고
생각을 하면 할수록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올해 1월 더 이상 고민이 필요 없다고 느꼈을 때 그 수납장을 집에 들였다.
생각보다 우리 집에 더 잘 어울리고 내 마음에 쏙 들었다.
그 위에 내가 좋아하는 소품들을 주기적으로 바꿔가며 올려놓는다.
답답하고 마음대로 되지 않아 지치는 날엔
소파에 앉아 가만히 거실 한편 수납장을 보고 있으면 차분해진다.
세상에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게 하나쯤은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된다.
쿠팡플레이 드라마 '안나'에서 인상 깊었던 대사가 있다.
'취향이나 안목이라는 거 한 번에 생기지도 않지만,
한번 올라간 안목은 쉽게 내려오지 못하는 건데'
타인에게 잘 보이려 진짜 속에 가짜를 진짜인척 숨겨두었던 지훈에게 안나(배우 수지)가 한 말이다.
나 역시 8년 전 첫 집을 장만했을 때 당시 유행인 인테리어를 따라 해 리모델링을 했고
그에 맞는 가구를 채워놓기에 급급했다.
어쩌면 내 깊은 곳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분명하진 않지만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내 취향이 남들과 같지 않고
부족하진 않을까라는 생각에 타인의 눈치를 보며 내 안목을 숨겼다.
내 안목이 혹시 '가짜'일까 두려웠는지 모른다.
내 것이 아닌 것들로 내 공간을 채우다 보니
위로받아야 할 집에서 조차 편하지 못하게 되었다.
'진짜'와 '가짜'
내 삶에서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일까?
아마 절대적인 정답은 없지 않을까?
나를 더 잃어가기 전에
요즘은 내 마음이 담긴 '진짜'들로 나를 채우려 노력하는 중이다.
그게 비록 남들에겐 '가짜'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