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친정엄마, 외할머니와 셋이 점심을 먹었다.
식사 후 할머니를 집으로 모셔다 드리는 길.
엄마가 치악산국립공원 안에 새로 생긴 카페에 가보자고 말했다.
태어나 80 평생 치악산에 한 번도 못 가봤다던 할머니의 얘길 엄마가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 엄마가 외할머니를 대하는 걸 보면 내가 8살 난 아들을 대할 때와 비슷하다.
장어를 먹으러 가서도 별 맛이 없다 투덜대는 할머니에게,
그래도 한 입만 먹어보라며 앞접시에 음식을 올려놓는다.
신도시를 지날 때면 "여기가 예전에 OO가 있던 곳이야"라고 묻지도 않은 할머니에게 설명한다.
멀리 보이는 큰 건물을 가리키며 "엄마 저긴 시청이고, 저기는 법원이야"라며 대문짝만 하게 쓰여있는데도 친절하게 알려준다.
평생 나에게 살갑게 손 한 번 잡아주지 않던 엄마는
집밖을 나오면 할머니 팔짱을 꼭 끼고 붙어 다니기까지 한다.
그럴 때 보면 내가 알던 무뚝뚝한 우리 엄마가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뒷좌석에서 할머니 옆에 앉아 조잘조잘 떠들어대는 엄마 얘기를 들으며 운전을 하다 보니
치악산 입구에 다다랐다.
문득 28년 전 내가 9살이었던 그날이 떠올랐다.
그때의 일을 상상하고 있으니 뒷좌석에 앉은 엄마가 내 어깨를 툭툭 친다.
"여기 처음 왔을 때 기억나니?"
나처럼 엄마도 그때의 일이 생각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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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전 1996년 어느 일요일.
여름이었는지 가을이었는지 계절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치악산국립공원이 자리한 바로 옆에 작은 놀이공원이 개장을 했다.
직장인들이 일주일에 딱 1번 쉬던 일요일.
엄마는 9살, 6살 난 나와 여동생을 데리고 놀이공원으로 향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1시간 버스를 타고 원주로 나와
또다시 1시간 가량 버스를 타서 치악산국립공원 정거장에 도착했다.
버스 기사님은 엄마에게 여기서 걸어 올라가면 놀이공원이 나올거라고 알려주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놀이공원 표지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정거장 근처 주차장에 드림랜드라고 크게 적혀 있는 걸로 봐서,
놀이공원이 근처에 있는 게 확실한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엄마와 나, 여동생은 그 근처에서 2시간가량 입구를 찾아 돌아다녔다.
넓지도 않은 그 주위를 왔다 갔다 하던 중 놀이공원에서 다 놀고 나오던 한 가족이 위치를 정확하게 알려주었다.
알고 보니 주차장에서 조금만 더 걸어 올라가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오후 4시가 되어 놀이공원 매표소 앞에 도착했다.
엄마는 여기까지 왔는데 들어가서 구경이나 한번 하고 오자며 우리를 놀이공원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때 강아지탈을 쓴 사람과 찍은 사진이 여전히 내 사진첩에 남아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엄마에게서 충분한 정서적 사랑을 받지 못한 내 어린 시절이 가끔 떠오를 때가 있었다.
왜 이런 상황에서 조금만 더 따뜻하게 대하지 않았지?
왜 사랑한다고 말하며 한번 안아주지 않았지?
자식을 대하는 지금의 나와,
나를 대하는 그때의 엄마를 내가 유리한쪽으로 비교했다.
내 감정에 몰입해서 받지 못했던 것들에게만 눈을 돌렸다.
28년 전 그때의 일을 생각하다 보니
엄마가 나와 여동생을 위해 한 노력들이 떠올랐다.
애비 없이 자랐다는 소리를 안 듣게 하기 위해
참 많이도 우리에게 보여주고 들려주려 노력했다.
주 1회 딱 하루 쉬는 일요일.
30대 초반이었던 엄마는 차도 없는데 주말마다 나와 여동생을 데리고 여기저기 많이 다녔다.
버스는 만석이고 자리가 나면 우리를 먼저 앉혔다.
엄마가 버스 좌석에 편히 앉아 있던 모습이 내 기억엔 없다.
갈 곳이 없으면 1시간 버스를 타고 대형서점에 가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씩 우리 손에 쥐어줬다.
아이가 집에서 10분 거리 레고카페에 가자고 하면
귀찮은 마음에 다음에 가자 둘러대는 내 모습과 대조되었다.
어릴 때 내가 받지 못한 것에만 집중한 나머지
넘치게 받았던 엄마의 사랑은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받았던 건 당연한 거라 생각했다.
언젠가 엄마와 단 둘이 있게 되는 날에
엄마에게 묻고 싶다.
엄마의 30대는 어땠는지...
그리고 고마웠다고 말하고 싶다.
더 늦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