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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품위있는 그녀 Sep 09. 2024

소유의 그릇

내가 품을 수 있을 만큼만

월급은 내 통장을 스쳐갈 뿐

쉬지 않고 일하는데 살기 더 팍팍해진다.

이번생엔 부자가 되긴 글렀나 보다.


아파트 대출금, 관리비, 아이교육비, 보험료, 각종렌탈비 등...

따박따박 들어오는 돈에서 고정비를 제외하면 나머지를 어디에 쓴 건지 내 손에 쥐어진 게 없다.

돈에 발이 달려 도망갔을 일은 없을 테고

숫자 받아쓰기가 된 가계부를 펼쳐보면 그제야 돈의 행방을 알 수 있다.

h*m 20,000원, 소품샵 7,000원 아*박스 9,000원...

분위기에 휩쓸려 저렴하다는 이유로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산 기록이다.

그 물건들은 옷가게라면 기본티가 되고, 소품샵이라면 가방마다 달고 다닐 키링이 된다.

문구점이나 공방이라면 새로운 그립의 펜이나, 매일 사용하는 에코백 정도가 내 지출의 패턴이다.

이런 것들은 더 큰 지출을 막기 위해 작은것으로 나를 달래는 일종의 의식에 가깝다.

집에 돌아와 사온 물건들을 정리하다 보면 비슷한 물건들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

이렇게 소소하게 사는데 즐거움을 준 그 물건들이

가끔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좁은 공간에 비슷한 물건들 여러개가 모여있는 게

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하다.

무슨 생각으로 평생 다 쓰지도 못할 물건들을 모은 건지...

말에도 그릇이 있듯

사람에게도 물건을 소유할 그릇이 있는건 아닐까?

물건들을 보고 마음이 답답한 걸 보면

나는 딱 이 정도 크기의 그릇을 가졌나 보다.

.

한꺼번에 비우면 좋으련만

세월아 네월아 하는 내 성격을 알기에 하루에 1개씩 물건을 비우고 있다.

오늘도 선물받은 고가의 화장품을 다른 이에게 보냈다.

비싸다는 이유로 언젠가는 쓰겠지 생각하며 화장대 구석에 두고두고 묵히고 있었다.

많이 가지는 것만이 행복한 줄 알았는데,

가진걸 덜어내니 그만큼 내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다.

이 느낌이 나쁘지 않다.

.

당신이 가진 소유의 그릇.

그 크기는 얼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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