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없어. 나중에 언제?
"베테랑2 개봉했데"
"10월 5일에 서울불꽃축제한데"
"여기 근처에 유명한 카페가 있데"라는 말에
내입에선 "조만간 보자" "내년엔 꼭 가자"
"다음에 가자"라는 기약도 없는 빈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
어떤 날은 먼저 해야 할 게 있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귀찮다는 이유로 다음을 기약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그때 볼걸' '지나가는 김에 들러볼걸'이라는 아쉬움이 뒤늦게 밀려온다.
이런 감정들을 기억해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어느새 내 몸과 마음엔
다음으로 미루는 습관이 물들어 버렸다.
생각해 보면 우선시했던 것들이
꼭 해야만 하는 중요한 것도 아니었다.
계획에서 틀어지는 게 싫어서,
뭔가 알아보는 게 귀찮아서가 그 이유였다.
며칠 전 아이와 둘이 집 근처 운동장엘 갔다.
나는 벤치에 앉아 자전거를 타고 있는 아이를 힐끗힐끗 보며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10분쯤 지났을까?
우리 아이 또래로 보이는 남자애가 아빠와 함께 자전거를 끌고 나타났다.
그 아이의 아빠는 길거리를 지나면서 많이 봤던 자전거를 타고 왔다.
아마 공유자전거를 대여한듯했다.
그 모습을 본 우리 아이는 "엄마도 자전거 빌려서 같이 타자"라고 나에게 말했다.
"오늘은 말고, 다음에 빌려서 타자"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버릇처럼 입에서 튀어나왔다.
왜 '다음에'라고 대답했을까?
아이의 자전거 메이트는 주로 남편이다.
오늘은 남편이 출근해서 아이를 오랜만에 따라 나온 거다.
'오늘이 아니면 또 언제 따라 나오게 될까?'
'그래서 그때는 자전거를 내가 대여하긴할까?'
운동장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머릿속에선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리고 마침내 내린 결론은
'오늘 하자'였다.
아이와 같이 공유자전거 찾기에 나섰다.
평소 눈에 치이도록 본 자전거가 타기로 마음먹으니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20분정도 운동장 주변을 배회하다
드디어 자전거 한대를 발견했다.
그냥 빌리는 게 아닌가 보다.
앱을 설치해야 한단다.
설치를 하니 신용카드를 등록하라고 한다.
10월인데도 여름 같은 날씨에 등에서 땀이 줄줄 흘렀다.
이제 대여만 하면 된다는 희망을 갖고 큐알을 다시 찍었다.
배터리가 없는 자전거라고 뜬다.
망할...
'이거 안되니까 다음에 빌리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아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20분째 자전거도 타지 못하고 나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자전거를 찾아주고 있는데도
뭐가 그리 신이 난 건지, 마치 소풍에서 보물 찾기라고 하는 것처럼 눈이 초롱초롱하다.
아이에겐 배터리 없는 자전거가 '꽝! 다음기회'에 같은 거였나보다.
여기서 '다음에'라고 말하면 실망할 아이의 표정이 떠올랐다.
다행히 앱에서 공유자전거의 위치를 볼 수 있었는데,
100m만 더 가면 한대가 놓여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렇게 30분을 넘게 애타게 자전거를 찾아냈고,
한시간 넘게 아이와 자전거를 탔다.
멍하니 벤치에 앉아 기다리던 시간이
함께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누군가는 '뭐, 그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이게 뭐라고' 싶을 수도 있겠지만
'다음에'가 '지금에'로 바뀐
나에겐 작지만 큰 변화였다.
살면서 뭐가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 것이었을까?
그래서 내가 택한 최선은 정말 최선이었을지…
정말 중요한것은 미루지 않고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가는게 아닐까?
그래서 오늘, 지금 이 순간도 소중히 여기려한다.